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Sep 06. 2023

운수 나쁜 날의 반전

운수 나쁜 날의 반전     


  병원에 전화를 했다. 미음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다. 오늘 드리면 없을 것 같단다. 이삼일 드실 분량이었다. 만약 그 미음을 거의 다 드셨다면 어머님은 매끼 잘 드셨다는 이야기다. 미음 사식 넣은 지 사흘만이다. 다시 불 앞에서 영양미음을 끓였다. 어머님 덕에 나도 아침을 미음으로 해결했다. 속도 편하고 맛도 있다. 내가 끓인 죽을 내가 맛있단다. 미음 간도 내 입에 맞으면 어머님 입에도 맞다. 아침부터 땀을 흘려 그런지 마음이 돼 그런지 힘들었다.


  미음을 끓여 이삼일 분량이 되도록 통에 담아 놓고 농부를 기다렸다. 새벽에 감산에 풀치러 갔던 농부가 돌아왔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 항원 검사를 했다. 사흘에 한 번 꼴로 코를 쑤신다. 검사 비는 일인당 15천 원, 벌써 3주 째다. 그렇다고 어머님을 뵈러 가지 않을 수도 없다. 코로나향원 검사 결과를 받아 병동에 올라가면 점심때다. 우리가 먹여드리는 미음 한 그릇은 간병인이 먹여 드리는 하루 치 양식 아닐까. 병원에 조금 남아있던 미음은 챙겨오고 새로 끓인 미음으로 어머님께 점심을 드렸다. 어머님은 미음 한 그릇을 싹 비우셨다. 약도 잘 받아 드셨다.

 

 옆 침대 할머니는 묶여 있다. 간병인이 진상(허름하고 나쁜 물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불친절하다. 병원에서 나오는 미음은 보기만 해도 역겹다. 환자용인데 왜 저렇게 끓여내는 걸까. 그 하얀 미음에 병원에서 나오는 환자용 두유를 섞어 떠먹인다. 어머님이 그 미음을 토한 이유를 알겠다. 오늘 본 간병인은 갈아치워야 하지 않을까. 노인에게 너무 불친절하다. 먹이는 것도 대충이다. 아예 미음은 한 숟가락도 안 먹이고 두유만 빨대를 꽂아 몇 모금 먹게 하고는 약 먹이고 나간다. 약을 안 먹으려니까 ‘먹기 싫으면 말고’ 하는 식으로 구시렁거린다. 우리 어머니께도 저리 하지 않을까. 노여움이 일어나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 병실의 환자는 임종 받아놓은 노인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의사선생께 면담을 신청해서 만났다.

 “사흘 전에 면담 했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피검사랑 폐렴균에 대한 검사 해 보고 퇴원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어머님 같은 경우 요양원으로 모시면 견딜 수 있을까요? 지금도 제가 끓여다 드리는 미음밖에 안 드시는데.”

 “요양원에서 중환자도 알아서 잘 모십니다. 보호자님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병원을 나섰다. 농부랑 인근 장례식장을 알아보러 갔다. 머잖아 닥칠 일이다. 어머님의 마지막 길은 잡음 없이 조용히 모시고 싶어서 장례비용 일절 우리가 대겠다고 했다. 집으로 오는 길, 농부가 눈이 잘 안 보인단다. 한쪽 눈의 반이 흰 창이다. 신경을 쓰면 농부의 한쪽 눈이 완전 사시가 된다. 사물을 제대로 못 본다. 고칠 방법도 없다.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란다. 약도 없단다. 사시는 성형수술은 할 수 있지만 시력은 안 돌아온단다. 시력을 잃게 될 것 같아 불안하다. 이래저래 심란한 날이다.

 

 장례식장을 찾아가 상담을 하고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 집 여자도 진상이다. 병원에서 본 간병인 같은 몰상식에 밥맛을 잃었다. 그래도 돈이 아까워 악착스럽게 먹고 나왔다. 진주서 바로 의령으로 향했다. 농부는 문화원에 붓글씨 연습하러 가고 나는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도 하기 싫어서 대충 걷기 연습만 하고 나왔다. 시간이 많이 남아돌았다. 마침 오일장이다. 냉장고가 텅텅 빈 것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생선이나 살까 하고.

 

 단골 생선장수 아저씨 하는 말이 다른 동네는 고등어가 불티나는데. 이 동네는 고등어가 안 팔린단다. 일본에서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다는 뉴스의 영향이다. 조기는 조기 마감 됐단다. 조기 사러 갔다가 그냥 돌아올 수 없어 갈치와 고등어를 샀다. 마침 이웃에 복숭아 박스를 쟁여놓고 파는 과일 장사를 만났다. 복숭아가 먹음직스러웠다. 한 박스에 열 몇 개가 든 큰 것인데 만원이란다. 쌌다. 싸 달라고 했는데 성한 게 없다. 정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저씨, 복숭아가 성한 게 하나도 없네요. 이건 먹을 게 없겠는데. 바꿔주면 안 돼요?”

  “좋은 게 아니니까 싸지. 이거 만 원 받아 안 남아요. 안 팔아요. 안 팔아.” 

  “팔기 싫으면 말지. 첨부터 비품이라 했으면 그렇게 묻지도 않았을 텐데. 화는 왜 내요.”

  또 진상을 만났다. 아침부터 이유 없이 짜증이 나더니 하루 종일 진상들 만나려고 그랬나.

 

 시장을 나와 단골 과일 전에 갔다. 거기도 복숭아 파지를 팔고 있다. 한 소쿠리 만 원이다. 좀 전에 본 복숭아보다 개수도 적다. 상한 복숭아 살 마음도 없다. 한 개를 먹어도 좋은 걸 먹지. 정품 한 박스를 샀다. 농부를 만나 집에 왔다. 후끈 달아오른 날이다. 냉방기를 빵빵하게 돌렸다. 겨우 짜증난 마음을 내려놓았다.

 

 마침 출판사에서 문자가 왔다. 내 책 『풀등에 걸린 염주』 판매액에서 저자 몫의 인세를  보내준단다. 판매수량을 보니 생각보다 적게 팔렸다. 책이 많이 팔렸으면 출판사도 돕는 일인데. 그래도 기분 좋았다. 하루의 기분을 한방에 시원하게 날려줬다면 뻥이지만 인세 챙겨주는 출판사 사장님이 고마웠다. 현진건의 단편소설『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박래여의『운수 나쁜 날』의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인세 몇 십 만원 받았다니까 농부는 ‘그것으로는 밥 못 먹고 살겠는데.’하며 웃는다. 밥이 문젠가 인세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2023.     7.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님과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