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꽃 전설 19

by 박래여


19. 혈육이라는 것.



외삼촌께 간다는 기별도 않고 진주에서 고성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기차와 마찬가지로 버스 안은 한산 했다.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고속도로 진입로에 들어서기 전에 간이 주차장에서 잠깐 정차를 했다. 육십 대의 아주머니가 커다란 짐 보따리를 이고 올라오더니 출입문 바로 앞의 좌석에다 그 짐을 털썩 놓으며 ‘휴’ 하고 큰 숨을 쉬고는 기사 아저씨의 뒷좌석에 가서 앉았다.

문득 그 낯선 아주머니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짐 보따리이고 행상을 다니셨던 어머니.

“일철이라서 손님이 없지 예?”

그 아주머니는 익숙하게 기사 아저씨에게 말을 건넨다. 내 나이보다는 두어 살이 많을 것 같은 운전기사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모내기철인데 촌사람들이 이 시간에 논에 있지 말라꼬 길 나서겠습니꺼.”

“하모예. 나도 진주 딸네 집에 해산 구완해 주로 갔다가 일 핑계 대고 집에 가는 깁니더.”

“외손줍니꺼? 외손녑니꺼?”

“가시나라예. 사우 보기 미안 터마. 고치 하나 달고 나왔시모 좋았을 낀데. 저거들은 좋아서 죽더마. 요새 젊은것들은 부끄럼이 없어서 우리 겉은 늙은이가 치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난리라 예. 잘난 가시나 빼쪽 나 놓고도. 요새는 가시나가 금값이라 쿠지만 첫 머스마를 쑥 나 놔야 든든한 긴데.”

“요새는 아들 딸 구별 있습니꺼.”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캐도 가시나는 너머 식군기라예.”

“담에 머스마 노으모 되것지예.”

“거기 뜻대로 됨사 뭔 걱정이라예. 세상이 좋아져서 자슥도 입맛대로 맹근다 쿠지만 거기 아인기라예. 아들자석 흔한 집에는 딸 자석 놀라꼬 용을 써도 아들만 나온다는 말이 맞십니더.”

“첫 안데 뭘 그리 걱정입니꺼.”

“우리 딸이 내 팔자 닮을까 걱정이 되서지 예.”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딸만 내리 여섯을 낳은 아주머니였다. 아이를 낳은 딸이 막내라면서 그 위의 딸들은 시집을 가서 아들 딸 쓰기 좋게 낳았지만 딸만 낳으면 간이 쿵 떨어진다고 했다. 아들에 포원 진 어머니의 모습은 어찌 보면 측은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름답기도 하다. 아직도 아들 선호 사상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그 아주머니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가끔 나는 영진이가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라곤 했다. 그 아이가 아들이었다면 영덕이로 인해 받는 마음고생은 아마 하지 않아도 되었지 않을까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 평범한 부모 마음 아닐까.

비행기가 폭음을 일으키며 나직하게 하늘을 날았다. 사천이구나. 사천에 비행장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라 버스가 사천읍에 도착한 줄 알았다. 사천은 내게 너무도 생소한 곳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것, 그들이 뿜어내는 숨결과 삶의 모습들을 방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지나치면서 나는 낯설지 않음을 느꼈다.

외삼촌이란 존재가 있기 때문이리라. 따지고 보면 오촌 당숙이기도 한, 그 묘한 관계는 나를 조금은 주눅 들게 했다. 꼭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거북함이 가슴 안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외숙모나 외사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자 외삼촌을 찾아 나선 것이 잘못한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같은 조카는 없는 게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이고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내가 원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어머니 말씀처럼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환영받지 못할 존재라는 것은 세상에 없으며 어떤 생명이건 간에 생명은 소중하다고 나는 배웠다.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 신자가 아니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또한 이 삶의 음지에는 나 같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세상에 태어난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부모 가슴에 못 박을 자슥이모 고마 태어나지나 말지.”

영덕이를 보면서 했던 말이 그대로 어머니가 내게 했을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들은 늘 웃거나 무표정하다. 무표정한데도 아이의 얼굴에서 그늘을 발견할 수가 없다. 어쩌면 내 아들이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이 아닐까 싶을 때 있다.

