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처음>
노인의 길
이것은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21세기 현대사회의 단면이자 통증이다. 노인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팔구십 넘은 노인이 있는 집은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노인이 되면 젊었을 때보다 훨씬 현명해질 것 같고, 타인이나 이웃에 대한 배려가 훨씬 폭 넓어지리라 믿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을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상노인이다. 상노인이란 80살 이상으로 치자. 상노인이 되면 체면과 유아적 아집만 남는다. 남이나 자식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나 자식으로부터 끊임없이 관심과 존경과 사랑을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물질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다.
“밥 묵고 일찍 내리 온나. 너거 어매가 입원한단다.”
강노인은 새벽 댓바람에 이웃에 사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 며느리의 대답이 시큰둥하다. 아내는 입원준비를 해 놓고 며느리를 기다리며 오전을 다 보냈다. 점심때 일당벌이 다니는 아들이 왔다. 일 안 갔냐고 물었더니 ‘일하다 왔지요. 어매가 입원한다 캤다면서요?’ 한다. 불퉁스럽다.
“에미는 머하고?”
“바뿌답니더.”
저녁 답이 되어도 며느리는 코빼기도 안 비쳤다. 시아비 저녁상 봐줄 생각도 없는지. 혼자 저녁을 챙겨 먹자니 노인 체면에 할 짓이 아니지만 아내도 없으니 별 수 없다. 보온밥통에서 남은 밥을 퍼고, 국을 데워 대충 저녁을 때웠다. 다음 날도 며느리는 결석을 했다.
“아버님, 저 왔어요.”
사흘 만에야 모습을 드러낸 며느리다. 시아비를 우습게 알다니. 강노인은 며느리가 마당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또 한 번 강노인을 불렀다. 강노인은 못 들은 척했다. 괘씸한 것. 시어미가 없으면 시아비를 챙기는 것이 며느리의 도린데. 전화 한 통도 없다가 이웃집 마실 오듯 맨송맨송한 얼굴로 마당을 질러오다니. 강노인은 기척도 안 냈다. 검은 봉지를 들고 현관 미닫이를 쓱 밀고 들어서던 며느리는 샐쭉한다.
“방에 계시면서 왜 기척도 안 하세요? 아침 드셨어요?”
며느리는 마루에 올라서며 종알댄다. 강노인은 무심한 척 신문만 뒤척인다. 며느리의 표정이 싹 변한다. 강노인은 힐끗 며느리를 봤다. 고얀 지고, 강노인은 어른 체면에 마음을 누그러뜨렸지만 뱉어내는 말이 고울 리 없다.
“있는 밥도 못 무까. 내 걱정하지 마라.”
며느리라고 그 속을 모를까. 며느리는 강노인의 말이 살갑지 않자 애써 누그러뜨렸던 불만이 목울대를 넘어온다. 아흔의 상노인인데 젊은 내가 참아야지. 그냥 웃고 말자. 노인 상대로 결기 세워봤자 내 속만 멍든다. 평생 차려주는 밥상에 앉아 수저만 놀린 어른인데 어쩌겠어. 반찬 몇 가지 조물조물 만들어 새 밥 지어 드려야지. 속이 썩어도 할 수 없다. 노인 상대로 속 끓여봤자 내 속만 숯검정 되지. 툭 털어버려야 내가 사는 거다. 그런 마음으로 왔는데. 노인의 표정에 노기가 묻어 있으니 고까운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며느리를 하녀 부리듯 하는지 봅시다. 나는 뭐 배알도 없는 여잔 줄 아시나. 그래요.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보시오. 오기가 불끈 솟는다.
“잘하셨어요. 끼니는 아버님이 챙겨 드세요. 반찬 두 가지 만들어 왔는데. 냉장고에 넣어놓고 갈게요. 내일은 제가 볼일이 있어 못 와요.”
“안 와도 된다.”
강노인의 목소리는 차갑다. 며느리는 들은 척 만 척하며 들고 왔던 검은 봉지에서 반찬 두 통을 꺼내 냉장고에 넣어놓고 현관을 나간다. 강노인은 잰걸음으로 삽짝을 나서는 며느리의 뒤통수를 째려봤다. 감히 어른 앞에서. 예전 성질 같았으면 목침이 현관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어디서 배워먹은 행동거지냐고 불벼락을 내렸을 것이다. 강노인은 목침을 베고 누웠다.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다.
