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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l 27. 2023

  아침밥에 대한 소회

아침밥에 대한 소회  

   

 “박 여사 밥 묵고 자소.”

 살그머니 방문이 열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해가 중천에 떴구나. 벌떡 일어났다. 창문을 여니 마당에 햇살이 없다. 동녘 산마루를 보니 훤하다. 아직 해가 안 떴다는 뜻이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아침 약을 먹고 식탁에 앉았다. 가지런하게 차려진 밥상은 정갈한 느낌부터 준다. 그는 밥과 미역국을 퍼서 내 앞에 먼저 놓는다. 

 “아직 일곱 시도 안 됐네. 뭔 일이래? 원위치로 돌아온 겨?”

 

 요 며칠 계속 이른 아침을 먹는다. 해 뜨기 전 시원할 때 들일하러 가는 것이 농민의 습성이다. 수확철도 아니고 일꾼 댈 일도 없는데도 그는 새벽 형이다. 나는 늘 아침잠이 고픈 올빼미 형이다. 

 “그냥, 배고파서.”

 그의 대답에 힘이 빠진다. 


  새댁시절부터 아침잠을 못 떨쳐 마음고생이 심했다. 시댁 식구들은 모두 새벽 형이다. 날이 희붐하면 일어난다. 평생 아침 일곱 시 전에 밥을 먹었다. 시부모님은 상노인이 되어도 아침밥을 일찍 드셨다. ‘할 일도 없는데 느긋하게 누워계시다 아침을 드셔도 되는데 어쩌자고 저리 일찍 일어나실까.’ 불만도 품었었다. 삼시세끼 중 한 끼도 굶지 않았던 두 어른이셨다.

 

 “사십 년이 다 되었는데도 안 변하네.”

 타고난 성품일까. 그는 새벽 형이고 나는 올빼미 형이다. 오래 산 부부는 서로 닮는다지만 사십 년이 되도록 살아도 우리 부부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여태 그에게 맞추어 살았으니 내가 변해야 하는데 내가 변하지 않는 거다. 잠만 아니고 식성도 마찬가지다. 서로 고집이 세서 그럴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그가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돌아보면 평행선이다.

 

 요즘 달라진 것이 있긴 하다. 새벽형인 그는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아침밥을 차린다는 거다. 가끔이지만 기분 좋은 변화다.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 한두 가지 꺼내 정갈하게 담아내는 것도 즐기는 것 같다. 나도 아침 밥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는다. 성질내면 성질 났나보다. 그것으로 끝이다. 서로 갈구지 않는 것도 변화다.  

 

 여자는 이순 즈음이면 밥해 먹기 싫어진다. 혼자 사는 할머니도 당신 밥 차려 먹는 것도 싫단다. 평생 부엌 못 면하고 산 여자의 삶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일터로 떠나고 나는 다시 사르트르의 단편소설『벽』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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