버스는 사천읍 시외버스 터미널에 들어가 10분쯤 쉬었다. 내리는 손님은 내리고, 탈 손님은 탔지만 버스 안은 널찍했다. 버스는 고성 통영 가는 사람들을 싣고 다시 출발했다.

“기사님, 다음 정거장에 내려 주이소.”

내 목소리에 내 앞 좌석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 돌아봤다. 기사 아저씨와 정답게 이야기하던 아주머니가 그 새 졸았던 모양이다. 나는 단잠을 깨워 미안하기도 해서 친근하게 웃음을 던졌다. 아주머니도 친근하게 마주 웃어주었다. 내 어머니도 저 아주머니처럼 운전기사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목적지를 향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존 적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역마살을 타고 난기라. 집에서 한 사할 만 지내모 온 몸이 근질거리는 기 못 전디는 기라. 횡 하니 발길 닿는 곳으로 한 바꾸 돌고 오모 살맛이 나거든.”

내가 어머니의 행상을 극구 말리자 어머니는 또 이렇게 말했다.

“너거들이 잘 못해서 내가 집을 나서는 기 아니다. 평생을 장터에서 산 팔자라서 그런 기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는 장터에서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하는 소리를 들으모 사람살이가 이런 기다 싶니라.”

길 양쪽으로 땅내를 맡은 벼 포기가 파릇하게 자라는 들이 보기 좋게 이어졌다. 버스가 한 십 여분은 달렸을까. 길옆에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나지막한 슬레이트 지붕에 알록달록한 색칠을 한 집도 있고, 현대식으로 말끔하게 단장한 집도 가뭄에 콩 나듯 끼어 있는 마을이었다. 그 마을 앞에 비를 피할 만큼의 여유가 있는 간이 정거장이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빨간 벽돌로 만든 간이 정거장 앞에서 버스가 정차를 했다. 내리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여행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차에서 내렸다. 그 아주머니가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운전기사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탈 사람이 없자 버스는 금세 부르릉거리며 떠나갔다.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간이 정거장 안에 들어가 나무 의자에 앉았다.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생각해 보자 싶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길옆의 동네에 들어가 물어보던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되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길가의 논두렁에서 무엇인가를 심고 있는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가까이 갔다.

“말 좀 묻겠습니더? 집을 찾는데예.”

“그리 하이소. 뉘 집 찾습니꺼?”

아주머니가 허리를 펴며 친절하게 말했다.

“송원농장이라꼬 아십니꺼? 산 하나가 온통 밤나무 단지라쿠든데.”

“송원 농장? 가만있어보소. 오데서 많이 들어본 상 싶은데.”

한참을 생각하던 아주머니는

“하이고 인자 생각이 나네. 아저씨가 그 집 캉 우찌 되는 사이요? 그 집에 갈라모 잘 못 온 기라. 사천읍에서 완행 빠스를 갈아 타야제. 여게서 걸어갈라모 한참 가야 할낀데. 좀 있으모 거기 가는 빠스가 올 시간이 다 돼가는 상 싶기도 하고.”

“오데 쯤입니꺼?”

“저어개 아래 삼거리 있지예? 거서 오른쪽 편으로 들 가운데 빤한 길이 있지예? 그 길을 쭉 따라 가모 됩니더. 한 십리는 될 낀데. 저 앞산을 돌아 들어 갑니더. 고갯마루에 올라 가모 오른손 편으로 송원 농장이라는 써 붙인 간판이 나올 낍니더.”

“고맙습니다.”

외삼촌이 진주에서 고성 가는 차 타기 전에 꼭 전화를 하라는 의미를 그제야 깨달았다. 가다가 시간차를 만나면 탈 요량을 하고 아주머니가 일러 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삼거리에서 들길을 따라 걸었다. 그 찻길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 같았다. 보기 드물게 굵은 버드나무가 양 옆으로 쭉 늘어서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들을 건너다보면 산비탈 양지 뜸에 올망졸망하게 앉아있는 촌락들이 보기만 해도 정겹게 느껴졌다. 모롱이 한 구비를 돌아가는데 버스 한 대가 덜컹거리며 다가왔다. 손을 드니 내 옆에 와서 섰다. 올라타고 보니 차 안이 텅텅 비었다. 모내기철이라 손님이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송원 농장 앞에 내려 주이소.”