저녁에는 밥솥에 밥이 없다. 강노인은 쌀을 씻어 놓고 병원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며느리가 안 왔냐고 묻는다. 안 왔다고 했더니 병원에도 코빼기도 안 보인단다. 며느리가 변하긴 변했다. 밥을 지으려면 쌀에 물을 얼마나 잡아야 하는지 물었다.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담아놓고 손을 넣어 손등 위에까지 물을 잡으면 된단다. 쌀을 밥솥에 안쳤다. 취사를 눌러놓고 냉장고 속을 뒤졌지만 반찬도 바닥났다. 김치만 식탁에 꺼내 놓고 밥이 뜸 들기를 기다렸다. 밥이 고두밥이다. 누룩과 섞어 막걸리 담가도 되겠다. 아내가 한 밥이라면 당장 새로 밥 지어 대령하라고 불호령을 내렸을 텐데. 강노인은 밥을 물에 말아 김치랑 먹었다. 며느리에게 전화를 해서 혼을 내려고 벼르다가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 그냥 둔다. 설마 내일은 오겠지. 여태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며느리가 강노인의 수발을 들었다. 때마다 와서 끼니를 챙겨주고 빨래며 집안일을 해 놓고 갔다. 때 되면 오겠지.
그러나 다음날에도 며느리는 오지 않았다. 또 사흘 째 되는 날, 강노인은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 밥은 할 줄 안다면서 국 끓이는 법 좀 알려달라고. ‘안 가도 된다면서요.’ 며느리의 대꾸가 야멸쳤다. 강노인은 바쁘면 그만 두라며 전화를 끊었다. 점심때 며느리가 왔다. 반찬거리가 든 소쿠리를 들고 왔다. 강노인은 은근히 며느리가 반가웠다. 며느리는 선걸음에 부엌에 들어가 똑딱똑딱 반찬을 만드는 것 같았다.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입맛을 돋우었다. 고두밥도 퍼내고 새 밥을 짓는 것 같다. 밥 냄새가 구수하니 좋았다. 지글지글 불고기 냄새도 났다.
강노인은 넌지시 며느리에게 말을 걸었다. 은근히 살가웠다.
“어매한테는 댕기 왔나?”
“애비가 퇴근하면서 들리는데 저까지 갈 필요 없잖아요.”
“니를 보내라 쿠던데. 머리도 감고 목욕도 좀 해야 것다고.”
“걸어 다니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씻으라고 하세요.”
“아푼 사람이 혼자 씩것나?”
“아프긴요.”
“그럼 너거 어매가 꾀병이란 말이가?”
누그러졌던 강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쨍쨍해졌다.
“누가 꾀병이라 했어요. 어머님은 그게 병이라는 거지요. 아버님도 아시잖아요. 우리 동네서 어머님과 아버님처럼 노후 복이 많은 노인이 없다는 걸. 아쉬울 게 하나도 없어서 병이 나신 거죠. 동네 할머니들이 호강에 받혀 요강에 똥 싼다고 해요. 겉보기에 멀쩡하신 분이. 며느리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와서 죽 끓이라 밥 해라 하니 말이 돼요. 멀쩡하게 회관에 나가 노시고, 온종일 화투 칠 힘은 있어도 집에 와서 밥 차려 먹을 힘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모자라 툭하면 입원시켜 달라니. 어머님은 요양원에 들어가셔야 해요. 아버님도 생각해 보세요. 이게 벌써 몇 년 짼지 아시잖아요. 노인이 되면 몸에 기운 빠지는 거야 당연한데 기운 없다는 분이 저보다 더 날렵해요.”
“흠, 흠”
강노인은 헛기침을 했다. 며느리가 쏟아내는 말의 폭포에 떠밀러 입도 벙긋 못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우리 동네에서 강노인만큼 팔자 좋은 사람도 없다. 매달 일정금액의 연금이 나오니 돈에 쪼들릴 일도 없지. 매사에 수족처럼 부리는 아내와 아들 부부가 있지. 구십 노구라지만 아직 짱짱하지. 강노인은 구십 년을 살면서 평생 아내와 자식에게 호령하는 재미로 살아왔다. 젊어서부터 기갈 드세고 영리했던 강노인은 어딜 가나 남에게 꿀리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집안에서도 강노인 한 마디가 바로 법이었지만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대쪽 같은 어른으로 통한다. 강노인 집은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 들어가기보다 두렵다는 말이 우스개로 떠돌 만큼 동네 사람들조차 어려워하는 노인이다. 동네 노인들이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해도 강노인 귀에는 들어갈 일도 없으니 성격이 바뀔 방법은 애초에 없는 사람이다. 다만 남에게 경우 틀린 짓 하는 법 없고, 깐깐하고 강직한 성품이라 알려져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따끈한 햇살이 마루 깊숙이 들어와 앉았다. 며느리가 점심상을 차린다. 밥상이 마루에 놓인다. 밥상의 중앙에 놓인 뚝배기에서 된장이 자작하게 끓고, 불고기 몇 점과 버섯볶음 등 정갈한 밥상이다. 강노인은 침을 꿀꺽 삼킨다. 며칠 만에 밥상다운 밥상을 받았는가 싶으니 괜히 눈시울이 따끔거린다.
