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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Sep 10. 2023

 솔선수범하기

 솔선수범하기     


 햇살 났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본다. 반짝거리는 나뭇잎이 숨을 죽인다. 그는 예취기로 마당을 다듬고 있다. 잔디 깎기 기계가 고장 났단다. 나도 갈퀴를 들고 나섰지만 금세 그의 손에 빼앗겼다. 해가 돋기 전인데도 땀이 흐른다. 폭염주의보로 또 시끄럽겠다. 곰팡이 때문에 못 살겠다던 어느 아낙의 하소연이 떠오른다. 우기에 곰팡이 피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곰팡이가 좋아하는 환경이 형성된 탓일 게다. 아파트에도 곰팡이가 핀다니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란다. 물 빠짐이 좋은 우리 집도 오랜 장마로 눅눅해지면 나무에 곰팡이가 핀다. 올해는 냉방기의 제습 덕에 뽀송뽀송하게 지낼 수 있었다. 전기세가 두 배로 올랐지만 여름 한철이다. 뽀송하게 살자. 그런 마음이었다.  


 감자를 삶았다. 파근파근한 것이 맛있다. 감자로 한 끼를 해결해도 되겠다. 위장약 덕인지 입맛이 돌아온 것 같다. 먹고 싶은 것이 생기는 것을 보니. 만약 내게 위암 같은 게 생겼다면 그냥 받아들일 생각이다. 살겠다고 아등바등할 생각이 없다. 죽음이 오면 오는구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를 단련하고 싶다. 내가 접한 세상과 삶이 좁을 수도 있지만 내 몫만큼 살아왔다고 믿는다. 더 바랄 것도 없다. 내 죽은 뒤를 걱정할 것도 없다. 산 사람은 살게 되어 있다. 가끔 죽은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을 뿐이지.


 꿈에 고향 집 이웃 아주머니와 조금 모자랐던 그 집 아들을 봤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내 꿈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평소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자는 내게 닭 두 마리를 선물했다. 닭을 받고 보니 털이 부스스한 것이 병든 암탉이었다. 나는 그 닭이 싫다고 저기 통통하고 살찐 놈으로 달라고 돌려주었다. 꿈에서 나는 욕심을 부렸다. 그들은 다른 닭을 줬는데 받고 보니 살아있는 닭이 아니라 뼈가 드러난 검붉은 고깃덩이였다. 그러다 꿈을 깼다. 꿈 해몽을 해 봐도 답이 안 보인다. 죽은 사람을 보는 것은 예지몽이라는데. 조만간 어머님이 돌아가실 것인지. 조직검사 결과가 나쁠 것인지. 


 언니 생각도 났다. 고향집에 사는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베트남 다녀올 일이 있다더니 나간 것인지. 전화를 해도 문자를 해도 안 받는다. 괜찮겠지. 언니는 나보다 더 활동적이고 열성적인 사람이다. 친구들과 골프 회동을 갔거나 모임이 있어 갔겠지. 조만간 두 번째 시집도 나온다는데. 바쁘게 사는 언니다. 자매로 태어났지만 살아온 과정이 달라서 그럴까. 언니는 활동적이고 나는 정적이다. 나이 들수록 친구를 자주 만나야 한다는데. 나는 밖으로 나가기보다 조용히 집안에 있기를 좋아한다. 


 점심때다. 일도 안 하고 놀아도 배는 밥 달라는 말을 한다. 삼시세끼 한 끼도 건너뛰지 못하는 것도 습관일까. ‘우리 합천댐 물 구경 갈까?’ 그가 슬그머니 손을 잡아끈다. 폭우가 연일 내렸으니 합천댐의 물도 넘실거릴 거다. 올해는 지리산 지역 폭우 피해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지리산 지역에 집중호우가 덜 했겠지만 비는 왔을 것이고 계곡물은 풍부할 것이다. 피서객들도 몰릴 것이다. 


 합천호 옆에 있는 대구 찜 집이나 도토리수제비 집에 가서 점심을 해결하자고 했지만 삼가 쪽으로 접어들자 ‘너무 멀다. 우리 삼가에서 밀면이나 먹고 돌아갈까? 기운이 자꾸 달리네.’ 솔직히 나도 먼 곳 나들이를 귀찮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럽시다. 더울 땐 집이 편해.’ 그렇게 우리는 밀면 집으로 갔다. 부부가 하는 밀면 집은 문전성시다. 겨울에는 감자탕과 해장국을 하고 여름에는 밀면만 전문으로 한다. 자리가 없어 줄을 서고 손님으로 북새통이 일어나면 짜증도 날 법 한데. 부부는 항상 친절하다. 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했다. 


 그 집 밀면은 맛있다. 정성이 들어서 그럴까. 삼복더위에도 뒤꼍 창고에 커다란 솥을 걸어놓고 육수를 우리는 것을 봤다.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손님 치는 일보다 그날 써야 할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복잡하다. 밀면 한 그릇에 요리사의 손길에 몇 번을 가는지 헤아릴 수 없다. 음식은 좋은 재료와 정성이 들어야 제 맛을 낸다. 그 집은 손맛도 있고 정성도 들어서 그럴까. 골목 안 집 후미진 집이지만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줄을 선다. 그는 비빔 밀면을 나는 물 밀면을 시켰다. 혼자 온 손님과 합석을 했다. 


 그 손님은 대구가 집이고 삼가가 고향이란다. 고향집에 혼자 와 있다는 손님은 칠십 중반쯤 보인다. 노부부가 함께 와서 권커니 잣거니 하며 점심 먹는 것은 보기 좋은데 늙수그레한 손님이 혼자 점심 먹는 것을 보면 괜히 짠하다. 노인대열에 들어서면 부부 사이가 더 돈독해야 하는데 버석거리는 부부가 많다. 서로 고단한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터부시 하는 환경에서 자란 경상도 남편은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앉아 받기 일쑤다.


 늙어가는 아내를 돕는 것은 별 것도 아니다. 때가 되면 식탁에 수저라도 놓고, 아내가 밥을 퍼면 남편은 국을 뜬다거나, 아내가 설거지를 하면 남편은 커피나 차를 우려낸다거나, 아내가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내면 세탁물이 담긴 바구니를 들어준다거나, 가끔 라면이라도 손수 끓여준다거나 하는 소소한 몇 가지를 가끔 해 줘도 아내의 마음을 살 수 있다. 함께 늙어가는 부부사이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늙어가는 부부는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을 분리하기보다 의식주를 함께 해결해 갈 일만 남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늙어가길 원한다. 따로국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핵가족 사회, 자식과 함께 살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부부 중심으로 사는 일은 부부가 평등해지는 관계다. 시집온 이래 평생 삼시 세 끼를 챙겨 온 여자는 내 나이가 되면 밥 하기 싫어진다. 남이 차려주는 밥이 맛있다는 시기가 온다. 그렇다고 삼시 세 끼를 음식점에서 해결할 수도 없다. 집 밥을 편하게 해결할 방법은 부부 합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농부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솔선수범하기에 나도 따라서 잘하게 된다.    

                      202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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