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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02. 2022

14. 첫 뻐꾸기 울음에

 첫 뻐꾸기 울음에  

   

  올봄 첫 뻐꾸기가 운다. 뻐꾹~뻐꾹~~ 뻐~ 뻐꾸욱! 매화가 피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벌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점심 나절, 가까운 산 어딘가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뻐꾸기 우는 소리에 완전한 봄임을 깨닫지만 마음자리 어딘가에 아직도 찬 기운이 남아 있다. 혹시 또 이태 전처럼 가까운 곳에 탁란을 해 둔 것은 아닌가. 창고를 기웃거리다 나와 마당을 걸어본다. 마른 잔디 사이에 새싹이 보인다. 해마다 계절은 오고 가는데 사람만 변화를 타는 것 같다. 


  단감 과수원 농사도 접고, 고사리 농사도 접었다고 소문나면서 ‘뭐 먹고살래? 뭐든지 해야지.’ 이웃들이 더 걱정한다. 읍내 형님은 일자리를 주선한다. ‘운전 잘하잖아. 운전기사 할래? 한 달에 180만 원 정도 된단다.’ 동네 아저씨는 ‘산불조심 감시원이라도 해 보든가.’하면서 당신 일처럼 걱정해준다. 고맙기만 하다. 다다익선이란 말이 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있던가.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해준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어젯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다시 봤다. 1800년대, 그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은 자식들 혼사조차 시키기 어려웠다. 지참금이 문제였다. 특히 가부장적인 세습 문화였기 때문에. 가난한 남자는 부잣집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고, 여자 역시 부유한 남자를 택하고 싶어 했다. 제인 오스틴의 일대기를 그린 <비커밍 제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제인은 가난한 목사의 딸이었다. 부잣집 남자에게 청혼을 받은 제인은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택할 수 없다고 아버지께 말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은 영혼을 파괴한다.’고 하면서도 사랑을 택하겠다는 딸을 자랑스러워한다. 

 

 이 시대에도 결혼은 사랑도 좋지만 돈이 풍족하면 더 좋다는 말을 한다. 사랑보다 돈이 우선순위에 놓인 것은 아닐까. 언제나 그랬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사랑타령, 부자 타령, 권력 타령이 맞물려 돌아간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는 말로 비꼬는 사람도 알고 보면 사랑에 목을 매달 수도 있다. 오만과 편견에서 남자 주인공처럼 사랑이라는 마법에 걸리면 헤어나기 어렵다. 그 시대에도 여류작가는 글을 써서 생활고를 해결할 수 없었다. 아버지나 오빠, 남동생에게 빌붙어 살아야 했다. 제인 오스틴도 죽을 때까지 그랬다.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강한 여자보다 순종적인 여자를 원하는 것 같다. 지배욕을 타고난 남자의 본능일까. 21세기를 사는 지금은 순종적인 것이 여자의 미덕은 될 수 없다. 

 

 나도 강한 성격이다. 순종적인 여자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입을 빌리면 ‘여자가 말이야. 말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하고, 감히 하늘 같은 남편과 맞짱 뜨려고 대들어. 그래서야 되겠어?’ 농담 속에 진담을 담았다. 내 또래 여자들 대부분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출가외인, 삼종지도,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랐다. 항상 남자가 우선이었고,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고 터부시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여자가 많이 배우면 안 된다고 소학교만 졸업시키는 것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어려서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를 흉봤었다. 도시에서는 달랐겠지만 시골은 그랬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딸아이를 고등교육시킨다고. 우리 동네 부자였던 집에서도 아들만 대학교육을 시키고 딸은 초등학교만 졸업시켰었다. 그 친구는 남녀차별에 반기를 들고 가출도 했지만 그녀의 오빠와 아버지께 잡혀왔었다. 머리카락을 싹 밀어버리고 집안에 가두어 두기도 했다. 원치 않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던 그녀는 결국 딴 남자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했고, 도시의 술집을 전전하다 서른도 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문이었다.

 

 첫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잊어버렸던 그녀가 생각났다. 잘 웃고 쾌활했던 그녀, 오빠와 아버지의 전대를 뒤져 훔쳐온 돈으로 과자를 사서 나누어주곤 했던 그녀, 그녀 때문에 도둑으로 몰렸던 기억이 있어 그런가. 나를 잡아다 마당에 꿇어 앉히고 ‘저 도둑년 보소.’하던 그녀의 아버지 ‘도독 년은 당신 딸이야. 당신 딸이 훔쳤다고 하더라.’며 눈 똑바로 뜨고 대들던 내가 보인다. 덕분에 동네 할머니들 입질에 오르내렸었다.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그 강한 성격도 세월에 퇴색되어 물에 술탄 듯, 술에 물 탄 듯 두루뭉술해졌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하던가. ‘어떤 인생을 살던 살아보니 별 거 아니더라. 나를 곧추세우는 것도 낮추는 것도 세월이 가르쳐주더라.’ 말씀하시던 어른들, 고인이 되신 어른들, 그 시절을 살아냈던 사람들, 이웃사촌의 정은 돈독했고, 밥술깨나 먹고 산다는 집에서는 늘 삼이웃 삼시세끼 걱정을 해 주었던 사람들, 한 민족이라면 다 함께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뻐꾸기가 운다. 뻐꾹뻐꾹 뻐뻐어꾹~~~ 걱정 마세요. 다 살게 되어 있어요. 어떤 방법이든 살아갈 방법은 생긴다고 믿는답니다. 걱정해주시는 마음 덕에 잘 살 겁니다. 잘 살고 있어요. 나는 뻐꾸기 울음에 내 마음을 실어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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