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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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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Oct 22. 2023

여보, 짬뽕 어때요?

 

교체 

 박래여 

       

저장고가 멈췄다.

실외기에 낀 이물질은

단단한 올무다.    

 

분해를 했다.

무심했던 것들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털고 닦고 기름칠하고

때에 따라 칼질도 하고

부품도 갈아야 가동한다.  

   

우리네 삶도 

기계와 다를 바 없다

고칠 수 없으면 바꿔야 한다.          


 저장고가 고장 난 줄 모르고 지냈다. 어제저녁에 황금 배를 가지러 갔던 농부가 발견했다. 저장고에서 나온 배는 차가워야 하는데 미지근하다. 아이고, 어떡해, 김치 남은 거 초 됐겠네. 양파는, 버섯은, 대추는, 이런저런 것들이 가득 담긴 저장고다. 할 수 없지 뭐. 내일 그 친구 불러봐야지. 상한 건 버리면 되고. 참 태평스러운 답이다. 저장고를 지어준 동네 친구를 불러봐야 어디가 고장인지 알 수 있다. 어쩐지 저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없더니.


 새벽에 남편 친구가 왔다. 두런두런 들리는 소리에 깼다. 친구랑 같이 먹을 아침밥 준비를 했다. ‘밥 드시고 하세요.’ 고함을 질렀더니 그새 친구는 가고 없다. 밥 먹고 가라 하지 왜 보냈느냐고 하자. 바쁘단다. 간단한 대답이다. 그 나이에도 부르는 곳이 많으니 좋네. 남편도 그 친구도 만능 재주꾼이다. 그 친구는 냉장고, 냉방기, 저장고 설치 등, 기술자로 알려져 있다. 노인 대열에 들어선 기술자라도 부르는 곳이 많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할 일 없어 빈둥거리며 사는 것보다 바쁘게 사는 것이 낫다. 


 그 친구는 혼자 산지 오래되었다. 도시에서 기술자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부인과 이혼하고 아들 둘을 혼자 키웠다고 들었다. 자식들도 가정 일구면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친척의 빈 집을 빌러 들어왔다. 워낙 부지런하고 솜씨꾼이라 일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젠 힘에 부칠 때가 많다는 하소연을 하지만 여전히 바쁘다. 독실한 신자이기도 하다. 믿음이 좋은 것은 의지처가 되어주기 때문은 아닐까. 


 한때 재혼도 꿈꾸었다. 내 주변에 있는 후배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 시골에서 텃밭 농사지으며 우리처럼 살고 싶다는 후배가 있었다. 그때 망설이지 않고 소개를 했더라면 인연이 되었을까. 다리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중매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중매 잘못하면 뺨을 세 대 맞는다고 한다. 두 사람을 잘 알기에 망설이게 되었다. 이제 그는 결혼할 생각을 접었다. 칠십 노인에게 누가 와서 살겠냐고 한다. 재혼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면서 포기했단다.  


 사람의 일생은 혼자든 둘이든 각자 사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본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면 된다. 둘이 살아서 행복하면 바랄 게 없지만 불행하면 혼자 사는 것보다 못하지 않을까. 아침밥이라도 먹여 보냈으면 내 마음도 편하련만 미안해서 그런지 그냥 가셨다. 내가 차려주는 집 밥이 참 맛있다는 친군데. 염치없어 자주 못 오겠다더니 진짜 그런가 보다. 반찬은 없지만 밥이라도 들고 가시지. 스스럼없이 ‘내 물 밥 있소?’하며 밥상 앞에 앉는 모습이 더 좋은데.


 저장고는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실외기에 먼지와 이물질이 쌓여서 통풍이 안 됐던 것이다. 농부는 친구가 가르쳐준 대로 실외기를 분해해서 청소를 했다. 저장고는 다시 찬바람이 쌩쌩 난다. 냉장고가 안 될 때 나도 냉장고 뒤의 펜이 있는 곳을 열어 청소를 한 적이 있다. 먼지를 닦아냈더니 냉장고가 잘 돌아갔다. 지금도 대청소를 할 때면 청소기로 냉장고 뒷면의 먼지를 흡입한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내부 청소를 가끔 해 주는 것이 좋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쌓이면 단단한 덩어리가 된다.


 오전 내내 폭우가 쏟아졌다. 덕분에 시 한 편 썼다. 『교체』는 경남작가 회장에게 보냈다. 어디 시화를 건다기에. 시가 너무 평범한가? 오랫동안 시를 썼지만 나는 아직 시가 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의 반영이면 좋다. 낱말 맞추기 놀이가 아니라 마음에 흐르는 문장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짧은 글, 긴 글 가리지 않고 쓴다.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쓰는 꾸미지 않은 진솔한 글이 좋다.  


 비는 푸지게 오고, 따끈따끈한 국물이 그립다. 

 “여보, 짬뽕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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