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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과 매듭

<단편소설. 처음>

by 박래여

끈과 매듭



머라꼬? 니 머라 캤노 지금, 말 다 한기가? 너거 딸 욕했다꼬? 니는 우리 아들 사사건건 안 씹나. 니 딸은 귀하고 내 아들은 안 귀하다 이 말이제? 참 더럽게 배워 처먹었구나. 오냐. 그 유식한 입에서 육도 문자가 나오는 거 보이 니도 엔간히 속이 뒤집히제? 그리 욕해도 침 한 번 꼴깍 삼키모 니 모가지 넘어가는 기 입살이다. 죄 좀 고마 지라~이.

손윗동서의 전화를 받던 채임은 시어머니가 듣고 있다는 것도 깜빡하고 맞받아쳤다.

아니나 다를까 시어머니는 마늘을 까 담던 삼태기를 밀치고 벌떡 일어나 달려오더니 채임의 손에 있던 수화기를 빼앗아 들고 고함을 쳤다.

듣자, 듣자 하니 이것들이 누굴 핫바진 줄 아나. 야, 이 것들아, 쌈박질할 심 있걸랑 가서 일이나 해라. 두 년 다 싸잡아 낙동강에 처박아도 쌀 년들. 전화 안 끊나? 할 일이 없시모 서방 따라 논에 가서 짚이라도 걷던지. 가게에 나가서 물건이라도 팔던지. 두 년 다 자알 논다. 시에미가 너거 노리개 감이가? 도대체 뭐 하는 년들이고? 요놈의 전화를 박살 내삐던지 해야제.

채임이 붙잡기도 전에 소남댁은 전화기를 마룻바닥에다 패대기쳤다. 전화기의 몸체는 귀퉁이가 깨어져 뒹굴고 수화기는 마루 구석에 처박히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이고 어머이, 전화가 뭔 죄디예. 또 돈만 날아갔네. 아주버님 보고 이번엔 더 멋진 걸로 사 도라쿠이소. 전화기가 깨졌다 아입니꺼.

채임이 잔뜩 주눅 든 시늉으로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며 소남댁의 눈치를 살피는 척 마루 끝에 걸터앉았던 궁둥이를 슬쩍 당겨 가운데 기둥을 붙잡았다.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칠 자세를 취하자 며느리 하는 꼴을 바라보던 소남댁은 그만 혀를 쯧쯧 차며 다시 마당에 내려가 마늘 삼태기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퍼질러 앉았다.

채임은 조용히 전화기를 주워 제 자리에 놓고 전화가 되는 지 확인을 했다. 발신음이 길게 울렸다. 방에 들어가 유리 테이프를 찾아다 귀퉁이 깨진 곳을 붙여 제 자리에 놓고 집 앞까지 내려온 단풍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붉어지기까지 올매나 심 들었시꼬. 곧 바짝 말라서 바람에 나 뒹굴 팔잔 줄이나 알까. 참말로 지랄 것은 세상이다. 그 여자와 나는 전생에 무슨 큰 원한을 진 사인기라. 안 그라모 이럴 수가 없제. 참말로 기가 맥힐 노릇이다. 푸닥거리를 하던지 해야지. 진짜 못 참것다. 엔간하모 내가 참아삐제. 똥이 무서버서 피하나 더러버서 피하제. 흔대도 이렇게 뜬금없이 전화질을 해 내 속에 불을 지르니 아무리 내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 캐도 참을 수가 없단 말이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분하다.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면서 실컷 울어나 봤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썩어 죽을 년들. 지 서방 등 꼴이나 쪽쪽 빼 묵고 배가 부른 깨 오감해서 지랄이제.

시어머니는 채임이 듣거나 말거나 마늘을 까면서 독설을 뱉어낸다.

채임이 가만히 듣고 있자니 또 슬그머니 부아가 치솟았다. 내가 전화를 한 것도 아니고, 형님이란 그 여자가 먼저 전화를 해서 벌어진 일인데 늘 나만 탓을 해 싶다.

어머이 형님 불러다 놓고 그런 말 하이소. 지만 듣고 있자니 속이 불편하네 예.