맨 앞자리에 앉으며 운전기사에게 부탁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얼굴과 외삼촌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따뜻한 느낌이 목구멍을 넘어오면서 숨이 찼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혈육의 정이란 사람의 힘으로 맺어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저씨 내리소.”

기사의 재촉을 받고 눈을 떠 보니 차는 산마루에 올라와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내 뒤편을 올려다보니 <송원 농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오솔길을 걸어 한참을 올라가니 낡은 축사가 보였다. 축사 안에는 돼지나 소 대신 자질구레한 농기구들이 들어차 있었다. 그 축사를 지나니 안쪽으로 지은 지 오래된 듯한 양옥집 한 채가 보였다. 대문도 없고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계십니까?”

모두들 일을 나간 모양이었다.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주인을 부르자 집 앞 산모롱이에서 경운기 소리가 났다.

“어떻게 오셨습니꺼?”

사십 살은 되어 보이는 남자가 경운기에서 내리며 내 거동을 살폈다.

“박 수영 씨를 찾아왔는데 이 집이 맞습니까?”

“부친입니더. 밤 산에 비료 내는 날이라서 집에는 아무도 없십니더.”

“그렇습니까? 밤 산이 여기서 멉니까?”

“무슨 일로 오셨는데예?”

그 남자는 어딘가 그늘이 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외삼촌의 아들이면 나와 외종간일 텐데 어쩐지 외삼촌과 닮은 구석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작은 체구에 깡마른 몸매였다. 나는 그 남자에게 서로 어떤 관계라는 것을 밝혀야 하는지 그냥 얼버무려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서서 ‘밤나무 단지가 꽤 큰가 보다’면서 엉뚱한 말을 늘어놓았다. 어차피 외삼촌이 오면 내 존재가 알려질 테니까 내 입으로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그 남자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경운기에 실린 빈 비료 포대와 고무 통 등을 덜어내 축사 쪽으로 가지고 갔다.

나는 할 일 없이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집 옆을 돌아가니 산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것이 속을 확 뚫리게 했다. 멀리 마을과 들판에서 저녁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그스름하게 타 오르는 하늘과 어울려 그 풍경이 경이로웠다. 깊은 정적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기 누고? 권섭이 아이가?”

등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후줄근한 작업복을 입은 외삼촌이 환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외삼촌!”

반가웠다. 그렇게 반가울 줄은 나도 미처 몰랐던 일이다.

“니 전화받고, 조만간에 댕기려 올끼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리 금세 올 줄은 몰랐다. 사천서 전화했시모 데불로 갔제. 우리 집 찾는다고 고생했제?”

외삼촌은 내 손을 붙들고 흔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니를 다시 보니 누님 생각이 나서...... 진작 왕래가 있었시모 이리 서운 치는 안 했을 낀데. 아직도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 봐라. 야야? 어서 오이라. 니 고종 성이 찾아왔다.”

외삼촌이 밤 산에서 내려오는 또 한 사람의 남자를 향해 손짓을 하며 급히 불렀다. 그 남자는 멀거니 서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외삼촌의 모색을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야야, 자가 우리 큰 아들 성구다. 그라고 인사했는지 모르겠다만 먼저 만내 본 저 아가 내 양아들 정호다. 어서 들어가자. 살림하는 여자가 없는 집이라서 집안이 엉망이다.”

외삼촌은 앞서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여기저기 신문지랑 책이랑 옷가지들이 정신없이 늘려 있었다.

“외숙모님은 예?”

“차차 기약하자. 너거들은 다들 초면인께 서로 인사해라.”

뒤 따라 들어온 두 사람과 거실에서 마주 보며 수인사를 나누었다.

“너거들한테는 성님이다. 앞으로 서로 왕래함서 지내 거라. 지난 분에 누님 돌아가셨을 때 같이 못 가봐서 짠하다 샀터마 이리 봉께내 좋구나. 성구야, 니는 가서 에미 좀 델꼬 오니라. 우리 아는 저 아래 동네에다 제금을 냈니라. 나는 정호하고 둘이서 이리 산다. 사는 기 참 험하제? 며눌아가 가끔 와서 밑반찬이랑 청소도 해 주고 간다마는 남자들만 사는 살림이라 허술하기가 짝이 없다. 누추하지만 방에 들어가자.”

