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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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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Nov 24. 2023

겨울 채비는 식수부터

겨울채비는 식수부터  


   

 딸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부부만 남았다. 된서리가 왔다. 사방에 무성하던 칡넝쿨이 하루아침에 마른 줄기만 남겼다. 단감 수확 빨리 끝내기 잘했다고 안도했다. 농부는 겨울 채비를 한다. 골짝 물을 끌어들여 식수로 사용하는 우리는 겨울만 되면 긴장한다. 골짜기 물 흐름도 살피고 우리 집으로 이어 놓은 물 호스를 점검하고, 물통 청소도 해야 한다. 산비탈 오르내리는 것도, 물통 청소하는 것도 노인에겐 힘에 부친다. 농부는 집 앞을 지나 등을 넘어가는 상수도를 끌어들일 방법을 강구한다. 개인이 신청하면 시설비만 몇 백만 원이 든단다. 띄엄띄엄 사는 대여섯 집이 모여 군청에 민원제기를 해 보기로 했다.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군청 담당자는 수도공사를 하려면 공사비가 많이 든다며 이번 예산은 끝났고 내년에 추경 예산을 잡아야 한다면서 이장을 통해 신청하란다. 신청한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단다. 개인 집에 끌어들이는 상수도 공사를 개인이 하려면 불가능하단다. 다섯 집 이상이 단합을 하면 공사비가 적게 들 수도 있단다. 군청 담당자는 회의적이다. 주민의 불편을 해소 해주려하기 보다 원리원칙을 따지며 발뺌만 하는 것 같다.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골짝 물을 식수로 사용하거나 지하수를 판다. 우리도 지하수를 팠다. 문제는 내가 사는 지역의 암반 밑에 흐르는 지하수는 유황과 불소의 농도가 높아서 식수로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가뭄이 심해 골짝의 물이 말랐을 때는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달걀 삶은 구린 냄새가 나는 유황천은 허드레용으로는 괜찮다. 


 문제는 우리가 노인대열에 들어서면서 식수용 호스를 깐 산비탈 골짝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상수도를 끌어 들여야 골짝에 살 수 있다. 수 년 전 집 앞으로 관광순환도로가 뚫리고 아랫마을 곁에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식수 문제가 불거졌다. 골프장을 유치하면서 군청에서는 간이 상수도를 이용하던 동네에 상수도 시설을 해 준 것이다. 동네에서 뚝 떨어진 외딴 집에 사는 우리는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상수도 공사에서 빠졌다. 억울했다. 같은 마을인데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부하다니.


  그 상수도가 집 앞을 통과해 등을 넘어간다. 처음에는 상수도 공사를 하면서 산기슭에 뚝 뚝 떨어져 사는 몇 집에 상수도 시설을 해 주겠다고 했었다. 등을 넘어가는 수도관을 묻으면서 개인 집으로 들어오는 상수도 선을 빼 놨다고 했다. 당연히 그런 줄만 알았다. 동네는 일괄적으로 상수도 개설을 했지만 동네서 뚝뚝 떨어진 몇 집은 빠졌다. 차후 해 준다고 했었다. 개인 할당 금 몇 십만 원만 내면 언제든 우리 집에도 상수도가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동네는 상수도가 들어왔고, 골프장은 개장했다. 


 그러나 막상 상수도가 필요하다고 하니 공사업체는 상수도관을 하나만 묻어서 개인 집으로 들어오는 상수도 공사는 해 줄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등을 넘어가는 직수 곁에 개인 집으로 가는 상수도관을 따로 묻어야 하는데 안 묻었다는 것이다. 새로 공사를 하려면 공사비가 어마어마하게 든단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 30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 붙박이로 살아온 촌부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노인의 편리를 위한 정책은 없는가. 젊었을 때는 문제가 되지도 않았던 식수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 서글프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농부는 거실 난로에 불을 피운다. 지난해 거금 들여 샀던 난로는 한 해 잘 썼다. 길만 내서 당근 마켓 중고나라에 올렸더니 금세 팔렸다. 가까운 곳에서 사 갔다. 나는 겨우 길 낸 새 난로를 팔고 농부가 짜깁기해서 만든 난로를 거실에 들이는 것에 반대했었다. 모양새도 로봇 같아서 웃겼다. 농부는 내가 싫다 해도 자기 고집대로 일처리를 했다. 농부가 만든 난로는 나무도 덜 먹고 완전연소를 한단다. 따뜻하기도 하다. 불을 피워보고 내 불만은 해소됐다. 농부는 자신이 만든 난로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눈이 나빠서 용접 부분이 깔끔하지 못하지만 그 정도는 봐줄만 하다. 거실에 연기만 안 차면 난로 잘 만든 거다. ‘맥가이버 아저씨, 솜씨 쓸 만하네.’ 슬쩍 추켜 세워줬다.


 단감수확도 끝났겠다. 상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부는 발로 뛴다. 우리 집까지 올라오는 길섶에 자리 잡은 이웃과 소통하고 동네 이장님과 군청 담당자도 만나보고 군수도 만나볼 결심을 한다. ‘ 길이 있겠지. 공무원은 주민들 잘 살 방법을 도모 하고 봉사해야 하는 직업이잖아. 추경예산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상수도를 집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말 좀 잘 해 보소. 노인이 되니 골짝에 호스 깔아 식수 해결하기 힘들다고 하소연도 하시고.’ 그래봤자 나는 곁다리다. 농부의 눈총만 받는다. ‘잘 될 거야. 사람을 위하는 일인데 잘 되겠지.’ 나는 또 믿는다. 


 상수도를 집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가난한 촌로들이 거금을 들여 개인적으로 공사를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상수도 공사는 국가에서 해결해 줘야 할 일이다. 이래저래 산골 살이 힘에 부친다. 그렇다고 30년이 넘도록 지켜온 자리를 박차고 나갈 자신도 없다. 우리가 죽고 나면 자식들이 들어와 살지도 모르고 남의 집이 될지도 모르나 식수 해결은 해 놓아야 할 것 같다. 우리 떠난 자리에 들어와 살 사람을 위해서라도. 

                      202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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