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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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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Dec 25. 2023

살아지니까 살아가는 거다.

살아지니까 살아가는 거다.   


  

 딸과 함께 한 열흘이 훌쩍 지나갔다. 남편이 집에 오는 날이다. 딸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나는 딸에게 싸 보낼 반찬거리를 챙긴다. 무청김치와 멸치볶음, 소고기메추리알 장조림을 했다. 혼자 먹는 밥이라도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한다. ‘사람은 밥 심으로 산단다.’ 딸은 아침 일찍 출발 예정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전화를 했다. 바로 출발할 테니 기다리란다. 버스와 기차 예약이 끝난 상탠데도 딸은 예약취소를 한다. 예약 취소에 따른 위약금도 문다. 바통터치 제대로 할 모양이다. 어쩌면 남편은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가 보다. 마음공부하며 느꼈던 것을 딸과 공유하고 싶어서 그럴 것이다. 나는 딸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 우울한 것인지. 다시 시작될 부부만의 일상 때문인지 우울해진다.   


 언제부턴지 나는 예전의 활기를 잃어버렸다. 조잘대고 깔깔대던 모습도 없다. 일상은 늘 조용하다. 딸과 같이 있을 때도 각자 제 일을 하고 남편과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번거로운 것이 싫고 나부대는 것도 싫다. 조용히 앉아 책을 읽거나 인터넷 영화를 본다. 수영장 오가는 시간에 사람들을 만나고 몇 마디 인사말도 하지만 물에서 노는 시간이나 집에 있는 시간이나 늘 고요하다. 


 딸과 있을 때는 밥때가 편한데 농부랑 있으면 밥이 문제가 될 때가 많다. 딸과 있을 때는 밥때가 늦으나 이르나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안 먹는 것에 익숙하지만 농부의 밥 때는 시간이 정확하다. 별 거 아닌데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밥 하면 벌써 머릿속이 피곤해진다. 사십여 년 길들어서 그럴 것이다. 내 무의식 속에 잠재된 밥때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닐까. 


 오전 열 시경 그가 왔다. 딸은 그의 얼굴이 맑아졌다 하고 그는 딸에게 왜 살이 더 빠졌냐고 묻는다. 그는 딸을 만나자마자 차를 마시잔다. 명상센터에서 보낸 열흘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번에 좋은 깨달음을 얻었단다. 하루 일식만 하는 단체생활이 좋았다는 뜻일까. 까칠하던 인상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딸에게 오후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더니 힘들겠단다. 붓글씨 배우러 문화원 가는 날이다. ‘바통터치 제대로 했으니 갈 사람 가야지.’ 딸은 서둘러 집을 나선다. 위약금 물었던 버스와 기차를 다시 예약하고 떠났다.


 나는 심통 난 척 괜히 딸만 번거롭게 했다고 툴툴거린다. 제 살기도 바쁜 딸을 오라니 가라니 한다고. 내 보호자를 자청하는 부녀가 닮아도 너무 닮은꼴이다. 나 아직 안 죽었어. 나 아직 칠십도 안 됐어. 보호받을 정도로 환자 아니야. 나도 혼자 좀 즐기자. 온종일 혼자 있어도 그리운 것이 없는 사람이야. 소리치고 싶다가도 어미를 생각해 주는 딸, 아내를 생각해 주는 남편 마음을 받아들인다. 내가 얼마나 못 미더우면 부녀가 저럴까. 반성한다. 그래, 사랑받는 거야. 사랑받고 살면서 무슨 불평을 하겠어. 나를 다독거린다. 


 내가 그레이스 M. 조의『전쟁같은 맛』의 주인공 엄마 같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낀 순간 조현병이 덮친 작가의 엄마처럼 나도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가능하면 그런 생각을 않으려고 할 뿐이다. 두 아이만 챙기며 살다가 두 아이가 내 품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낀 순간 나는 내 삶을 송두리째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나 싶었다. 딸에 대한 기대감을 접으면서 삶을 되돌아보게 된 것일까. 


 『전쟁 같은 맛』에서 엄마가 딸에게 거는 기대가 내게 반영된다. 그 딸은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회학자가 되고 교수가 되고 작가가 되었다. 전쟁 통에 호스티스로 산 엄마의 개인적 삶을 사회적 맥락에서 파헤치고 분석하고 승화시켰다. 내 딸은 ‘나는 엄마처럼 야망이 없어.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겁도 많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야망에 대해 생각했다. 진짜 내게 야망이 있긴 했는가. 야망이 있는데 왜 촌부의 삶에 길들어 사는가. 무엇이 나를 현실에 못 박았나. 당연히 두 아이였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우유부단한 내 성격 탓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쟁취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 영리하고 공부 잘한다고 떠받침 받았고, 내가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 편하게 이끌어주었다. 나 스스로 뭔가 되겠다고 머리를 싸맨 적도 없다. 오직 나를 곧추세워준 뭔가를 꼽으라면 독서와 글 쓰는 일이었다. 글쟁이가 되고 싶었고 글은 나였다. 촌부의 삶이 힘들어 허덕일 때면 이게 다 글감이라고 생각했다. 생활 자체가 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디어 라이프』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엘리스 먼로처럼 단편소설이 일기가 되는 삶을, 일기가 수필이 되는 삶을. 


 1960년 대 농촌에서 자란 여자아이로서는 호강받고 살았다. 우리 집은 풍족하지 않았지만 밥을 굶어본 적은 없다. 생일날이면 할머니는 오곡찰밥에 가자미 찌개에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내 아이들도 풍족하게 키우고 싶었다. 황소고집은 있어서 결혼만은 내 뜻대로 했다. 전원생활을 하며 소설가를 꿈꾸었다. 촌부의 삶을 시작하면서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보게 되었다. 현실은 내가 꿈꾼 세계가 아니었다. 나는 갈등했고, 인내했고, 살아냈다. 그레이스 M. 조의『전쟁 같은 맛』주인공의 엄마처럼 내 자리에서 뭔가를 성취하고 싶었다.  


 잠깐 『전쟁 같은 맛』에 빠져보면 1970년 대 부산 미군기지 호스티스를 했던 엄마, 상선을 타고 세계를 누비던 스무 살이나 나이가 많은 백인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이민 간 엄마, 백인 남자도 본 부인과 이혼하고 한국 여자를 택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이고, 양갈보, 양공주라 불리던 미군 상대로 성매매를 하던 여자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한국어로 수다를 떨 상대도 없는 곳에서 작가의 엄마는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결국에는 사십 중반에 조현 병을 앓게 된 원인이 아니었을까.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된 작가는 엄마의 인생을 파헤치고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구축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회적 명성을 지닌 작가가 개인사를 까발린다는 것은 용기에 용기를 더해야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양파처럼 개인사를 꼭꼭 숨겨두고 싶어 하고 예쁘게 포장하고 싶어 한다. 작가는 백인 혼혈아로 태어나 엄마의 굴곡진 삶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가 원하던 아메리칸드림을 완성시켜 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시간은 흐른다. 저녁 무렵 딸은 제자리에 잘 도착했단다. 엄마와 딸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살아갈 일이 남아있을 뿐이다. 살아지니까 살아가는 거다. 어디선가 읽은 글귀지만 맞는 말이다. 나도 살아지니까 살아가는 거다. 

        202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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