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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Oct 29. 2023

내 속에 아직 불꽃이 있을까.

내 속에 아직 불꽃이 있을까.     



 저장고가 다시 섰다. 농부는 기술자 친구를 다시 불렀다. 부품을 새로 사 오고 두 사람은 오전 내내 비지땀을 흘렸다. 비 그친 날은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덥기는 왜 이리 더운지.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땀 냄새 풀풀 풍기는 두 사람을 음식점으로 내 몰수도 없어 점심준비를 했다. 기술자 친구는 집 밥이 그리운 홀아비다. 생선찌개 한 가지만 가지고 밥 한 공기를 먹어치운다. 일하고 돌아와 씻고 밥 차려 먹으려면 귀찮아서 대충 때우기 일쑤란다. 여러 가지 반찬도 필요 없단다. 입에 맞는 반찬 한 가지면 된단다.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불 앞에서 땀 흘린 것이 하나도 안 아깝다.  


 기술자 친구는 점심을 먹자마자 금세 일어선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며 집에 가서 씻고 쉬어야겠단다.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노동이 힘에 부친다는 말도 한다. 남편도 바를 정자로 소문났지만 기술자 친구도 옳고 그름이 확실하다. 성격이 대쪽 같은 사람은 신뢰도 받지만 그만큼 적도 만든다. 본인의 성격이 싫다 좋다가 확실하니 그것에 따르는 반대급부는 감수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저 사람은 성격이 두루뭉수리야. 옳은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어.’ 성격이 원만한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인데 칭찬일까. 비난일까. 


 수영장에 갔다. 빵을 구워 와서 파는 회원이 있다. 한 개 팔아달라는 말에 ‘빵 잘 안 먹어요. 지난번 산 것도 남았는데.’ 돌아서다가 다시 작은 것 한 개 달라고 했다. 5천 원이란다. 통밀 빵이란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 덩이씩 떼어줬다. 5천 원은 금세 사라졌다. ‘기부한 셈 치지 뭐.’ 반에 반쪽 남은 것을 농부에게 줬다. ‘지난번 것보다 맛이 없다.’ 농부는 한 입 먹어보고 손사래 친다. 물가는 비싸고 돈 가치는 떨어졌다. 시골 할머니에게 천 원은 아직 가치가 있다. 5천 원의 가치는 어디로 갔을까.  


 다시 책을 잡았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이다. 책도 읽었고, 영화도 봤고 독후감도 썼지만 또 잡은 것은 늪지에 대한 표현들이 나를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상상 속의 늪지 풍경은 아름답다. 어린 카야가 자기만의 삶의 방식으로 늪지를 사랑하는 모습과 그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이 섬세한 필체로 그려져 있다. 스릴러물이기도 하다. 한 남자의 죽음, 독자는 살인자가 카야라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든다. 어떻게 무죄 선고를 받아내나 관심이 집중된다. 카야의 사랑, 그 위대한 배움의 길이 나를 사로잡는다. 


 책을 읽다가 창밖을 본다. 푸른 하늘과 짙은 녹색의 숲, 이렇게 시간만 때우고 살아서는 안 되는데. 죽어버린 내 심연의 불꽃을 끌어내 피워야 하는데. 왜 나는 시간만 죽이고 있을까.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목숨인데 살아있는 동안은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내 심연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을까? 한숨을 쉰다. 호두를 바닥낸 후투티도 안 보이는 날, 마당에 갈색 잠자리 떼 배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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