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처음>
나무를 심는 이유
제 깐 놈들이 뭔데. 내 땅 내가 팔아 묵는데 감내라 배내라 해. 까불랑기릴 심 이시모 농새나 제대로 짓제. 지 할 짓도 못하는 것들이 누 보고해라 마라야. 우리 땅이 젤 많아 안 팔고 버텨줬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놈들아!
김달곤 씨는 텃밭에 뿌리만 흙으로 덮어 놨던 단감나무 묘목을 꺼내 경운기에 실으며 씩씩댔다. 동네 마을 회관에서 걸친 막걸리 몇 잔이 새끼를 친 것처럼 숨길이 가빠온다. 달곤 씨가 동네 회관에 나갔다가 골프장 건설 반대 대책 위원회 회원과 동네 사람과 맞닥뜨렸던 것이다. 막걸리와 김치를 안주 삼아 뜨거운 목소리가 마을 회관 밖까지 달구던 차에 달곤 씨가 회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목소리가 일순간 뚝 그쳐버렸다.
아재요. 막걸리나 한 잔 하이소.
그중 한 명이 머쓱하게 서 있는 달곤 씨에게 마지못해 막걸리 잔을 권했다. 달곤 씨는 선 자세로 막걸리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켜고 누가 등을 미는 것도 아닌데 쫓기듯 마을 회관을 벗어났다. 뒤통수에 잉걸불이 붙은 것처럼 홧홧했다.
뭐 하노? 해가 한 발이나 빠졌거마. 땅이 꼽꼽할 때 심어야 할 낀데. 무슨 여편네가 그리 꾸물 기리노. 그륵 두어 개 씩다가 볼일 다 보것다. 이놈의 여편네가 머 한다꼬 아직이고?
달곤 씨는 경운기에 올라앉아 냅다 고함을 질렀다.
영감태이가 지랄겉은 소리만 골라서 한다. 뭔 지랄 한다꼬 또 낭구를 심어 심기는. 무슨 누리 볼 기라꼬. 내 죽고나모 촌에 들어와 낭구 가깔 아도 없건마는. 우째 저리 난리벅구를 치꼬. 혼자 가소. 깨까드럽은 영감 혼자 하제.
달곤 씨의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아내는 미끼를 탁 낚아챈 물고기처럼 달곤 씨의 말을 날름 받아 입 총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여편네가 그리 게을바사서 오데 써 묵것노.
평생 내 아니모 농새도 못 지 묵을 영감이 넘 겉은 소리 하고 있네. 그리 바뿌모 혼자 가서 싱구라모. 내사 온 삭신이 쑤시서 못해 묵것다.
이놈의 여편네가 한 마디도 안 질라쿠노.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아침에 멀 잘 못 뭇나. 이걸 고마 콱!
달곤 씨는 경운기에서 내려 경운기 짐칸에 실었던 묘목 한 단을 들어내 마당에다 패대기를 쳤다. 그제야 한골 댁도 입을 다물고 거름소쿠리와 괭이, 삽을 챙겨 나와 경운기 짐칸에 올리고 자신도 경운기 짐칸에 올라탔다.
무슨 느리 볼끼라꼬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원, 아이고 내 팔자야. 영감 잘못 만나 내 평생 고상이다. 문디 겉은 영감태이 일을 벌리모 혼자 하모 되제. 꼭 내를 달고 댕길라 쿠니. 무슨 염친지 모르것다.
달곤 씨는 아내가 구시렁거리든 말든 한쪽 귀로 흘리며 경운기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부릉부릉 탈 탈 탈 탈’ 경운기는 신나게 동네를 벗어나 이웃 동네로 향했다. 그의 산비탈 밭으로 들어서는 길은 좁고 가팔랐다. 골짝으로 들어갈수록 경운기는 힘이 달리는지 낑낑대기 시작했지만 달곤 씨는 의외로 소태 씹은 것 같았던 얼굴을 풀고 씨익 웃었다.
