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끝>
예를 들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지리산 골짝에 쓸모도 없이 버려졌던 산이 어느 날 돈 덩어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 산에 모 대기업에서 회사 직원들이 사용할 연수원을 짓겠다고 산을 매입하러 온 것이다. 주먹구구식이지만 이에 밝았던 달곤 씨는 ‘값만 맞으모 팔지요.’ 한 마디 툭 던져놓고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가격을 말해야 흥정이 될 텐데 ‘값만 맞으모 팔지요.’ 한 마디 툭 던져놓고 쓰다 달다 말이 없으니 애가 닳은 쪽은 땅을 살 사람이었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팔 듯 팔 듯하면서 땅 임자가 입을 다물 때는 상대방이 더 애가 닳아서 웃돈을 듬뿍 얹어주면서 팔기를 종용한다. 상대방에겐 그 땅이 적임 지니 어쩌겠는가. ‘값만 맞으모 팔지요.’ 그 말에 속아서 설계도까지 작성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을 때는 다른 곳을 알아볼 여력이 없어진 뒤였다. 덕분에 달곤 씨는 시세보다 몇십 배 더 받아 챙길 수가 있었다.
달곤 씨는 목돈을 그저 은행에 넣어 이자를 늘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싼 야산을 사고, 도시에 아파트를 사놨을 뿐 달곤 씨는 땅 값이 천정부지로 뛰든 말든 농사꾼으로 엎어져 살았다. 누구에게 부티를 내는 것도 아니고, 너도나도 국가에서 주는 주택 자금 받아 재래식 촌집을 날아갈 듯 양옥으로 개조해도 일어서면 이마를 숙여야 들고나는 촌집을 그대로 유지하고 살았다.
우리도 집 좀 고칩시다. 애들 오면 방이 모지래는데. 잘 방이라도 하나 더 늘리든가. 이참에 싹 밀어뿔고 새 집을 짓든가. 낭구 하기 귀찮다 아이요. 이참에 우리도 슬슬 끓는 지름보일라 넣고 편하게 좀 삽시다.
아무리 말해도 달곤 씨에겐 마이동풍이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간 가랑이가 찢어진다는데 할 말이 있겠는가. 그렇게 고집스럽던 달곤 씨도 며느리 들이는 일 때문에 자기 고집을 접어야 했다.
사건의 진상은 이랬다. 일류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큰 아들이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누렸다. 장래가 총망되는 아들이 중앙 부처에 근무를 하자 아들의 짝으로 역시 일류 대학을 졸업했다는 처자가 생겼다.
아들이 처자를 데리고 시골에 첫 선을 보이러 온 날, 허벅지가 보일락 말락 한 짧은 치마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피부가 뽀얀 도시 처녀는 재래식 화장실을 못 가 안절부절못하더니 급기야 마당에서 서성이다 택시를 불러 내 빼버렸다.
아들에게서 결국 그 처자와 헤어졌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달곤 씨는 농사일도 접어버리고 며칠을 꿀 먹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끙끙 앓았다. 며칠 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달곤 씨는 인맥을 통해 건축업자를 불렀다.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날아갈 듯 좋은 집을 지었다. 좋은 집이라 해 봤자 달곤 씨 기준이지 이미 동네마다 흔한 시멘트 벽돌로 지은 네모반듯한 양옥이었다. 집안에 싱크대와 화장실까지 갖추자 쇠죽 끓일 구정물은 어찌 받느냐며 한숨이고, 멀어야 하는 뒷간 보면서 밥 먹게 생겼다고 한숨을 있는 대로 쉬는 달곤 씨였다.
하지만 달곤 씨는 제 장신(자신의 몫)만은 확실하게 했다. 시골집에서는 필수인 널찍한 창고를 짓고, 창고 뒤쪽에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고, 창고 옆에는 작은 사랑방을 넣었다. 아궁이에 가마솥을 걸어 군불을 땔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장만했다.
달곤 씨는 그 집에서 6남매를 다 시집장가보냈다. 이제 둘만 남은 달곤 씨 부부는 안채는 자식들 오면 쓰는 집으로 놔두고, 아래채 사랑에서 영감 할멈 둘만의 오붓한 노후를 보냈으면 싶지만 한골 댁으로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당신은 아래채에 하숙생으로 살고, 나는 위채에 안주인으로 살 테니 더 이상 말 마소.’ 남자는 나이 들수록 고개 숙인 남자가 되고, 여자는 나이 들수록 고개가 빳빳해진다더니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달곤 씨는 집에 있어서만은 한골 댁의 기갈을 꺾지 못했다.
낭구를 올매나 사 왔소? 여게 실린 기 다요? 이것도 한 백주는 족히 되것는데.
