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꽃 전설 18

by 박래여


18. 여행을 떠나며


나는 농촌으로 들어갈 결심을 했으면서도 선뜻 단안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십몇 년을 공들인 직장을 포기하기가 힘들었고, 아직 딸아이 공부가 남은 터에 그 뒷바라지를 해야만 하고, 더 중요한 문제는 과연 내가 농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막연히 농사나 짓고 자연과 벗하며 편안하게 살고 싶다던 꿈이 현실 적으로 가능하게 된 이 시점에서 망설이는 이유는 참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이 나이에 농촌에 들어가 농사를 지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괭이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자랐으며 중노동이라고는 해 본 일도 없이 편안하게 편대만 굴리고 살아온 나날을 하루아침에 팽개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사무실을 배외하면서도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왜 내게 이 짐을 남겨주시고 가신 것일까 싶어 어머니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차라리 그 집과 땅이 남의 것이라면 내가 찾고 싶은 꿈이라도 꾸면서 어떤 설계라도 할 수 있으련만 힘들이지 않고 내 것으로 주어진 그것은 덤이요, 짐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은 날이 갈수록 더 새록새록 깊어지면서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끙끙댔다. 아내가 있고, 아이가 둘이나 되면서 왜 나는 고아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지 모를 일이다.

내 표정에서 그늘이 깊어지는 것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역시 아내였다.

“당신 요새 많이 힘드신 것 같아예. 어디든지 바람 좀 쐬고 오시지예.”

“별소리 다 한다. 2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사무실 일이 바빠서 그런 갑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퇴직 관계는 알아봤십니꺼?”

“서둘 필요 없겠지. 교육장이 한창 일할 나이에 무슨 소리냐고 꾸지람만 들었다. 무능하다는 소리 듣고 버티는 것 보다야 백번 낫지만 직장 일도 이젠 신물이 난다. 내가 권태긴가.”

“권태기가 너무 늦게 오는 것 같네예. 요새 같으모 당신은 모가지 감이라 예. 성의라고는 없어 뵈는데? 아침에도 일어나기 싫어하고 사무실 나가는 기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맹키로 가기 싫어 억지로 가는 것 같거든예.”

그랬다. 무엇인가가 내 마음속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공무원이 천직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교육 공무원이란 것이 일반 공무원과 달라서 순수한 점이 많았다. 첫째는 사람들이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런지 몰라도. 개중에는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교사도 있고, 입이 포도청이니 어쩌겠느냐는 교사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은 아이들이 세상을 올곧게 살아가도록 교육을 책임진 부류에 속했다.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니 시야가 좁아서 샌님 소리도 듣고, 늘품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란 소리를 듣지만 그런 교사가 있기 때문에 이 사회는 지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나도 그 계통 밥을 먹은 지 이십 년이 넘었다. 내 행동에 배어 있는 자세는 어딜 가나 표가 난다. 교직에 있느냐는 소릴 듣는 것에 둔감해진 지 오래다. 교사가 아니라도 교사 냄새가 나는 것은 그 교사를 상대하고 사는 탓이기 때문이리라. 일반적으로 교직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은 좁은 의미에서 보면 자잘한 사람이고 넓은 의미에서 보면 정직하고 자기 줏대를 지키고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단 며칠이라도 쉬면서 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한 이삼일 연가 내고 외삼촌이나 만나보고 올까?”

“좋은 생각이네 예. 갔다 오시모 기분이 좀 나아질랑가.”

“당신 괜히 엉뚱한 생각 하는 거 아니오?”

“뭘 예?”

“단 하루라도 남편 시집살이 면해 볼까 하는 심사 아니오?”

“잘 아시면서 묻기는 말라 묻습니꺼.”

다음 날 나는 연가를 냈다. ‘과장님 어디 아프신 기라 예? 과장님이 연가 낸다는 기 믿어지지가 않네 예.’ 서무계 강 양이 출근부를 들고나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체 연가라고는 찾아 먹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홀가분해졌다. 혼자 여행을 떠나 본 적도 까마득했다. 먹고사는데 연연해서 정작 오직 나만을 위한 할애 시간은 없었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내게 찾아갈 피붙이 외삼촌이 있고, 외사촌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번 참에 금이 이모의 소식도 알아보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모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도 늘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이 묘했다.

