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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Sep 16. 2023

  내 친구 애순이

내 친구 애순이  


   

 친구들이 온단다.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하던가. 그래도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간다. 나도 나잇살 늘면서 손님 대접이 힘에 부쳤다. 우리 집에 오고 싶어 하고 궁금해하는 지인들도 청하기가 어려웠다. 잠깐 쉬었다 차 한 잔 하고 떠나는 것은 괜찮지만 하루나 이틀을 유하고 가는 손님은 여러 가지로 번거롭다. 아무리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해도 아침까지 음식점에서 해결하게 할 수도 없고 음식점에 나가는 일 자체가 번거로운 환경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 친구는 여고시절 단짝이다. 진이는 혼자 왔지만 애순이는 남편 섭이 씨랑 같이 왔다. 섭이 씨 역시 총각 때부터 알던 사이다. 처녀총각시절 몰려다니며 청춘을 논하고 사랑을 논하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십 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친구들이라 거치적거릴 것도 없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추억을 소환하면 여고 시절로 돌아가 깔깔대기 일쑤다. 시집갈 때도 따라갔고 아들딸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서로 살아오고 살아가는 길을 너무도 잘 아는 친구들이다. 홍옥 같은 내 친구 진이와 애순이다.


 그들이 왔다. 애순이는 팔십 대 노파 같은 모습이다. ‘야, 우리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전화목소리는 밝아서 몰랐네.’ 나는 애순이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래도 네가 보고 싶어 왔다.’는 친구다. 그녀는 오래전 뇌종양으로 실명을 했다. 어스름하게 보이던 눈도 이젠 거의 안 보인단다. 얼마 전 맹장염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었단다. 병실에서 넘어져 침상에 머리를 다친 적이 있단다. 그때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녀는 섭이 씨가 부축하지 않으면 걷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나보다 더 환자가 된 그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사십 대 시절, 애순이는 뇌에 종양이 자라는 줄 모르고 안과 쪽으로만 진료를 했고 시신경이 마모되어 시력을 잃게 되었다. 눈 때문에 일 년이 넘게 안과 잘 본다는 온갖 종합병원을 돌아다니고 서울 대학병원까지 갔던 친구다. 뒤늦게 뇌에 든 종양을 발견했다. 혹 두 개가 시신경을 눌렀던 것이다. 뇌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마모된 시신경은 살리지 못했다. 언젠가는 한 치 앞도 못 보게 될 것이라 했다. 실명을 하고도 친구는 장애인 운동선수로 뛰기도 하고, 안마사로 열심히 사회생활을 했다. 삶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친구다. 


 그 친구가 진이와 섭이 씨의 도움을 받으며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얘.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네가 이렇게 됐냐?’ 내 말이 더 허망하게 들렸다. 한 삼 개월 됐단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넘어졌는데 그때 다친 뇌가 문젠 것 같단다. MRI를 찍어보려고 병원에 예약을 했단다. ‘너 보고 가서 입원할지 모르겠다.’면서도 애순이는 환하게 웃었다. 


 섭이 씨는 애순이를 어린애 돌보듯 했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소설 감이다. 중학교 때 만나 오랜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한 사이다. 오월의 신부가 된 그녀 옆에 서서 ‘행복해야 해. 애순아, 다른 사람보다 두 배, 세 배로 행복해야 해.’ 진이와 나는 그들을 축복해 주었었다. 진이와 나도 결혼을 했고, 나는 부부 싸움을 하고도 갈 곳이 있어 좋았다. 애순이의 집이었다. 독서취향도 비슷했던 친구는 음식 솜씨도 좋았다. 특히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잘 끓였다. 간을 안 봐도 어쩜 그리 맛난 음식 솜씨를 뽐내는지. 그녀는 자타가 인정하는 현모양처였다. 

 

 섭이 씨는 직장도 좋고, 성격도 좋고, 매너도 좋아서 어딜 가나 인기 남이었다. 애순이는 집에 들어오면 내 남편이고 밖에 나가면 남의 남편이라 생각하고 산다고 했다. 이제 남매도 잘 키워 결혼도 시켰고 손자도 봤다. 섭이 씨도 퇴직했다. 퇴직해도 무슨 감정사로 돈도 잘 번다. 그들은 시골 농장을 꾸리며 걱정 없이 산다. 문제는 애순이다. 남편과 아이들의 사랑을 넘치게 받지만 친구는 실명의 위기에 놓였고 독서가 취미였던 친구는 점자 책 외에 읽을 수가 없다. ‘너의 소설책을 못 읽어 속상하다.’는 친구에게 ‘내가 읽어줄게 걱정 마소.’하는 섭이 씨였다. 

      

 우리 집에 온 애순이는 잃었던 밥맛을 되찾았다며 밥공기를 비웠고, 섭이 씨는 밥 잘 먹는 애순이가 신기하단다. 기운 없다며 눌 자리만 보던 친구가 다시 힘을 찾았고 톡톡 튀는 말재간으로 우리를 웃겼다. 우리는 지리산 골짝을 돌아보며 추억을 주웠다. 우리 친정 집 외에도 내가 발령받아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던 친구들, 시집살이할 때도 분가해서도 보고 싶다며 다녀가는 친구들, 변함없이 서로를 챙겨주는 친구들이다. ‘네가 해 주는 밥 먹으니 힘이 난다야. 신기하게 잠도 잘 오더라.’ 그렇게 알찬 이틀을 보내고 애순이와 진이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애순이는 돌아가자마자 병원에 입원을 했다. 검사결과가 좋게 나왔으면 좋겠다. 아파도 좋으니 서로 소식 주고받으며 몇 년 만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간병인이 된 섭이 씨도 안쓰럽다. ‘한 사십 년은 더 살아야지요.’ 아내를 무척이나 아끼는 섭이 씨가 고맙기만 하다. 아내의 친구 집에서 잠자리도 불편했을 텐데. ‘여기 살면 안 늙겠다. 골짝 물이 엄청 시원하네. 애순아, 너 건강해지면 이 집에 방 하나 달라고 하자.’ 너스레를 푸는 섭이 씨, 둘이 연애할 때 중간에 끼어 희희낙락했던 처녀시절이 저물어버렸다. 우리에게도 그런 풋풋한 시절이 있었던가. 늙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덜 아프고 편안하게 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날 수 있기를 빈다. 애순아, 사랑해.


 그러나 내 친구의 검사결과는 나빴다. 뇌수막염에 걸려 수술을 해야 할 지경이고 뇌동맥 곁에 새로운 혹이 발견되었단다. 뇌수술이 예정되었다. ‘내가 너의 집에 또 올 수 있을까.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르겠다야.’ 농담처럼 던지고 간 말이 머릿속을 하얗게 칠한다. 안 돼. 애순아, 안 돼.


 ‘애순아, 우짜모 좋노. 아직 십 년은 더 살아야지. 두 애 생각해서라도 의지 잃지 마. 섭이씨 혼자 두고 가면 안 된다. 너 퇴원하면 또 우리 집에서 만나자. 죽으면 다 헛 거다. 알제? 삶을 꽉 붙들어라. 살아야 또 보제. 애순아, 힘내라. 너를 위해 기도하마.’


 그리고 애순이는 뇌수술을 했다. 혹도 제거했다. 수술은 잘 됐지만 한 달째 애순이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섭이 씨는 병원을 오가고 있다. 그들 부부에게 부처님의 가피와 하나님의 자비를 빈다. 면회는 할 수 없지만 전화로 내 목소리도 알아들었다. ‘회복이 느려서 그래.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야. 우리 건강해져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202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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