정호라는 사람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부엌에 가서 술상을 봐 오고, 성구라는 사람은 쉬고 계시라는 인사를 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외삼촌!”

나는 목이 메었다. 어머니를 다시 보는 것처럼 반갑고 슬펐다. 그러나 동생이라는 두 사람에게는 아직 말을 놓아야 하는지도 분간이 안 섰다. 진작 외갓집이 이 산골에 있는 줄 알았더라면 서로 오고 가면서 외종 동생들과 어울려 놀면서 어린 추억들을 키웠으련만, 스스럼없이 형님 아우가 되어 반가우련만, 중년이 되어 만나니 어색하기만 했다. 외삼촌에게서 느끼는 피붙이의 정을 아직은 느낄 수는 것은 초면인 탓도 있으리라.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핏줄 당김이라는 것이 있겠지.

술상에는 김치와 넙적한 사발, 양은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사천 막걸리 맛 좀 봐라. 도가에서 아예 말술을 받아다 놓고 주전자에 부어 묵는다. 일할 때는 참으로 막걸리가 최곤 기라.”

“밤나무 단지가 꽤 큰 갑지예?”

“하모, 이정이 넘는다. 낭구들이 한 이십 년 생이 되다 봉께 늙어서 베 삐고 다른 걸로 심을까 생각 중이다. 인자 밤도 한물간 것 같기도 하고.”

“오다 보니 포도밭이 더러 눈에 띄데예. 무얼 심을라꼬예?”

“하모. 여게 토질이 포도 심가기에 좋은 땅인갑더마. 포도 농사가 괜찮다는데. 우짜꼬 싶다. 매실 낭구를 심어 볼까, 포도 낭구를 심어볼까 연구 중이다. 잔 비우고 니는 가서 씻고 쉬거라.”

외삼촌은 말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정호라는 동생을 내 보냈다.

“밤나무 가꾸는 것도 일이 많은 갑지예?”

“그라모. 사는데 쉬운 일이 오데 있노. 다 그런 기제. 오늘 밤 산에 비료 내고 풀 약 치고 하니라꼬 땀 깨나 흘렸다.”

“외삼촌도 씻으시지예.”

“오냐. 배 좀 채우고 천천히 씻을라 쿤다. 니가 차에 시달리서 고달플 텐데 먼저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래? 우짤래?”

“먼저 씻고 오이소.”

“내 그라모 퍼뜩 씻고 옷 좀 갈아입고 오꾸마.”

나는 외삼촌이 방을 나가는 것을 보고 혼자 멍하니 앉아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낡은 텔레비전이 벽을 의지하고 놓여 있고 그 옆에 장롱이 있었다. 텔레비전 위에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무엇에 끌리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흑백의 사진 속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꽤 오래전에 찍은 사진 같았다. 파리똥이 얼룩덜룩 앉은 네모 상자 속의 얼굴들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외삼촌과 나란히 앉은 한복을 입은 여자가 외숙모 같았다. 두 사람은 어린 남매를 한 명씩 무릎에 안고 있었고 두 사람 뒤로 여러 얼굴들이 있었다. 성구라는 동생과 그 부인인 듯싶은 여자와 또한 여자와 그 남편인 듯한 남자 옆에 정호라는 동생이 있었다. 나는 정호 동생의 옆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여자는 흑백 사진 속의 얼굴이지만 너무나 선명한 얼굴이었다. 내 기억 속에 남은 여자, 박영순 그녀 같았다.

‘아닐 거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고향이 사천이란 말을 들은 적도 없어.’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지러움을 느꼈다. 세상에 닮은 사람도, 비슷한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런데도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 가족사진이다. 한참 오래전에 찍은 기라서 희미하게 색이 바래 보기가 싫제?”

언제 들어왔는지 외삼촌이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내 옆에 와 섰다.