왜냐면 아내 때문이었다. 일끝 야문 아내가 구시렁거리면서도 따라나서 주니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저거 놈들이 머라 캐 봤자 탁상공론일 뿐이지. 뭔 일 할기라고. 죽은 다 끓어 묵자 판인데.’ 그러면서도 조금 전 동네 회관에서 당한 수모에 속이 쓰렸다. 새삼스럽게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아내는 벌써 허리도 꼬부라지고, 무릎은 오 자형이 되어버렸다. 달곤 씨에게 시집온 지 오십 평생을 농사일로 부림을 당했으니 성한 구석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할 판이다.
달곤 씨는 젊어서부터 그랬다. 입씨름을 하더라도 아내랑 같이 움직여야 일할 맛이 났다.
저 집은 바늘 가는데 실이 안 따라가모 큰 사단이 나제. 한골 양반 기갈에 몬 산다쿠드라.
하지만 달곤 씨 아내 사랑은 지극했다. 자식을 한 탯줄에 6남매를 낳아 한 명도 잃지 않고 오롯이 키워냈고, 한 자식도 농사꾼으로 만들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안다.
달곤 씨가 자식들에게 누누이 각인시키는 점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촌에 살 생각은 하지도 말고 농사꾼 할 생각은 아예 묵지 마라. 너거는 우짜든지 공부 잘해서 책상물림으로 살아야 한다. 못 돼도 면서기는 해야 한다. 낫 놓고 기역자 겨우 깨친 우리야 어릴 적부터 몸에 익은 것이 지겟다리 등때기에 붙이는 일이었다. 농사가 천하지대본이라 해도 농사꾼 알아 모시는 사람 없고, 우러러보는 사람 없더라. 우리가 고생을 해도 너거 뒷바라지는 해 줄 터이니 너희는 죽어라 하고 공부만 하면 된다.’
달곤 씨는 공부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방앗간 집 수남이를 한없이 사랑하던 사춘기 시절이 있었다. 긴 댕기머리 나풀거리며 책 보따리 등에 매고 소학교를 다니던 그녀, 동네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었던 그녀를 달곤 씨는 흠모했었다. 방앗간 집 고명딸이던 그녀, 그녀는 성질 드센 세 오빠들 틈에서 자란 탓인지 선머슴아 같았다. 달곤 씨는 어쩌면 그녀보다 그녀의 등에 매달린 책 보따리가 더 절실했는지 모른다. ‘달곤아, 달곤아, 나하고 노올자.’ 남녀 칠 세 부동석이 엄연한데도 샘터에서 물을 길어 오거나 나뭇짐을 지고 오다 골목에서 마주치면 생글생글 웃으며 놀렸다. 달곤 씨는 얼굴에 화톳불이 확확 일어나곤 했었다. 그 수남이가 대학생이 되어 고향에 올 때면 달곤 씨는 부러 지겟다리에 새끼줄 뭉치 걸치고 도끼 들고 산에 들어가 온종일 나무를 찍어댔었다.
농사꾼 총각 달곤 씨도 장가를 갔다. 한골이란 동네에 살던 처녀랑 혼인을 함으로써 한골 양반이 되었다. 아내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한 사람이었다. 달곤 씨 부부는 어떻게든지 벌어서 내 자식만큼은 최고 학부 생을 만들겠다고 맹세했었다.
달곤 씨 부부는 공부를 등한이 하는 아이에게 가차 없이 매를 들었다. 아이들 또한 부모의 바람대로 공부를 썩 잘했다. 그렇게 6남매를 대학 공부시켜 시집장가를 보냈다. 지난가을 막내아들까지 제 짝을 찾아주었으니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더구나 자식들이 모두 돈복을 타고났는지 부모가 꿍꿍 농사만 지어도 자식들 뒷바라지할 길이 열렸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짓고 태어나서 그런지, 워낙 근검절약이 몸에 밴 농사꾼을 천직인양 알고 살아서 하늘이 복을 점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왔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