그래 니 말 잘 했다. 너거가 잘 지내모 내가 이라것나?

내만 탓하지 마이소.

자알 한다. 머 잘했다꼬 시에미한테 꼬박꼬박 말대꾸고?

참 어머이도, 시집살이 한 지가 몇 년인데 말도 못 합니꺼.

머라꼬? 그래 알았다. 인자 시에미는 눈에 뵈지도 않는다 이 말이제? 날로 달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구나. 그래 두 년 다 자알 났다.

잘나기는 어무이 큰며느리가 잘 났지예. 지야 뭐 잘난 기 있어야지예. 맨날 집안에서 구박 데기 못 면하는 팔잔데.

누가 니를 구박하데?

어머이가 지금도 며느리 차별 대우 한다 아입니꺼?

지랄한다. 큰 년은 큰 년대로 작은 년만 역성든다고 지랄이고, 작은 년은 작은 년대로 큰 년 역성든다고 지랄이니 고초 당초 매운 시에미 노릇도 다 옛날 말이다.

인자 알았어 예? 나는 진작 알았는데.

머라꼬?

채임은 붉으락푸르락 하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

어머이, 그래도 멀리 있는 자슥보다 가까이 있는 지가 더 좋지 예?

성을 내는 시에미 앞에서 저 말하는 뽄새 보소. 니 누구 넘어가는 꼴 보고 싶나?

지금 당장 어무이 넘어 가모 가차이 있는 내가 먼저지. 형님은 우짜다가 얼굴이나 디밀면 용체. 안 그래 예?

내가 말을 말아야제. 퍼떡 마늘이나 까거라. 낼 모래는 심어야제.

맨날 형님만 챙겨 줌서 마늘도 심으로 오라쿠지예. 어머이는 와 형님한테는 맨날 오냐오냐 합니꺼? 말을 해도 오데 그리 모질고로 하꼬. 참말로 안 보고 살았으모 좋것다.

오냐. 너거 두 년 다 뵈기 싫어 나는 절로 갈란다.

소남댁은 말을 그렇게 했지만 작은 며느리 보기가 영 거북했다. 따지고 보면 작은 며느리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어쩐 일인지 큰 며느리는 손이 아팠다. 어쩌다 한 번씩 오지만 왔다가 갈 때까지 가시 방석에 앉은 것처럼 편치가 않았다. 큰 며느리가 워낙 깔끔스러운 성격 탓도 있겠지만 원체 곁을 내 주지 않으니 며느리지만 손이 아팠다. 며느리가 시댁 오면 부엌에 들어가 상을 차려야 하지만 상 차리는 사람은 시어머니였다. 상전이 따로 없었다. 제사가 닥쳐도 큰 며느리에게 '인자 니가 제사 음식 준비해라'소리를 못했다.

아마도 큰아들 장가보낼 때부터 기가 죽은 탓일 것이다. 며느리는 낮게 보고, 사위는 높게 보라 했지만 소남댁에게 큰며느리는 과한 며느리였다. 대구에서 꽤 알려진 가구점을 운영하는 집 딸인데다 큰아들은 그 집 일꾼이었다.

소남댁은 겨우 밥이나 끓일 만큼 가난한 살림이었다. 땅이라고 해 봤자 등 너머 산 하나와 그 아래 딸린 다랑이 두어 도가니와 텃밭 한 떼기가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큰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소남양반이 돌아가셨다. 가장을 잃은 소남댁은 아들 둘에 딸 셋을 데리고 과부가 되었다. 소남댁은 큰 아들을 면 소재지 중학교만 겨우 졸업시킨 후 먼 친척뻘이 소개한 그 가구점에 취직을 시켜 보냈다. 장남답게 성격이 무던하던 큰아들은 다달이 봉급을 받아 부쳤고 그 덕에 작은 아들과 세 딸의 공부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다.

또 큰아들이 착실하게 일 해준 덕에 사장의 눈에 들어 야간 고등학교나마 졸업장을 딸 수 있었고, 금지옥엽이던 사장 댁 고명딸과 정분이 나 그 집의 사위가 될 수 있었다. 현재 대리점을 두 개나 가질 만큼 번듯한 가구점 주인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맏며느리 덕이다.