아마 어머니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을 금이 이모에게서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척 인간적인 탓이었을까. 그 이모도 이젠 노인네가 되었으리라. 나를 알아보기나 할는지. 월남 아저씨는 아직 살아 계실까. 보고 싶었다. 차라리 외삼촌에게 끌리는 정보다 금이 이모나 월남 아저씨에 대한 정이 더 끌림을 느꼈다. 진작 찾아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서 잊고 살았다는 말이 옳았다.

나는 집에 와서 간단한 여행 가방을 꾸렸다.

“오랜만에 당신 표정이 밝아진 걸 보네 예. 같이 갈 애인이라도 있습니꺼?”

아내는 여행 가방을 꾸려 주면서 조금은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도 같이 갈래?”

“됐습니더.”

“영덕이 데리고 가까?”

“혼자 댕기 오이소. 괜히 생색내는 척하지 마시고 예.”

부산 역에서 진주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 칸은 한산했다. 내 자리를 찾아가 여행 가방을 선반에 얹고 좌석에 앉았다. 앞좌석에 젖먹이를 안은 젊은 여인과 남편인 듯싶은 사람이 앉아 있고 통로 건너편에는 딸아이 또래 남녀가 앉아 서로를 얼싸안고 있었다. 남자의 한 손은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다른 한 손은 여자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남의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그들의 몸짓이 내심 부러웠다. 내가 저 연인들 나이만 할 때는 어땠는가. 쑥스러워했고, 은밀했었다. 같이 밤길을 걸으면서도 손을 잡기가 쑥스러워 주위 먼저 살피고 딴전을 피우면서 슬그머니 상대방의 손을 잡았었다. 만약 상대방이 가만히 있으면 용기를 내어 팔짱을 끼게 되었고 상대방이 차갑게 뿌리치기라도 하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먼눈 보기만 했었다.

문득 한 여자애가 떠올랐다. 박 영순, 갑자기 왜 그 여자애 이름이 떠오르는 것일까. 내 기억에서 지워진 줄만 알았던 얼굴, 아니 잊기로 작정했던 얼굴이 엊그제 만난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장함산 하산 길에서도 생각했던 그녀가 아니었든가. 기차를 타서일까.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여자애의 환영을 쫓았다. 그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지금쯤 아마 사십은 되었으리라. 중년의 그 여자애 얼굴은 아무래도 그릴 수가 없다.

“오빠. 인자 만날 수 없겠네. 잘 된 기라예. 지도 마 기다리는 사람한테로 갈랍니더. 인연이 있스모 또 만낼란가 모르겠지만.”

마지막 헤어지는 날 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럭저럭 그 여자와 사귄 지도 삼사 년이 지난 뒤였다. 사귀었다는 말은 어패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여자를 말괄량이 어린 소녀로 보았고, 그 여자는 아저씨라고 부르다가 오빠라며 따랐던 여자애다. 아마 지금의 아내 순정이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면 그 여자가 나의 아내 자리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무척 당돌하고 야멸치다 할 만큼 개성이 강한 아가씨였다. 내가 그 여자에게 헤어졌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 새롭게 사랑의 불이 붙었다며 그 사람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밀양 박 씨에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난깨 애인은 말고예. 의남매 하입시더. 아저씨는 우리 오빠를 많이 닮았어예.”

처음 만나 인사를 텄을 때, 당돌하게 그 여자가 먼저 말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긴 갈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소녀다운 수줍음을 지닌 앳된 여자애였다.

그 기차 칸에서 헤어진 후 꽤 시간이 흐를 때까지 그 여자와 나 사이엔 편지가 오갔다. 마산에서 자취를 하면서 개인 병원 간호조무사를 한다는 여자였다.

공무원 생활 한 오륙 년이 되었을 즈음 서울 공무원 교육원으로 한 달간 교육을 가게 되었었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칸에서 그 여자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첫인상이 좋은 여자였다. 여자는 표정이 무척 밝았고, 구김살이 없어 보였다. 좋은 부모 만나 사랑받으며 자란 여자가 저런 표정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는 나도 총각다운 호기심으로 은근히 내 옆자리에 앉을 사람이 어여쁜 아가씨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었는데 아가씨 대신 소녀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앳된 여자가 앉으니 조금은 실망했지만. 그 여자는 자연스럽게 음료수를 사서 건넸고 우리는 단조로운 여행을 살 찌우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로 그 여자가 이야기하는 편이었고 나는 듣는 편이었다. 워낙 여자 사귀는 데는 숙맥이었던 나는 그 여자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저씨는 어디까지 가느냐. 심심한데 우리 이야기나 하면서 가자.’했을 때 세상에 뭐 이런 덜렁꾼 아가씨가 있느냐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귀엽게 봤다고나 할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여자에게 호감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말재주가 뛰어난 것인지 아는 것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아가씨였다.

