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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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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Sep 25. 2023

진정한 부를 생각하며

진정한 부를 생각하며    


 

 읽고 있던 장 지오노의 『진정한 부』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본다. 해가 설핏 기운다. 표범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창에 붙어 날갯짓을 한다. 푸른 마당이다. 1936년의 프로방스의 너른 들판을 떠올린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난한 농민이나 서민은 살기가 어려웠다. 농장 지주는 돈을 위해 소작인이나 가난한 촌민을 착취했다. 포도 생산이 풍성하면 폐기처분하고, 목화나 커피, 아마도 불태운다. 가축수도 늘어나면 죽여서 조절을 한다. 


 장지오노 작가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오래전 『나무를 심는 사람들』을 읽고 또 읽으며 감동했었기 때문이다. 프로방스의 사막지대에 나무를 심어 푸른 옥토를 만들던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작가는 프랑스의 소설가다. 자연찬미가였던 그는 고향인 프로방스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아주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진정한 부』도 일기 같고 수필 같고 소설 같은 작품으로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배어 있다.


 책을 읽으며 사람살이는 역사가 거듭되어도 별 변화가 없구나. 오십 보 백 보구나. 각자도생은 인간의 본능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내 눈에 소나기를 몸으로 맞고 후줄근하게 젖은 남자가 걸어온다. 단감 과수원에 일을 갔던 농부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날씨는 푹푹 찐다. 책을 덮어놓고 일어났다. ‘우리 감들 잘 커디요?’ ‘내가 아나. 감한테 물어봐라.’ 감산에 멧돼지가 들어와 한통을 쳤단다. ‘전기철책도 소용없는 가베.’ 어느 구멍으로 들어오는지 모르겠단다. 약은 놈이다. 낼은 말뚝을 갖다가 허술한 곳에 박아야겠다. 농부는 한숨을 쉬며 목욕탕으로 향한다.

 

 나는 서둘러 반찬거리를 다듬는다. 갑자기 목욕탕에서 농부의 목소리가 날아온다. ‘밥 하지 마라. 나가서 먹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돼지국밥이나 묵고 오자.’ 나는 신바람이 난다. 도마에 올렸던 감자와 버섯, 파와 고추도 다시 냉장고로 들어간다. 반찬 만들기는 귀찮고 똑같은 반찬을 식탁에 내놓기는 미안한 그런 날이 이어진다. 도시 부잣집이라면 식모나 파출부를 부릴 수도 있겠지만 시골 촌부는 삼시세끼 내 손 아니면 안 된다. 


 농부랑 집을 나서면서도 은근히 걱정된다. 요즘 일요일이면 읍내 음식점이 거의 문을 닫던데. 코로나로 인해 의식주에도 변화가 왔다. 돈에 악착스럽지도 않다. 소문난 음식점 중에 점심 장사만 하는 집이 많다. 돈 보다 건강이 우선이라서 그럴까. 먹고 살 정도 돈을 벌어놔서 배부른 장사여서 그럴까.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어려워서 그럴까. 주인부부가 늙어서 그럴까. 이유야 많겠지만 악착스럽게 돈 벌 궁리하기보다 놀고 즐기자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그래도 악착스럽게 돈돈 하지만 젊은 세대는 돈 보다 맛이 우선이고 유행이 우선인 것 같다. 


 읍내가 한산하다. 상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주 오일 근무가 일상화되었다. 단골 돼지국밥집도 캄캄하다. 서너 군데 국밥집을 돌아봤지만 모두 <금일 휴업>이다. ‘일요일은 밥을 굶어야겠네.’ 농부가 어이없어한다. ‘아무리 사는 게 어렵고, 물가가 치솟는다지만 다들 쓸 돈은 있나 봐요. 악착스럽게 장사하려는 사람들이 귀해지는 것 같아요. 우리 그냥 옛날 통닭이나 한 마리 튀겨 집에 가서 밥 먹읍시다.’ 몇 군데 문을 연 음식점이 있긴 하나 댕기는 집이 없다. 외식은 포기했다. 


 옛날 통닭집에서 통닭 한 마리를 튀기고 그 옆에 있는 핫도그 가게에서 쌀 핫도그 하나를 주문했다. 이삼 년 사이 6천 원 하던 옛날 통닭이 만 천 원이 되었고, 천오백 원 하던 핫도그가 이천 구백 원이 되었다. 핫도그 집 젊은 여사장과 안면이 있다. 배달 준비를 하는 여주인에게 물었다. 불경기라는데 장사가 잘 되냐고.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하단다. 노인들은 핫도그가 비싸다며 안 사 먹지만 젊은이들은 맛만 있으면 따지지 않고 사 먹는단다. 주문 배달 덕에 산단다. 육칠십 대에게는 만 원이 큰돈이지만 청소년이나 젊은이에게 만 원은 옛날 천 원의 가치에 불과하다. 돈은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는 쉽다는 말은 진리다. 


 우선 주린 배를 핫도그 한 개를 나누어 먹어 달랬다. 그래도 재밌다. ‘온종일 집 지고 있다가 콧바람 쐬니 좋네. 핫도그 한 개 먹어도 포만감이 드니 우리가 늙긴 늙었나 보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집에 도착했다. 따끈따끈한 통닭을 펼쳐놓고 밥 한 그릇 뜨고 김치와 국물김치만 차렸다. 손을 씻고 손으로 먹었다. 밥 한 덩이에 통닭 살점 하나 올리고 김치 척 걸쳐 먹으니 꿀맛이다. 손으로 먹는 음식이 한 맛 더 나는 것 같다. 왤까. 거기에 맥주도 한 잔 곁들인다.  


 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농부는 붓글을 쓰고 나는 『진정한 부』책을 펼친다. 진정한 부를 누리는 자는 어떤 사람일까.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장지오노 작가처럼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 덕에 역사는 반복되고 지구는 유지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돈의 노예가 되어 자연을 파괴해도 누군가는 그 자연을 복구하며 살아간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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