그러다 보니 시어미 노릇을 한 번도 제대로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곁을 주지 않는 맏며느리 탓이기도 했다. 어쩌다 시댁이라고 오면 어찌나 깍듯하고 공손한지. 비싼 선물만 바리바리 사다가 넣어 주고는 마루에 궁둥짝만 한 손수건을 펴고 앉았다가 일어나며'어머니 저는 바빠서 그만 가 봐야 해요. 자 여기 용돈 두둑하게 넣었으니 필요하신 것 사셔요. 그이가 바쁘다 네요.'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곤 했다. 제사 때도, 명절 때도 큰아들만 오기 일쑤였다. 이런 저런 핑계 꺼리 만들어 오지 않으려 하니 며느리와 정 붙일 틈이나 있었을까 마는.

그러다가 작은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소남댁은 시어미 노릇을 톡톡히 했다. 작은 며느리는 편했다. 물론 낮은 며느리를 본 탓이기도 했다. 종갓집 열 개도 넘는 제사 수발이며, 종중 묘제며, 명절이면 늘 작은 며느리를 불러 음식 준비를 시켰다. 작은 며느리가 손끝이 맵고 음식 솜씨가 좋은 데다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부리기에도 편했지만 더 모질게 부려먹는 것은 억울함 때문이었다. 집안의 자랑이던 둘째 아들이 작은 며느리를 택하면서 불러왔던 파문은 오래 토록 소남댁을 괴롭혔다.

니가 우리 집에 온지 올매나 됐노?

소남댁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없이 마늘쪽을 내고 있던 채임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처럼 시어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니가 우리 집 식구 된지가 올매나 됐노 말이다.

한 20년 됐지예. 큰 애가 올 해 스물여섯이니.

벌써 그렇게 됐나? 또옥 돌시 만인가. 세월 참 빠른 기데이.

소남댁은 엊그제 일처럼 선명했던 그 가을 한 철이 생각났다. 세상이 노랗게 보이던 가을이었다.

작은 아들은 어디 내 놓아도 빠질 게 없었다. 인물 좋고, 학벌 좋고, 대기업 건설회사라는 든든한 직장까지 가진 아들이다 보니 기대도 컸다. 더구나 그 즈음 괜찮은 혼처 자리가 났다. 장가들라는 말에 대꾸도 않던 아들이 무슨 맘인지 맞선을 보았다. 등 너머 알부자 소리를 듣는 장씨 집 딸이었다. 맞선을 보자마자 처녀 총각이 서로 좋다는 바람에 양가 부모의 허락까지 떨어지고 곧 약혼식을 하네 어쩌네 하던 중이기도 했다.

그 날도 아들은 주말을 맞아 집에 왔다. 저녁에 선 본 처녀랑 만나기로 했다면서 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무이 가실할 거 없십니꺼? 담 주 쯤 나락 베야지예

하면서 일할 차비를 하는 아들이 고맙고 대견했다. 소남댁은 그런 아들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내 새끼지만 우찌 저리 귀티가 좔좔 할꼬.

볼수록 대견하고 듬직한 아들이었다.

야야! 이런 기 왔더라.

소남댁은 선반에 올려놓았던 사각 봉투를 아들에게 내 밀었다. 이틀 전에 우체부가 가지고 온 편지였다. 까막눈인 소남댁은 그 편지가 누구에게서 무슨 일로 보낸 편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수롭잖게 편지를 받아 들었던 아들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무슨 편지냐?

별거 아닙니더.

그라마 와 그리 놀래노? 무슨 나뿐 소식이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러네예. 어머이는 알 필요 없십니더.

그 날 오후 내내 얼이 빠진 사람처럼 좌불안석 하더니 다 저녁 때 아들은 급히 가 볼 때가 있다고 집을 나섰다.

담 주에는 집에 못 올낍니더 기다리지 마이소.

야가 무슨 소리 하노? 새 애기될 처니랑 만낸담서?

전화 오모 급한 일이 있어 회사에 들어갔다고 해 주이소.

아들은 허둥지둥 떠났다.