“서울에 사십니꺼?”

“언지예. 엉가 집에 왔다가 가는 길이거마예. 우리 엉가가 엄청 미인이거든예. 텔랜트 된다꼬 텔랜트 학원에 댕기고 난리더니 사랑에 빠져서 살림 먼저 채리고 말았지예.”

“언니는 동생 안 닮았나 봅니다.”

“하모예. 나는 돌연변이라 예. 우리 집안에는 인물 하나는 안 빠진다는데 내만 요리 주물리다만 뚝배기 겉은 기라예.”

“거게 아닌데. 못 생기지도 않았는데 뭘. 제가 말실수한 것 같습니더.”

“아니라예. 진짜 그렁께 인자 암시랑토 않아예. 하도 많이 들었던 말이라 면역이 된 기라예. 어려서는 어찌나 서럽던지 옴마한테 악다구니도 많이 했었어예. 진짜 옴마 아부지한테 보내 달라꼬 떼를 쓰면 식구들이 아무도 감당을 못했지예. 우리 옴마아부지 찾는다고 가출도 했던 기억이 나예. 예닐곱 살 적이었지예 그날도 엉가랑 오빠한테 ‘니는 다리 밑에서 주다 키운 아라 하드라.’며 놀림을 받고 울다가 우리 옴마 아베 찾아간다고 집을 나간 기라예. 겨우 들 가운데 짚단 속에 숨어 있다가 잠이 들고 말았지만.”

“그리 고집쟁이로는 안 보이는데......”

“집에서 난리가 난기라예. 다음 날 아침에 쇠죽 끓일 짚 가지로 왔던 논임자가 짚단을 들추다가 지를 발견하고 뒤로 해장작을 팼지예. 죽은 줄 알았답니더. 그 담부터는 그런 놀림은 안 받았어예. 지는예 아부지한테서 가시나가 황소고집이라 걱정이라는 소리 들음서 컸지예. 참, 지 이약만 했네.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이라 예?”

“직장 댕깁니더. 그런데 해장작이 뭐지요?”

“해장작은 뒤로 뻥 넘어지는 가라예.”

그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참 매력적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강한 눈매를 가진 여자였다. 그 여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부산 역은 지척 간 같이 금세 닿았다. 가방을 챙겨 드는 내게 여자는 섭섭해하는 눈빛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주소나 갈카 주고 가모 안 될까예?”

그 여자의 눈이 너무 간절해 나는 직장 주소를 가르쳐 주었었다.

며칠 뒤 그녀가 보낸 편지를 받았고 나도 답장을 썼었다.

기차는 간간히 작은 역사에 머물었다가 다시 출발을 했다. 야트막한 산이 구렁이처럼 흐르는 풍경 속에 들은 보리 베기와 논갈이,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물이 잠잠하게 잡힌 무논은 대부분 경지 정리가 되어 네모반듯했고 논바닥에 비치는 산과 나무, 하늘의 풍경이 그림자처럼 아련했다. 농노마다 흔하게 보이는 1톤 트럭이나 경운기, 트랙터 등이 특이한 풍경인 것 같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농촌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일자로 줄을 서서 모내기하는 모습은 찾으래도 없었다. 이앙기를 끌고 가는 사람과 그 뒤를 따르며 뜬 모를 다시 심거나, 모포기가 빠진 자리를 메우는 아낙 한 둘이 보일 뿐이었다.

눈은 창밖을 응시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지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기차를 타는 순간 기차에 얽힌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기 시작했고, 영순이는 쉽게 잊어지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표정, 목소리, 행동거지가 어제 일처럼 환하게 떠올랐다.

