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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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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Sep 18. 2023

 녹두미음과 시어머님

녹두미음과 시어머님


 전날 밤 녹두를 씻어 삶아 불리고 찹쌀을 씻어 불린다. 다음 날 아침 녹두를 믹스기에 갈아 체에 거른다. 찹쌀도 믹스기로 곱게 간다. 체에 곱게 내린 녹두 물에 찹쌀 간 것을 부어 녹두 미음을 끓인다. 녹두죽을 끓이거나 녹두 미음을 끓일 때면 자연스럽게 시어머님이 다가온다. 죽 끓이는 것에 이골이 난 것도 시어머님께 배운 솜씨다. 어쩌면 식성이 까다로웠던 시아버님 덕인지 모르겠다.  


 시어머님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밭가에 녹두 한 줄을 심으셨다. 녹두가 익어 터질 때쯤이면 어머님은 이른 아침 이슬이 깨기 전 소쿠리를 들고 밭가에 가 앉으셨다. 익은 녹두 꼬투리를 조심스럽게 땄다. 내가 아침상을 차려 낼 즈음이면 어머님은 잘 익은 녹두 꼬투리를 한 소쿠리 따 오셨다. 마당가에 커다란 베 보자기를 펴고 녹두 꼬투리를 널었다. 


 시어머님은 ‘너거 시아베가 또 속이 안 좋단다. 죽 좀 끼리라.’ 녹두 한 사발과 찹쌀 한 사발을 챙겨 주셨다. 그 녹두는 일 년 내내 시아버님을 위한 녹두죽 거리가 되고 어느 명절 에는 녹두로 손 두부를 만들었었다. 약간 적갈색을 띠는 죽이나 연한 옥빛이 비치는 두부나 거기 녹아든 녹두의 녹색은 입보다 눈을 먼저 호강시켰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색깔이 예뻤다. 


 미음이 눋지 않도록 불 조절을 해 가며 주걱으로 고루 젓는다. 사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혼 때였다. 겁도 없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시댁으로 들어왔었다. 두 달이 넘도록 온갖 죽을 끓였다. 녹두죽, 전복죽, 팥죽, 조개죽, 깨죽, 들깨죽, 잣죽, 흰 죽, 콩죽, 해물 죽 등, 그중에 녹두죽을 가장 많이 끓였다. 그때 환갑도 못 넘길 것이라던 시아버님은 아흔여섯까지 장수하셨고, 아버님보다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던 시어머님은 아직 살아계신다.


 요즘 나는 저승길 닦고 계신 시어머님을 위해 미음을 끓인다. 삼계탕 국물에 찹쌀을 갈아 넣어 미음을 끓여드려도 봤지만 녹두 미음만큼 잘 드시지 않아 이번에도 녹두 미음을 쑨다.  


 시어머님은 녹두죽에 포원이 지셨던 것일까. 치매와 우울증으로 수시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자리보전하면서 툭하면 녹두죽을 끓이라 하셨다. 아흔에 뇌경색 수술을 하시고 온 이후 한 동안 녹두죽을 안 드시려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요양원에 들어가시면서 면회를 갈 때마다 영양 죽을 끓이거나 영양밥을 해다 드리면 잘 드셨다. 삼계탕이나 백숙, 녹두죽이나 팥죽을 쑤어다 드려도 맛있다고 하셨다. 지난 6월부터 밥알이 목에 걸려 끼니를 죽으로 바꾸었다. 매주 갈 때마다 내가 쑤어가는 죽을 어찌나 잘 드시는지 고마웠었다. 죽을 드시면서 어머님은 서서히 약해지셨다. 당신 손으로 숟가락질을 하던 것도 멈춰 버렸다. 직접 떠먹여 드리면 어린애처럼 받아 드셨다. 처음엔 어리광인 줄 알았다. 


 우리가 면회 다녀온 지 일주일 만에 어머님은 완전히 자리보전을 한 모습으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죽을 안 드시려 했다는 것이다. 간병인이 죽을 먹여드렸는데 사례가 들어 혼쭐이 나고는 음식을 거부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입원하셨다. 코로나 검사도 하고 폐렴 검사도 했다. 폐렴증상과 폐에 물이 조금 찼고 피검사 결과 백혈구가 정상치 보다 8배나 높게 나왔다. 백혈구 과다증에 요로 염증 수치도 높다고 했다. 3주째다. 처음에는 빨대를 빨 힘도 없었지만 지금은 빨대로 물도 먹고 미음도 한 그릇 다 드신다. 


 폭우가 쏟아졌다. 빗길을 뚫고 병원에 갔다. 코로나 항원 검사를 하고 어머님을 뵈었다. 정신이 맑아 보였다. 말도 하려고 애를 쓰고 고개 짓으로 의사표현도 확실하다. 미음을 받아 드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코도 훌쩍거려 닦아 드렸다. 미음 한 통을 다 드셨다. 간병인도 놀란다. 할머니가 엄청 많이 드셨다고.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단다. 배변도 잘하신단다. 


 어머님께 보고 싶은 사람 있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오메, 나만 자주 오면 좋지?’ 묻자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다. 어머님 이마에 입을 맞춰드렸다. ‘오메, 편안하게 계셔요. 한숨 푹 주무시고 나면 개운할 겁니다.’ 어머님을 편안하게 뉘어드리고 병실을 나섰다. 


 남은 죽 한 통을 간병인에게 부탁하고 의사와 면담을 했다. 어제 폐 사진도 찍고 검사를 했단다. 백혈구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안정되지 않았고 폐렴기도 남아 있단다. 욕창이 생겼다. 욕창방지용 패드를 사용해야 한단다. 그러라고 했다. 어쨌든 우리 어머님 편안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폐렴이 완치되려면 3주 정도 걸린다고 했던 의사도 당분간 퇴원은 요원하다고 보는 것 같다. 


 병원을 나섰다. 저승길 닦아 가시는 어머님을 남겨놓고 돌아오는 발길이 무겁다. 나보다 농부가 더 힘들다. ‘어쩌겠어요.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인데. 자주 찾아뵙기나 합시다. 아직 미음을 저리 잘 드시고 정신도 맑아지시니 좋잖아요.’ 내가 나를 달래는 말이기도 하다. 저녁에 냄비에 남아있던 미음을 먹으며 엄니 덕에 나도 녹두미음 먹어본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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