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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08. 2022

16.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며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며    


 

  저녁 답이다. 아궁이에 장작 대여섯 개 가새지르기 해 놓고 바짝 마른 솔가리를 불쏘시개로 넣어 라이트를 켠다. 마른 솔잎은 금세 파르르 불꽃을 일으키며 타 들어간다. 장작에 불이 붙으면 불꽃은 참 아름답다. 주홍빛 불꽃을 바라보며 울진에서 시작되어 강원도까지 번진 산불의 타는 모습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불은 원시시대를 벗어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씨앗이다. 그 불이 번져 산을 태우고 인가를 덮치고 인명 피해에 재산손실까지 가져오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만 본다는 것이 미안하다.  


  산불이 거세게 번진다는 소식을 접한 날은 바람도 어찌나 거친 지. 천지 신령님, 부처님, 하나님, 산불 난 지역만이라도 소나기 한바탕 쏟아주세요. 바람 좀 자게 해 주세요. 빌고 또 빌었다. 산마을에 불이 번졌다면 건질 게 없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인간은 큰 불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지역에 일어난 불은 아니지만 불길이 기적처럼 잡혀주길 소원한다. 내 속에 잠재된 불안심리가 밖으로 나와 집 주변을 서성이게 한다. 강풍은 마른나무와 풀을 마찰시켜 불꽃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숲과 어우러져 살기에 항상 불에 대해 민감하고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자나 깨나 불조심이다. 불 때문에 혼이 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태 전에도 간담이 서늘했다. 우리 집 지붕에 불이 붙어 산불로 이어질 뻔했었다. 그날도 강풍이 불었다. 조상님이 도왔는지, 천지 신령님이 도왔는지. 불꽃이 거세게 피어오를 즈음에 강풍은 잠잠하게 가라앉았고, 소식도 없이 찾아온 시누이 부부에게 발견되어 큰 피해 없이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그날의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때도 삼월 이즈음이었다. 승용차 한 대가 마당까지 쏜살같이 달려와 끼익 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는 책을 읽다 경적 소리에 놀라 창밖을 봤다. 승용차 문이 열리고 어떤 여자가 튀어나왔다. 괴상한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데 시력 나쁜 나는 ‘누구지? 왜 저러나?’ 멍청하게 바라보다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언니, 언니 불불’ 목소리로 시누인 줄 알았다. ‘어서 와 왜 그래?’ 시누이는 말을 못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지붕으로 손짓을 했다. 고모부가 차에서 내리더니 달려와 수도를 털었다. ‘지붕에 불났어요.’ 고모부의 그 말에 반사적으로 부엌으로 뛰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바가지와 양푼을 들고 이층 계단으로 튀어 올랐다.

 

 거실 위 지붕은 불꽃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몸은 이미 행동을 시작했다. 이층 화장실 물을 털어놓고 받아다 퍼붓기 시작했다. 고모부도 가세했고, 고모는 소방서에 전화를 했다. 삼이웃 산불 감시원과 소방차가 마당을 가득 채웠을 때는 이미 큰 불길은 잡혔었다. 연기는 계속 났다. 바람에 잔불이 다시 일어날까 봐 지붕을 꽤 넓게 뜯어내야 했다. 우리 집은 너와지붕이다. 그때는 내가 관절염 환자라는 감각도 상실했다. 분초를 다투는 일이었다. 불꽃을 잡고 소방관들이 들이닥쳐 뒤처리를 하고 나서야 내 다리가 푹 꺾였다. 기적은 달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이 기적을 일으켰다는 말로 회자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만약 그때 강풍이 잠잠해지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불꽃이 튀어 산으로 번졌을 것이고, 마른 잔디에 불티가 내려앉았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집에 돈 들어오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일 년 액땜했다고도 했다. 진짜 그해는 생각지도 못했던 목돈이 들어오긴 했다. 단감 가격도 좋아서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전화위복이란 말을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불은 겁난다. 담배를 피우는 아들이 오면 자나 깨나 불조심을 강요하게 된다. 아궁이에 군불을 때 놓고도 혹여 밖으로 번질까 봐 아궁이 앞을 말끔하게 치우는 버릇도 여전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동해안 산은 불타고 있다는 소식이다. 울진에서 번진 산불은 삼척으로 번져 타고 있고, 강릉과 동해도 여전히 타고 있단다. 강릉은 인화라는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일부러 불을 낸 것인지. 이 어려운 시기에 인명 피해에 재산손실까지 왕창 나게 하는지. 이미 거대하게 번져버린 불은 진화가 어렵다. 하늘과 신령이 도와 비가 오거나 눈이 와줘야 잡을 수 있다. 대통령 선거 막바지 난타전이 벌어지는 이때, 사전 투표가 실시되는 날부터 시작된 산불은 아직도 타고 있다. 재산 피해, 인명 피해도 속출하고 벌거숭이가 되어가는 산, 그 산에 살던 새와 산짐승은 온전히 살길을 찾았을까. 

 

 아궁이 앞은 따뜻하다. 부지깽이로 잉걸불을 뒤적거린다. 다 타고 남은 잉걸불은 여전히 이글거린다. 아이들이 오면 아궁이 앞에 웅크리고 앉아 석쇠에 삼겹살을 굽고 술잔을 기울이던 때를 생각한다. 아이들은 없어도 농부가 퇴원하면 오붓하게 삼겹살 석쇠구이에 소주 한 잔으로 코로나 오미크론 탈출기 축하주라도 마셔야 하는데 산불로 폐허가 된 지역이 떠올라 그만 가슴이 묵직하다. 재난지역에 소나기라도 쏟아져주길. 빨리 불길이 잡히길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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