강노인은 며느리와 겸상을 해서 밥을 먹으며 문설주 위의 벽을 바라본다. 벽에 걸린 액자 속에서 갓을 쓰고 수염을 기른 노인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쏘아본다. 강노인과 닮았다. 수염만 떼어버리면 영락없이 판박이다. 며느리는 묵묵히 수저만 놀린다. 기골이 굵고 성격이 대쪽 같았던 할아버지다. 동네에서 ‘호랭이 할배가 잡으로 온다’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쳤다는 어른이다. 강노인은 또 조부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에 너거 시어매는 조부님 시집살이를 많이 했니라. 성질이 강직하고 무서웠제.”
할아버지는 세 가지 일화를 남겼다. 하나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가서 옥살이를 한 전적도 있고, 둘은 증조부님이 아파 사경을 헤맬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해 소생케 했다 하여 효자비를 받았고, 셋은 동이 술을 마셔도 취한 것을 본 적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평생 막걸리를 마셨다. 밥상 위에 반주 한 잔이 빠지면 밥상은 마당으로 날아갔다. 할아버지는 아흔 살에 마당에 쓰러져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
“또 그 이야기하시려고요?”
강노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 일은 한창 타작을 해다 우케를 널어 말리던 가을이었다. 마당을 볼볼 기어 다니던 손녀딸이 우케가 널린 멍석에 들어가 앉아 놀았다. 긴 장죽을 물고 동네 한 바퀴를 하고 오던 할아버지는 선걸음에 손녀가 앉아 노는 멍석을 우케와 함께 둘둘 말아버렸다.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놀라 부엌에서 튀어나오던 아내도 방에서 길쌈을 하던 어머니도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망부석이 되어 달달 떨었다. 그때 강노인은 스물두 살이었고 아내는 스무 살이었다. 우케에 들어가 놀던 아이는 강노인의 둘째 딸이었다.
“씰데 없는 가시나나 내질러 놓고.”
할아버지는 장죽을 물고 힁허케 다시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아내는 멍석을 펴고 온몸에 나락 티끌을 뒤집어쓰고 눈물콧물 범벅이 된 딸을 안았다. 어머니는 아이를 혼자 우케에 들어가게 했다고 아내를 닦달하고 젊었던 강노인 역시 아내를 모질게 내몰았다. 아내는 입도 뻥긋 못하고 딸을 가슴에 안고 훌쩍훌쩍 울기만 했다. 아내는 순하고 착했다. 입이 굼떠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워낙 할아버지가 엄했던 탓이기도 했다.
“증조부님의 성격이나 기질을 쏙 빼닮은 분이 아버님 같아요.”
하면서 며느리가 웃는다. 며느리는 강노인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한술 더 떠 이런 말도 서슴지 않는다. 일본 순사 끄나풀 했다는 집은 삼시 세끼 쌀밥에 고기 국 먹어도 독립운동했다는 집은 하루 한 끼 풀데 죽도 못 끓여 먹었다는데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슬쩍 강노인의 기를 눌러버리고 초를 치기 일쑤다. 농주 한 잔 이야기가 나오면 ‘어른이 어른답지 않았네요. 그 시절 접시 하나 장만하려면 비쌌을 텐데. 생각 없는 노인이 폭력만 휘둘렀잖아요. 울 어머니도 참 착하셨네.’라고 대꾸를 하거나 우케 이야기에서는 ‘아버님, 그런 분이 요즘 세상에 안 태어나기 천만다행입니다. 요즘 세상에 그런 노인이 있다면 그건 일찌감치 고려장 당하고도 남지요. 어떤 며느리가 그 꼴을 봐요. 부모보다 자식이 귀한 법인데. 더구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그런 대접을 했다면 마땅히 의절하고도 남을 겁니다. 형님은 증조할아버지라면 아주 싫어하던 걸요.’ 강노인은 며느리를 당할 재간이 없다.
“아버님, 요즘은 노인이 변해야 산대요. 어머님처럼 시부모 모실 며느리는 없어요.”
