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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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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Nov 16. 2023

쯔쯔까무시에 걸렸다.

쯔쯔까무시에 걸렸다.


     

  일주일 동안 너무 아팠다. 왜 이렇게 만신이 아픈지 모르겠다면서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고 일을 했다. 농부와 딸이 단감을 따와 선별하면 함께 포장하고 택배로 부쳤다. 저녁이면 또 끙끙 앓았다. 미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살가죽이 아팠고,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다. 식은땀은 수시로 솟았다. 꿈자리도 사나웠다. 내 몸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는 중이다.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쇠해도 될까. 병원에 가봐야 하나. 밤에는 앓다가 잠을 설쳤다. 날 새면 꼭 병원에 가야지 하다가도 아침이면 또 움직일만 하다. 병원 가기를 포기하기를 거듭했다. 


 수영장 물이 차갑게 느껴질 때부터 조심했어야 하는데. 수영장에 다녀오면 미열에 시달리고 온몸이 아파 쩔쩔맸다. 잠을 잘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어딘가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차라리 일에 파묻혀 있을 때가 낫다. 단감 주문이라도 폭주하면 거기에 매달려 아픔을 잊었다. 주문량도 지난해에 못 미친다. 단감 가격을 올려 그런가. 단감 수량이 적으니 주문도 적어지는 건가. ‘되는대로 살지 뭐. 안 되면 도매상에 올리지 뭐.’ 편하게 생각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단감도 지난해 절반에 못 미치는데 주문도 지난해 절반에 못 미친다. 


 그 와중에 백부님 댁 큰 아주버님이 돌아가셨다. 하필 단감 따는 날이다. 조의금만 보냈다. 농부와 딸은 단감 밭에서 고생을 하는데 싶어 나는 선별 장에서 포장작업을 했다. 택배 주문받은 것을 정리하고 보내야 하기에 쉴 틈이 없었다. 작업하다 일어나면 어지럽고 휘청거렸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땀이 줄줄 흘렀다. 관절마다 비명을 질렀다. 분명 정상은 아니다. 감기몸살도 아닌 것 같다. 하룻밤 자고 나니 얼굴과 목에 붉은 반점이 돋았다. 나도 딸처럼 진드기에 물려서 그런가. 날씨가 변죽을 울리니 벌레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인가. 작업장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가 서식하는 것 같다. 


 결국 나는 많이 아팠고 아들이 가정실습을 하고 온 다음 날 병원에 갔다. 피검사를 했다. 피검사 결과 혈소판 수치가 정상치의 한참을 못 미친다며 의사는 단번에 쯔쯔까무시 같단다. 진드기에 물려서 생기는 가을 철 병이다. 고열에 시달리고 힘들면 입원해야 하는 병이다. 몸 여기저기 물린 자국에 까만 딱지가 없는지 살펴보란다. 피검사 결과가 완전히 나와야 확진을 할 수 있다며 우선 극 처방을 해 준다. 약 한 첩 먹고 뻗었다. 하필이면 언니 시집 출판기념회 날이다. 갈 수가 없다. 언니에게 미안하다며 축의금만 보냈다. 


 농부랑 애들이 식사를 챙겨도 나는 일어날 기운조차 없었다. 억지로 일어나 한 숟가락 뜨면 다시 눕기 바빴다. 누워 있어도 아프고 걸어 다녀도 아프다. 내 몸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뼈마디는 쑤시고 살갗은 옷이 스쳐도 아팠다. 얼굴에 붉은 반점이 돋고 퉁퉁 부었다. 그 와중에 생일 케이크도 잘랐다. 두 애가 챙겨주는 생일날 미역국에 밥 말아먹었다. 미리 하는 생일이다. 아들도 힘들었는지 감기몸살을 앓는다. 푹 쉬어야 하는데 단감 작업을 돕는다. ‘엄마, 우리는 젊잖아. 엄마가 문제지. 의사 선생님도 우리는 괜찮지만 엄마가 걱정이라고 하잖아. 의사 말 들어야 착한 엄마지.’하면서 놀린다. 


 병원에 연달아 두 번을 갔다. 의사는 며칠 더 있다가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면 확실하지만 쯔쯔까무시가 맞는 것 같다며 주말 이틀간 치료약을 처방했다. 저녁에 그 약 한 첩 먹고 나니 열도 가라앉고 아픔도 덜했다. 잠을 잘 수 있어 다행이었다. 며칠간 못 잔 잠을 뜨거운 방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잤다. 지난번 독감치료를 제대로 못해 후유증이 남았는데 진드기에 물렸으니 면역성 제로였던 모양이다. 환자는 한 명인데 간병인은 셋이다. 잔소리꾼들 덕에 나는 여왕처럼 앓아누웠다. 복이라 생각하자. 


 내가 앓은 지 일주일째다. 그 사이 이틀은 꼼짝도 못 했고, 나머지는 겨우 움직이긴 해도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허공 위를 걸어 다녔다고나 할까. 정신은 흐리멍덩하고 사물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머리는 지끈지끈 천근 같고 땀은 삐죽삐죽 솟고, 숨은 찼다. 속도 매슥매슥했다. 일주일 내내 꿈자리가 뒤숭숭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살만 해지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쉽게 안 죽는구나. 사람은.  

                  202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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