“우리 집은 촌에 있어예. 지는 중학교를 촌에서 댕겼어예. 공부하는 데는 취미가 없고 살랑 기리고 돌아댕기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어예. 우리 아부지는 오빠나 엉가가 공부를 더 해야 항깨 내 보고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솥뚜껑 운전수나 착실히 하다가 시집가라 안 쿱니꺼. 속에 천불이 나데예.”

“그런데 간호사는 어찌?”

“들어보이소 내 이약이 구구 절절 입니더. 부엌데기 할 바에야 도시에 나가서 돈이나 벌자 싶어서 친구랑 짜고 집에서 도망 나온 기라예. 마산에 와서 취직한 데가 마산 자유수출이라 예. 전자제품 맹그는 공장이었는데 쪼맨 댕기다 도저히 못하것다 싶어 할 차에 우리 옴마가 찾아 왔디예. 옴마 따라 다시 집으로 들어갔지예. 그라고는 아부지하고 단판을 진기라예. 간호학원에 일 년 만 보내 도라꼬. 그렇게 자격증 따서 병원에 취직하고 지금은 늦었지만 야간 고등학교도 댕깁니더.”

편지를 주고받다가 가끔씩 만나서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녀에게 들은 신상명세서다. 숨기는 것도 없고, 막히는 구석도 없는 정말 시원시원한 여자였다. 같은 박 씨라서 애인은 도리 없으니 동생 하겠다고 선언 한 그녀가 정말 자연스럽게 진짜 동생 같았다. 심심하면 찾아와 밥 사 달라, 영화 보여 달라 하면서 귀엽게 구는 것이 좋았다. 자기 친구 소개해 준다고 데리고 왔다가는 희다 검다 말이 없다가

“영순아, 지난번에 같이 왔던 친구가 내 보고 싶어 안 하데?”

하면서 관심 있는 척 굴면 심통 난 얼굴로

“그 가스나가 오빠 겉은 남자는 싫단다. 근육질의 남자가 좋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내 눈치를 살피곤 하는 것이 참 구김살 없고 귀여웠다. 그녀를 만나면 부담이 없었다. 편하고 좋았다. 정말 친동생 같았고, 외로울 땐 애인 같았다. 그녀의 표정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묘한 매력을 지녔던 아가씨였다.

“오빠, 이번 주말에 마산 놀러 올래? 지난번에 소개해 준 그 가스나가 봉급 타서 한턱 쓴 댄다. 원님 덕에 나도 나팔 좀 불어 볼까 싶어서.”

그 여름날 밤, 우리는 마산에서 만나 저녁을 먹었다. 같이 나온다는 친구는 없고 나를 기다린 것은 그녀였다.

“오빠, 우리 밤기차 타고 나가 보자. 가다가 역마을 이름이 마음에 들면 내리기다. 어때? 달이 너무 밝아서 기차 타면 멋있을 것 같거든. 내 혼자는 무섭구.”

“야, 우리 영순이 그러는 거 봉께 처니 같네.”

“그람 내가 머스마 같았나?”

새치름하게 변하는 그 여자의 얼굴은 꽤 심각해 보였다

“니 삐쳤냐? 오래비가 농담 좀 했다. 날도 덥고, 달도 밝고, 내일 출근도 안 하지 잘 됐다. 나도 밤기차는 타 본 기억이 별로 없으니 우리 기차 여행해 보자.”

“신나라.”

우리는 마산 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가다가 섬진강 둑길이 끝도 없이 펼쳐지던 작은 역에서 내렸다. 하빈 역이던가. 그녀는 역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내리자고 했었다. 그 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니 둑이 나왔고, 둑을 가운데 두고 강과 과수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슬이 촉촉하게 발등을 적시는 데도 우리는 어느 결에 손을 꼭 잡은 채 말없이 걷고 있었다. 그 여름밤, 달빛은 또 왜 그리 유혹적이든지. 만월이 가까운 달은 강둑의 푸른 풀밭을 뒹굴며 유혹했고, 멀리 인가에서 불빛이 속삭였다. 사랑하기 좋은 밤이야, 사랑하기 좋은 밤이야. 강물이 찰랑찰랑 흐르면서 그래 사랑하기 좋은 밤이야 하면서 대꾸했다. 달빛은 모든 것들을 포근하게 감싸면서 물 위에 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풀밭에 앉았다.

“너무 아름답다. 그치?”

그 여자는 내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며 파르르 떨었다.

“자살하기 딱 좋은 밤이야.”