강노인은 멀뚱히 며느리를 쳐다봤다. 저것이 언제부터 저리 되바라졌나. 싶은 것이 기가 막혔다. 근래 들어 며느리는 직설적이다. 며느리의 그런 점을 귀엽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요즘 들어 자꾸 강노인 속을 긁는다. 자칫하다가는 강 씨 가문이란 배를 이끌고 가던 선장이 선장 자리를 내놔야 할 불행한 사태가 도래할 것 같아 새삼스럽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현대는 여성상위 시대라지 않는가. 평생 쥐 앞의 고양이처럼 살던 아내조차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덤비려고 벼르질 않나. 며느리는 아예 노인은 뒷방 차지나 하고 얌전히 있어야 그나마 어른 대우받는다지 않나. 노인이라고 젊은 애들 가르치려고 들었다간 험한 꼴 보는 세상이라지 않나. 말세다.
대략 칠팔 년 전부터 강노인이 부리던 배에 복병이 숨어들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복병이란 바로 아내의 병이었다. 아내는 자꾸 아프다고 누웠다. 젊어서부터 불면증을 호소하던 아내는 팔십 살을 고비로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자지 못했고,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죽으러 가는 것만큼 싫어했다. 강노인이 고함을 지르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지만 등 돌리고 눕거나 강노인 눈에서 벗어나면 넋두리가 한정 없이 늘어났다.
“와 안 죽고 이리 오래 살아 애를 멕이꼬. 딱 죽었시모 원도 한도 없것다.”
“시방 머라 캤노?”
강노인이 한 마디 하면 아내는 입을 다물었다. 강노인은 수시로 아내를 닦달했다. 방에 누워만 있으면 다리에 힘 빠진다고 유모차 밀고 동네 회관에 나가서 놀든가. 골목이라도 한 바퀴 돌다 오라고 하면 못 이겨서 나가긴 하는데 소용이 없었다. 아내의 병명은 화려해졌다. 요통, 골다공증, 속병, 고혈압, 대상포진, 불면증, 등등 온갖 검사를 다 했다. 큰 병은 없고 장기도 멀쩡했다. 멀쩡한 양쪽 무릎에 번갈아가며 연골주사를 맞을 지경이 되었다. 위 내시경을 해도 위는 깨끗한데 줄창 속이 아프다고 죽을 먹었다. 밥맛 없다. 기운 없다. 속이 쓰리다. 다리가 아프다. 팔이 아프다. 잠을 한숨도 못 잔다. 결국은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일단락되곤 한다. 병원에 입원하면 보통 2주에서 한 달을 죽쳤다. 죽어나는 것은 옆에 사는 며느리와 아들이었다. 한창 농사철에도 들에서 일하다가 달려와 시부, 시모를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강노인조차 잔병치레를 하니 빠끔한 날이 없었다. 한 마디로 강노인과 아내가 시소게임을 하는데 중간에 앉아 양쪽의 중심을 잡아주던 며느리가 등 터지게 생겼다. 결국 며느리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그게 벌써 육칠 년 되었나.
“아버님, 어머님이 아무래도 치맨 것 같아요.”
“아이가, 치매는 아무나 걸린다 카드나? 너거 어메 정신은 말짱하다.”
“그럼 아버님은 어머님이 정상으로 보이세요? 겉보기에 멀쩡한 분이 저러는 것이?”
“아푼께 아푸다는 기제.”
“아버님, 이젠 저도 힘들어요. 어머님이 병원에 계시는 동안 한두 끼는 아버님이 챙겨 드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밥을 챙기무야 된다꼬? 시애비한테 거기 할 소리가?”
처음 강노인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며느리 탓만 할 수 없었다. 아내가 입원하면 당장 의식衣食이 문제다. 강노인에게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간다는 것을 언감생심이다. 강노인의 의식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더구나 아내가 치매라니. 아무리 말하라고 생긴 입이라지만 어른 앞에서 할 말이 따로 있는 법인데 며느리의 태도가 갈수록 불손해진다. 며느리만 아니다. 아들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아내의 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 더 못 견딜 일이다. 제 어미가 아프다는데 갈수록 콧방귀만 뀌니 환장할 일이다. 아프다고 누웠던 아내가 입원을 원하자 며느리가 냉정하게 말했다.
“어머님은 지금 돌아가셔도 아무도 아깝단 말 하지 않아요. 돌아가실 때도 됐잖아요.”
“니가 지금 무슨 말을 그리 하노? 당장 내 집에서 나가거라.”
강노인은 며느리를 내쳤다. 그날 서울에 사는 두 딸과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너거 어메가 아무래도 큰 병이 들었는 갑다. 자꾸 저리 아푸다쿠이 병이 이싱께 아푸다 쿠는 기다. 모시고 큰 병원 가 봐라. 여거 병원에서는 병이 없다는데도 자꾸 아푸다 쿠이 암만 캐도 큰 병원에 가 봐야 하것다. 너거 동상은 마음병이라 카는데 너거 어매가 마음병 들기 머가 있것노. 분명 몸에 탈이 생긴 기다.”