“저 사람이 너거 외숙모다. 몇 년 전에 죽었다. 차마 너거 옴마한테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누야가 상심할까 싶어서 말 안 했더니....... 그라고 성구 옆이 며누리고 그 옆에 딸아가 서울에 사는 니 여동상이고, 정호 옆에 있는 딸아가 막둥이 딸이다.”

“그럼 정호라는 사람이 외삼촌 사위란 말입니꺼?”

“사우가 될 뿐 했제.”

“예? 무슨 말입니꺼?”

“내 나중에 세세한 이약 해 줄낑께 씻고 오이라. 며눌애가 와서 저녁 다 차린 것 같더라. 저녁이나 묵고 천천히 이약하자.”

거실에는 커다란 두레상이 놓였고 상 위에는 음식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에미야 나와서 인사해라. 너거들도.”

제수씨랑 중학생인 듯한 남매가 인사를 했다. 제수씨는 순박하게 생긴 여자였다. 푸짐한 몸매만큼 심성도 고와 보였고, 두 아이도 건강하고 밝은 인상이었다. 제수씨는 찬이 없다면서 무척 미안해했다.

“이거 니가 올 줄 알았시모 괴기라도 한 점 사다 둘 낀데. 찬이 변변치가 않다. 순 푼이파리 뿐이거마. 그래도 많이 묵어라.”

오랜만에 대 가족적인 분위기에 취했지만 밥알이 목구멍에 걸리는 것을 억지로 씹어 넘기느라 숨이 찼다. 눈앞에 그 사진 속의 여동생이 어룽거려서 입맛을 잃게 했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그런데 왜 이리 답답할까. 건성으로 숟가락질하는 것이 외삼촌 눈에 띄고 말았다.

“와, 입맛이 없나? 찬이 없어서 그렇제.”

“아닙니더. 오다가 배가 고파 군것질을 했더이 밥이 안 땡기네예.” 자세를 바로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며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외삼촌 가족과 빙 둘러앉았지만 사실할 말이 별로 없었다. 사람은 서로 자주 만나야 할 이야기도 많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어머니 이야기는 나 자신이 아직은 말하기가 거북하고, 외숙모님 소식을 묻기도 거북했다.

정호라는 사람은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나보다 더 말이 없는 사람 같았다. 결혼도 안 한 것 같은데 어찌하여 외삼촌댁에서 기거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외삼촌. 막내 여동생 이름이 뭐였지 예?”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순간 정호라는 동생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눈을 내리 깔았다. 식구들의 눈이 모두 내게 와 멎었다.

외삼촌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큰 딸이 영미고, 막둥이가 영순이다. 집에서는 끝내라고 불렀다.”

“아부지, 저는 곤해서 나가 쉴랍니더.”

정호 동생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라. 오늘 수고했다. 푹 쉬 거라. 낼은 예취기 가지고 한나절만 일하모 될 끼다.”

“당신도 애들 데꼬 고마 가지. 정호야 너거 형수 좀 집에 데려다주고 온나.”

다들 가고 외삼촌과 세 사람만 남았다.

“저 아를 보모 애인해서 또옥 죽을 맛이다. 장개를 보낼라 캐도 말을 들어야 말이제. 저거 성이 강원도에서 사슴농장을 한다는데 아무리 오라 캐도 지가 안 갈라 쿤다. 사람 정이 웬수다.”

“정호도 인자 잊어 삘 때가 됐을 낀데. 언제까지 아부지가 끼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꺼. 가실하고는 무슨 수를 써던지 보냅시더.”

“무슨 사연이 있는 갑지예?”

외삼촌 부자간에 하는 말의 뜻을 나그네인 내가 알아듣기엔 무리였다. 그 속내를 다 듣지 않아도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외삼촌도 성구 동생도 아무 말도 않더니 침묵을 참기 힘든지 외삼촌이 한숨을 푹 쉬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끝내 생각 하모 가심이 멕힌다. 그것이 부모 가심에 대못을 박고 갔니라. 생각 하모 기가 찰 노릇이지만 우짜것노. 지 명줄이 그것뿐이라 생각해야지. 벌써 십 년이 넘었시 끼다. 우리 끝내, 그 자슥 생각 하모 가슴이 아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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