“자살은 아무나 하는 건 줄 아나? 세네카라는 철학자가 그랬어. 자살은 가장 용기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럼 전혜린은 가장 용기 있는 여자네?”

“전혜린을 좋아해?”

“응, 그 여자가 거닐었던 독일의 슈바빙거라는 거리를 가보고 싶어.”

“너, 이제 보니 대단한 센티멘털리스트구나.”

“난 내가 가장 사랑을 느낄 때 죽었으면 좋겠어. 오늘 밤처럼. 그렇지만 걱정 마 오빠를 사랑하는 거는 아니니까. 오빠는 동성동본이니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이잖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녀는 내 품에 더 깊이 파고들며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손은 자연스럽게 내 허리에 감기고 나는 그녀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그녀의 머리에서 비누 냄새가 향긋하게 났다. 세수 비누 냄새가 그렇게 자극적인 줄 그날 처음 알았다. 나는 가만히 그녀의 앞섶에 손을 넣었다. 그녀의 몸은 경직된 채 가만히 있었고, 나는 따뜻하고 탄탄한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젖꼭지가 빳빳하게 솟는 것과 같이 내 물건은 바지를 뚫고 나오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이미 나는 여자를 아는 남자였다. 어쩌면 그 순간 내가 생각한 것은 순정이었는지 모른다. 상처, 그 깊은 상처를 그녀에게 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머릿속은 어서 그녀 속으로 들어가라고 충동질했다. 강한, 형용할 수 없는 전류가 온몸을 휩쓸었다. 머릿속은 천둥 번개가 치고 달빛이 아득아득했다. 그녀의 입에서도 단내가 풀풀 났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그녀를 내 몸에서 떼어냈다.

“안돼, 순아, 안돼. 우린 남매잖아. 너를 아껴주고 싶어.”

그렇게 그녀를 온전하게 놓아주었다. 풀잎처럼 이슬에 젖어 하늘이 희뿌연 하게 밝아올 때까지 우리는 섬진강 둑길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하빈 역에서 새벽 첫 기차를 탔을 때 그녀는 재채기를 심하게 하고 있었다.

기차가 섬진강 둑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저 어디만치 그녀가 누웠던 자리 아니었을까.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아직도 그날 밤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떻게 그녀를 온전하게 지켜줄 수 있었을까.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에 지켜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불현듯 보고 싶다.

“내가 오빠를 남자로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난 엄연히 오빠의 동생이니까.”

그날 이후 우리는 진짜 사이좋은 남매지간이 된 것 같았다. 심심하면 나타나 매일 만나는 얼굴처럼 스스럼없이 굴며 맛있는 것 사 달라, 영화 보여 달라. 술 사 달라. 용돈 좀 넉넉하게 줄 수 없느냐고 떼를 썼다.

“오빠, 난 남자가 필요해. 지금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 말이야. 누구 없어? 여관 가면 끝내주게 해 줄 텐데. 오빠는 안 되겠지? 우린 남매니까.”

하면서 나를 놀렸다. 어떤 때는 내가 만나자고 전화를 하면

“바빠, 나도 데이트해야지. 맨날 오빠 애인 노릇만 할 수 없잖아.”

하면서 간단하게 거절도 하는 여자였다.

그러다가 첫사랑 순정이를 다시 만났다. 어쩌다 양다리를 걸치는 신세가 되어 나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미안했다. 순정이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 것도 순전히 그녀 덕이었다. 내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순정이는 직감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그 여자 만나지 마이소. 그 자리에 제가 있을게예.”

순정이의 가슴에 질투라는 불을 지르게 된 내막은 이랬다.

토요일이었다. 퇴근 후 순정이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녀가 전화를 했다.

“오빠 보고 싶어서 나 왔어. 나 지금 태종대 자살바위 옆에 있거든. 무조건 그쪽으로 와. 빨리 안 오면 뛰어내린다.”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져 버렸다.

사무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다방에서 순정이를 만났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빨리 안 오면 뛰어내린다.’ 그 소리만 꽉 차 있었다. 내가 갈 때까지 그 여자는 태종대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하늘 보고 방긋 웃고, 바다 보고 방긋 웃으며. 내가 저만치 보이면 숨도 안 쉬고 달려와 내 목에 두 팔을 감고 매달리며 열렬한 뽀뽀를 해 댈 것이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고. 그 열화 같은 불꽃에 데어 죽는다 해도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에 오직 그녀 생각뿐이었다.