경운기 뒤에서 한골 댁이 물었다.
반만 챙기 간다. 창고에 그만큼 남았는데. 낼까지 심으모 다 심을랑가.
아이고, 일 났네. 일 났어. 이걸 다 우찌 가깔라꼬 이라꼬. 풀약 칠 기운이라도 남았소? 너머 손 빌리모 몇 년을 돈만 왕창왕창 물다가 황천객 되것네. 일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아이고, 내가 참말로 몬 살아. 영감, 내가 무쇤 줄 아요. 내 나가 벌써 칠십이요. 칠십!
누가 임자보고 가까라나. 낭구는 심어만 노모 저절로 크는 기라.
저절로 좋아하네. 안 가까도 되는 농새 봤소. 이 양반이 자다 봉창 뚜딜기는 소리만 하네.
아내가 계속 투덜투덜했지만 모르쇠 하고 달곤 씨는 경운기를 몰면서 힐긋 경운기 짐칸을 돌아봤다. 나무는 금세 땅 내를 맡을 것이고, 한 달 새 잎눈이 뾰족뾰족 돋을 것이다. 달곤 씨는 눈앞에 삼삼한 단감 과수원을 그려봤다. 저절로 입이 벙싯벙싯 해졌다. 삼 년만 지나면 감이 달릴 것이고, 시나브로 따 내도 일용할 용돈이 될 것이고, 도시에 나가 사는 자식들 오라 가라 하며 손자 손녀에게 용돈도 쥐어줄 수 있을 것이다. 달곤 씨는 속으로 아내를 탓해 본다.
노는 땅 쪼매 심만 디리모 되는 걸, 또 내 대에 느리 못 보모 다음 대에 느리 보모 되는 긴데 게을바선 에편네가 우찌 된 판인지 날이 갈수록 농뎅이 칠 궁리만 해 대니 집안 꼴이 잘 돌아가것다. 이분에 단감 농장이 골프장 맹그는데 들어간 것도 다 내 덕인 기라. 암것도 모름시로 까불랑 기리기는.
달곤 씨는 경운기의 속력을 빵빵하게 올려 가파른 산길을 달리면서 빙그레 웃었다. 만여 평의 단감 농장을 거금에 넘겼다. 동네 사람들 95%가 반대하는 골프장 건설 부지에 있던 과수원이었다. 사전에 달곤 씨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골프장 부지는 다른 지역으로 날 공산이 컸다. 서울 도청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골프장 부지를 달곤 씨네 산 쪽으로 잡을 수 있도록 물밑 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달곤 씨가 지시한 대로 그의 산 쪽으로 골프장 부지가 확정되었고, 산을 개간해 만든 단감 과수원은 달곤 씨를 또 한 번 돈방석에 앉게 만들었던 것이다.
달곤 씨는 골프장 개발 업자에게 팔아 치운 땅 값 중 일부를 떼어 이웃 골짝에 버려진 산을 싼 값에 매입했다. 그 산을 개간하여 다시 단감 묘목을 심기로 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거나 말거나 달곤 씨는 배짱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달곤 씨는 동네 사람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겉으로는 어르신, 어르신 하지만 돌아서면 제 것 밖에 모르는 돈독 오른 늙은이로 치부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달곤 씨는 경운기의 속력을 최고로 올려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그래, 욕 할 테면 해 봐라. 욕 들어오는 구멍은 없더라. 나처럼 얍삽하게 살 줄 모르는 너거가 병신이제. 칠십 평생을 살아왔지만 국가 시책에 반대해 봤자 소용 있던가. 암만, 그럴 바에야 적당히 눈치 챙겨 내 앞가림하는 기 잘 사는 법이제. 아암, 내가 너거처럼 그리 살았시모 우리 자슥들 공부나 갈찼것나. 수남이 고년 대학물 묵고 사장 여편네 됐다고 고개 빳빳하게 들고 댕기더마 지금 우떻노. 늙어 병들어 사글세도 못내 쩔쩔 맴서 산다제. 꼬신 것. 그라이까내 길고 짧은 거는 대 봐야 아는 기라. 아암
게슴츠레하게 눈이 풀린 달곤 씨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갑자기 경운기 짐칸에 앉았던 한골 댁이 고함을 팩 질렀다.
보소, 좀 천천히 갑시다. 저 바구 밑은 낭떠러진데. 이 양반이 와 이카노. 아요? 영감! 영가 암!
달곤 씨의 경운기는 커다란 너럭바위 아래로 떨어져 내렸지만 달곤 씨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은 채 몽롱하게 웃고 있었다. 아마도 행복한 백일몽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