소남댁은 자신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나 싶어 덩달아 가슴이 뛰었다. 아들은 군대 제대 한 후 두 해 남았던 대학을 마치고 한창 붐이 일던 건설 업체에 취직을 해서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떠났던 아들은 가을바람이 불 때까지 소식도 없었다. 처녀 집안에서는 혼사를 서둘자고 재촉이 빗발치는데. 정작 당사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희다 검다 말이 없었다. 속이 탄 소남댁은 동네 이장 집에 한 대 뿐인 전화통을 붙들고 통 사정을 했다.

무슨 일이냐. 집에는 왜 안 오느냐. 요사이 새 아기 될 처니는 왜 안 만나느냐. 니가 자꾸 바뿌다는 핑계로 만내주지 않는다고 섭해 하드라.

한 달이 훌쩍 흐른 뒤일 것이다. 전화가 왔다는 이장댁의 연락을 받고 달려가 수화기를 드니 풀이 죽은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야! 무슨 일이고? 니 뭔 일 있제? 전화 연락도 안 되고 통 소식도 안 주고 우짠 일이고? 내가 속이 타서 죽을 판이다. 너거 성한테 찾아가 보라 캤는데 만냈더나?

어머이 가서 다 말씀 디리께예. 이번 주에 집에 갈낍니더. 어머이 오데 가지 마시고 기다리고 계실소.

오냐 알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것지만 몸 상할라. 니 밥은 꼬박꼬박 챙기 묵나? 처니 한테도 전화해라. 내가 우리 집으로 오라쿠까?

아니예. 그라지 마이소. 그 처니하고는 내가 만내서 이야기 하낍니더. 어머이는 가만히 계시기만 하이소.

그 길었던 한 주일이 지나고 눈이 빠지게 기다린 아들이 대문간에 들어섰다.

소남댁은 신발을 질질 끌며 뛰어나가 아들의 손을 잡았다.

어머이!

오냐! 내 새끼. 우짠다꼬 살이 쏘옥 빠졌노? 퍼떡 들어가자.

손님이 있습니더.

누가?

정호야!

아들이 골목을 향해 이름을 부르자 골목길 앞 집 담장 옆에서 대 여섯 살짜리 남자 애 손을 잡고 주춤거리며 나오는 젊은 아낙과 아이를 보는 순간 소남댁은 숨이 터억 막혔다.

정호야, 할머니께 인사해야지.

아들은 아이의 손을 잡아 소남댁 앞으로 내 세웠다.

내가 꿈을 꾸는 기가?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제. 대체 이기 우짠 일이고.

어머이 다 말씀 디리겠습니더. 안으로 들어가입시더. 니도 빨랑 들어 온나.

소남댁이 휘청거리는 다리를 겨우 가다듬어 마루에 올라가 걸터앉았다.

아들은 아이의 손을 잡고 축담을 오르고, 젊은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부가 뽀얗고, 얼굴이 갸름한 것이 남자 여럿 잡을 여자로 보였다. 그나저나 아이를 보니 분명 손자가 맞긴 한데. 여자는 아무리 뜯어봐도 아들보다 나이 들어보였다.

아들은 일단 방으로 들어가자 했지만 소남댁은 마루에 앉은 자세로 아들을 추궁했다.

세세히 이약이나 해 보거라

하면서 아들과 마당에 서 있는 여자를 번갈아 봤다.

아들은 마루에 꿇어앉아 어머니께 용서를 빌며 여자랑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평지풍파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집안의 자랑이었던 아들이 대여섯 살이나 많아 보이는, 아이가 딸린 여자를 데려와 결혼을 허락해 달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그만 소남댁은 얼굴이 하얗게 변해 기함을 했다.

빨리 부엌에 들어가 물 한 컵 떠 온나

아들은 쓰러지는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여자에게 소리쳤다.