“권섭 씨 왜 그래?”

“응?”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 같아?”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내 입은 내 의지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응, 오늘은 이만 가 봐야겠다.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나는 멍한 표정의 순정이를 다방에 앉혀 놓고 찻값을 치르고 먼저 나왔다. 택시를 급하게 잡아타고 그녀에게 달려가면서도 ‘내가 미쳤지’ 속으로 끌끌 혀를 찼다. 내 뒤를 따라 나온 순정이가 뒤를 밟은 것을 안 것도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날 영순이를 만나 저녁까지 먹고 즐기다 집에 오니 순정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순정이는 스스로 내게 몸을 맡겨 왔다. 이미 그녀를 안았던 나 역시 스스럼없이 그녀를 안았다. 어쩌면 영순이를 안고 싶은 마음을 순정이에게 쏟았는지 모른다. 마음은 영순을 원하는데 몸은 순정이를 취하고 있는 나, 두 여자는 판이하게 다른데 비슷한 것이 꼭 하나 있었다. 순정이가 감추어진 불꽃이라면 영순이는 밖으로 드러난 불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순정이는 결혼을 원했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진짜 내가 오빠 좋아한 거 몰랐지? 밥통, 쑥맥. 오빠는 여자 마음을 너무 모른다. 순진파야? 내숭파야? 어쨌든 잘 됐어. 우린 어차피 결혼이란 거 못하는 사이잖아. 그러니 할 수 없지. 열불 나서 그 언니 만나 패 주고 싶은데. 그럼 우리 오빠 홀애비 될까 봐 안 되겠지. 장개 가모 잘 사이소 오빠.”

그녀는 시원시원하게 떠나버렸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어느 날 훌쩍 사라져 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잊을 수 없어 괴로웠다면 거짓일까. 그녀를 사랑했을까. 동생이라기보다 여자로서 그녀를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가끔 그녀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었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새삼스럽게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고 있을지. 아마도 어머니를 여읨으로 인해 그만큼 나 자신이 허약해진 탓은 아닐까. 산다는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깊어지면서 나는 과거를 돌아볼 여유를 찾은 것 같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 살아온 나날이 왜 이리 별 볼일이 없다고 느껴지는지, 뭔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고. 어머니의 존재가 내겐 그렇게 컸던 것일까. 아님 기억밖에 묻어두었던 그녀의 이미지를 끌어내게 된 탓일까. 어머니, 자살, 초상, 아내, 영진이와 영덕이, 박영순, 다연이, 기차, 사천, 금이 이모와 월남 아저씨, 외삼촌. 잿골 할머니 등등 내 기억에 저장된 이름들을 끌어내어 일직선으로 세우면 이 기차만큼의 길이가 될까. 그렇지만 나는 끝내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수백이라는 분, 내 기억 밑바닥에 딱딱하게 굳은 앙금으로 남았을 뿐.

진주 역에 도착했다. 나는 역을 나서며 호주머니에 넣은 전화번호를 꺼냈지만 공중전화 박스를 찾지 않았다. 그냥 두 발로 직접 찾아가고 싶었다. 역 앞에 나와 시외버스 타는 장소를 물어 찾아갔다. 고성 가는 시외버스를 타라고 했지. 사천 읍을 지나 한 정거장만 더 가서 내리면 된다고 했지. 거기서 송원 농장을 찾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 시골이니 집 찾는 것은 수월하겠지. 나는 낯선 나라에 온 여행객처럼 속으로 외삼촌이 일러준 길을 더듬고 있었다.

집에서 길을 나서기 전에 전화를 했었다. 오늘내일 중으로 한번 찾아뵙겠다고 했더니 외삼촌이 아주 반가워하며 찾아갈 길을 일러 주었다.

“그라네도 우리 아가 니 봤으모 좋것다 캐샀는데. 심란할 낀데 잘 생각했다. 잔작 나설 일이제. 사천에 도착하모 우리 아가 마중 가모된께내. 진주서 몇 시 차로 오는지만 알려 주모된다. 우리 큰 아가 용달차 한 대 끌고 댕긴다. 마중 가모된깨내 꼭 전화버텀 하거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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