그때는 두 딸과 서울아들이 당장 달려왔다. 아내와 강노인을 서울로 모셨다. 서울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유명하다는 한방병원에 가서도 검사를 했지만 아내의 몸에는 걱정할 만큼 큰 병은 없었다. 서울의 세 자식은 번갈아가며 유명 음식점이랑 관광지를 데리고 다니며 생전 처음 맛보는 귀한 음식도 사주고, 백화점에 가서 비싼 옷도 사 주며 호강을 시켜주었다. 세 집 순례기는 보통 일주일이면 끝났다. 세 자식 집을 한 순배 돌고 나면 어느 집이나 두 노인이 시골집에 내려가길 노골적으로 바라고, 아내 역시 더 이상 서울에서는 못 살겠다고 시골집에 가자는 것이다. 자식들 눈치가 보이는 거다. 강노인은 서울이 좋기만 한데. 서울아들에게 의탁하면 만사가 좋을 것 같았다. 병원 가깝지. 구경할 것 많지. 호기심 많은 강노인에게 서울은 볼 것 천지다. 아파트라는 곳도 시골집보다 좋았다. 며느리가 끼니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려주니 호강은 따 논 당상이었다.
“우리가 고마 서울 큰 아한테 와서 살자.”
“당신만 서울에 사소. 나는 촌에 갈라요.”
아내는 질색 팔삭을 했지만 강노인은 서울아들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아들은 며느리에게 물어보겠다더니 그날 밤, 아들부부는 대판 싸움을 했다. 강노인과 아내는 옆방에서 죽은 듯이 있었다. 아니, 한숨만 쉬었다. 딸들은 출가외인이니 자기들은 친정 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했다. 다음 날 강노인은 아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왔다. 시골며느리가 시외버스 터미널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두 노인 모시러 오는 며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것이 벌써 육칠 년은 더 됐지 싶다.
며느리는 반찬이랑 국이랑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놨으니 끼니 거르지 말고 챙겨 잡수란다. 강노인은 ‘니가 고생이 많다.’고 말한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며느리 역시 배시시 웃으며 마당을 나간다.
강노인은 자식들에게 서운하다. 보릿고개 넘기면서도 자식들 먹이려고 주린 배를 허리띠로 졸라맨 부몬데. 자식들이 늙은 부모를 거추장스러워하다니. 문제라면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인데 강노인은 인정할 수 없다. 노인 백세 시대 아닌가. 오래 살고 싶지 일찍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돈 있겠다. 건강만 잘 챙기면 백세까지 무난히 사는 세상이다. 강노인은 여든대여섯까지도 다리에 기운 빠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지팡이를 짚는다는 것도 자존심 문제였다. 팔십이 된 아내가 유모차를 미는 것을 보고 혀를 쯧쯧 찼던 노인이다.
“멍청한 것, 지 몸 관리도 못해서 벌써 그 괴상한 물건을 끌어? 손자 손녀 키울 때도 안 썼던 것을 쓰다니. 넘세스럽다.”
그러면서 아내를 구박하던 강노인도 미수가 되었을 때는 지팡이를 짚기 시작했다. 지팡이 없이는 동네 한 바퀴도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몸에 좋다는 건강식은 수시로 구해 독식을 하고 참붕어. 메기, 사골, 보신탕, 홍삼, 로열젤리, 장수도라지 등등, 한약과 영양제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기력은 자꾸 떨어졌다.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몰고 사방천지 돌아다닐 때가 좋았다. 게이트 볼 경기장에 오갈 때만 해도 쌩쌩했다. 시나브로 오토바이 타는 것이 힘에 겨워지자 자전거를 구입해서 타고 다녔다. 이태 전만 해도 자전거는 쌩쌩 잘도 탔는데. 지금은 자전거도 중심이 안 잡혀 못 타겠다. 그래도 강노인은 스스로 늙음을 인정할 수가 없다. 자식들에게 이것 해서 보내라, 저것 해서 보내라 강요가 당연했고, 아내와 옆에 사는 자식에게 툭하면 사골이나 참붕어 사다 곰 하라고 닦달했다.
“멈스리 난다. 일평생 저 영감탱이 곰 해 바치다 쪼그랑망테이가 됐다. 올매나 오래 살라꼬 저리 사람을 덜덜 볶을꼬. 니가 없시모 아무것도 안 되것다.”
아내는 며느리를 붙들고 하소연이 늘어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