소남댁은 일 없다고 손사래 치며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자초지종을 듣기로 했다. 여자는 아들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이혼녀라는 것이 아닌가. 아들의 아이를 낳아 몇 년을 혼자 키우며 살아왔다지 않는가. 계속 혼자 키우지 왜 이제 와서 아이 아버지를 찾을 결심을 했느냐고 묻자 여자는 막상 혼자서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에게 아버지가 있어야겠고, 또한 아이 아버지가 결혼 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견딜 수가 없어 당신의 아이가 이만큼 자랐으니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는 것이 아버지로서 도리가 아니냐고 편지를 했더니 그가 그 편지를 들고 찾아왔었고, 자기를 쏙 빼 닮은 아이를 본 그는 그 여자랑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소남댁은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처음 본 여자의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음을 가라앉히려니 이가 득득 갈렸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앞에 앉은 여자에게 타일렀다.

자네가 내 아들의 창창한 앞길을 막는구나. 저 아가 우리 아들 안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그라이 이 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 자네는 곱상한 얼굴 보니 내 아들 아니라도 딴 남자가 있을 것 같응께. 여러 말 할 것 없다. 둘이 몇 년을 소식 없이 살았다카니 앞으로 영영 만내지 말고 각자 살아 갔시모 좋겠다. 자네도 아를 키우니 내 맘을 알끼다. 앞으로 우리 더는 만내는 일 없었시모 좋것다. 야야, 이 새댁이 막차라도 태와서 보내주고 오니라. 니캉 내캉 이약 좀 해 봐야 할 거 아니가. 저 쪽 집에서 혼사날짜 잡자고 날시고 사람을 보내는데.

어머니 이미 그 쪽 집안에 파혼 통고를 했습니더.

하는 바람에 소남댁은 아들의 빰을 사정없이 연거푸 두 번을 갈기며 소리쳤다.

저 여자랑 애 데리고 니도 같이 가거라. 애 보는데 더 험한 꼴 보이기 싫거든 이 질로 가거라.

그렇게 아들을 집에서 쫓아내고 연락도 끊고 살다가 둘째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소남댁도 마음을 풀었다. 이미 살림 합쳐서 사는 것들을 갈라놓을 수가 없다면 결혼식이라도 올려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 간소하게 혼례를 올려주었다.


소남댁은 마늘 까던 손을 놓고 물끄러미 며느리를 바라보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느릿느릿 운을 뗐다.

그 가실에는 나락 농사도 우찌 그리 푸지로고 됐덩고. 니 그 때 참 서운했제? 내가 엔간히 모질고로 굴었제. 살다 보모 옛말 할 때가 있다더니 참말인 갑다. 니캉 내캉 이런 이바구도 할 처지가 됐으니 말이다.

소남댁은 새삼스럽게 며느리의 눈치를 살폈다. 시집 올 때만 해도 수양버들처럼 낭창낭창한 몸매가 남자 서넛은 후리고도 남을 여자구나 싶어 저 백여우가 지 둘째 동상 뻘인 내 아들을 꼬셨구나 생각하니 밉고 또 미웠었다. 하지만 이젠 나잇살이 올라 펑퍼짐하게 변해 버린 며느리는 아무리 봐도 여자다운 맛 보다는 푸짐한 인정이 몸에 배인 시골 아낙네였다.

그러게 말입니더. 옹이가 백혀도 수백 개는 백혔을 텐데. 지가 참 배알머리도 없지예?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이소 하고 살았으니 말입니더.

지랄한다. 좀 치켜세워 주모 저런다니까. 입은 삐뚫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꼬. 니도 인자 며느리 볼 나가 됐응깨 내 심정 알 날 머잖았다.

그래도 손주는 이뻐하데예.

하모 내 새낀데 내치것나.

어머이, 올해는 씨 마늘이 작년보다 배나 많네예.

하모. 너거 식구 묵는 것도 솔찮다. 돈도 좀 해야 할끼고, 일가붙이한테 인심도 써야 할끼고. 남아도는 땅 묵카삐는 것 보담 낫것제. 저 웃담에 있는 짜투리 논에 다 심을까 싶다. 낼 아칙에는 마늘 두둑 지라 캐라. 인자 니는 다 깐 마늘을 망에다 퍼 담아라. 들기 좋고로. 너무 많이 넣지 말고.

알았어예.

채임은 소쿠리에 담긴 씨 마늘을 바람 숭숭 넘나드는 망에다 담으며 지난 세월을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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