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꽃 전설 20

by 박래여


20. 그대 가슴에 눈빛이.


외삼촌은 그 말만 하고 술잔을 기울였다.

나도 성구도 역시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비웠다. 머릿속이 먹먹하다 못해 텅 빈 백지상태가 된 것 같았다. 그랬다. 영순이가 내 외사촌 동생이라는 사실은 내게 또 하나의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왜 인생은 자신이 바라지도 않는데 새끼줄처럼 배배 꼬이면서 흘러가는 것일까. 만약 내가 영순이와 결혼이라도 하려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어머니는 외삼촌을 더 빨리 만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고통에 더 깊은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죄라고 생각했겠지. 나 역시 젊은 혈기에 출생의 비밀을 알고는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내게 순정이가 없었다면, 순정이처럼 영순이를 육체적으로 사랑했었다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낸 것처럼 나는 영순이를 고이 보내지는 않았으리라. 그럼 영순이를 데리고 도망을 가서 살았을까. 그랬다면 어머니를 더 원망했을지 모른다. 하루도 편안한 마음일 수가 없었을 것이니까.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나는 너무 편안한 세월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나는 그다지 세상의 쓴 맛을 보지 않고 살았으니까. 배를 곪은 적도 없었고, 돈이 없어 쩔쩔 맨 적도 없었다.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풍족하게는 주지 않았지만 모자라게도 주지 않았다. 늘 적당했었다.

결국 성구가 입을 열었다.

“끝내는 마산에서 간호사를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한 당찬 아이였지 예. 그런데 어느 날 보따리를 싸서 집으로 왔디예. 마산에 혼자 있는 기 싫다면서 부모님 캉 같이 있겠다고. 사천읍에 개인 병원을 알아보는 중이라 했지예. 참 밝은 성품의 아이였는데 어딘가 지치고 우울한 얼굴이라서 아부지나 옴마가 걱정 많이 했거마.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을 해야 말이지예. 그냥 혼자 사는 기 지겨웠다면서 어른들 옆에 있다가 정호한테 시집이나 가것다는데 부모님은 쌍수를 들고 환영을 했지예. 나도 그때는 서울에서 개인 회사에 댕기고 있을 때라 확실히는 모르지만 부모님이 그리 말하더이다.”

아마 영순이는 나와 헤어지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던 모양이다. 순정이랑 결혼할 것이라고 했을 때 축하한다면서 ‘나도 인자 우리 집으로 갈랍니더. 내 기다리는 사람한테로 가야지예.’라고 말했었다.

그럼 그 남자가 정호라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영순이는 정호를 중학교 3학년 때 알았다고 한다. 정호는 강원도가 집인데 부모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형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사천에는 공군 비행장이 있다. 정호는 공군 공수부대에 지원을 해서 사천 비행장에 배치를 받고 내려온 햇병아리 초년병이었다고 한다. 장난 끼 많고, 성숙하기도 했던 영순이는 그 나이에 벌써 연애란 것을 하면서 부모 속을 썩이는 말썽쟁이 소녀였었다. 영순이와 사귀고 싶다면서 찾아온 정호를 보고 외삼촌은 사람이 참 건실해 보여 마음에 들었다 한다. 아들이 도시에 나가 사니 일손이 모자라 쩔쩔매곤 했는데 그때마다 정호가 군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도와주곤 했었단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한 영순이는 부모 몰래 도망을 갔다. 결국에는 마산에서 생활한다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정호에 대한 영순이의 정은 풋정이었는지 정호를 자꾸만 피하게 되었지만 정호는 오로지 영순이만 쳐다보며 외삼촌댁을 드나들었다. 영순이가 싫어하는데도 막무가내로 기다리겠다는데 식구들은 할 말이 없었다.

삼사 년이 흐르도록 영순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정호는 아예 군에서 제대를 하지 않고 하사관으로 말뚝을 박았다. 가끔씩 영순이를 찾아가 만나고 오는 것 같았지만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 같아서 외삼촌은 마음 아파했다. 정호는 부모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유년이 있었기 때문인지 외삼촌과 외숙모를 친 부모처럼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순이가 돌아왔다. 정호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빛났다. 영순이가 정호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이 외삼촌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저 아이가 철이 들었구나. 기뻐했다. 영순이가 사천의 개인 병원에 근무를 하면서 다시 정호랑 오누이처럼 잘 지내자 외삼촌은 조만간 둘을 결혼시켜야지 맘먹고 있는 중인데. 조그마한 읍에 영순이의 연애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뉘 집 딸내미가 사흘들이 여관을 들락거린다는 말이 외숙모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외삼촌은 서둘러 둘을 혼인시키기로 했단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영순이는 예전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고 무척 성숙한 처녀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정호랑 정기적으로 만나면서도 싫다 좋다는 표현도 없고 결혼을 해야지 하면 ‘그래야지예.’ 하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늘 마음은 어딘가를 헤매는 것 같았단다.

“결혼 날이 잡혔다기에 아부지랑 의논 디릴 것도 있고 해서 댕기로 왔었지예. 서울에서 내려오니 영순이가 마중을 나왔데예. 살이 쏙 빠진 것이 어딘가 아픈 아이 같아서 ‘니 오데 아푸나?’하고 물었더니 ‘아니예’하는데 예전의 내 동생이 아닌 거 같았지예. 그래서 ‘니 막상 시집을 갈라 쿵께 걱정이 돼서 그러제?’했더니 ‘오빠, 꼭 시집을 가야 돼?’하고 묻는 기라예. ‘와, 정호가 싫나?’ ‘언지예. 고마 마음이 착잡해예.’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더. 정호는 장개 보내 준다니까 신바람이 나서 야단인데 정작 시집갈 동생이 기쁜 기색이 없으니 뭔가 좀 요상한 기분이드마예. 찝찝해서 아부지한테 이유를 물었지마는 별일이 없다데예. 옴마는 딸아가 막상 한 남자의 아내가 될라 쿠모 잠도 안 오는 기람서 당신이 격은 나머진께 걱정마라 하시데예.”

외삼촌은 줄 담배를 피우며 방바닥에 비스듬히 누우셨다.

“지 딴엔 무슨 말 못 할 고민거리가 있었던 기라. 부모가 돼서 제 딸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니 가슴을 치고 복장거리를 해도 모지랠 판이야. 그날 지 에미가 아침부터 싸가지 없는 년이라꼬 욕을 퍼부어서 출근시킨 기 화근이었는지 모르제.”

“거기 우찌 어머이 잘못입니꺼. 지 팔자소관이지예.”

혼인날을 잡아 놓고, 사천에다 신방을 꾸밀 셋집까지 얻어 놓았지만 영순이는 외숙모를 따라다니며 신접살림을 차릴 물건들을 고르는데도 ‘옴마가 알아서 해 주라모.’하면서 데면데면하게 굴어서 외숙모는 천불이 났다. 영순이는 강 건너 불 보듯이 자신의 일인데도 남의 일처럼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는 아예 따라다니는 것조차 싫다면서 외숙모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 이르렀다. 예단 문제로 급기야 모녀지간에 언성을 높이게 되었다. 싸움이 터졌다.

“예단이 무슨 필요가 있소.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해 놓고서는.”

“아무리 시부모 될 사람이 없다 해도 형님이 있으면 부모 맞잽인 기라. 옷 한 벌 씩 해 준다는데 그것도 하지 마라꼬?”

“예단은 무슨 얼어 죽을 예단이야.”

“다 니를 위해서다. 이것아.”

“치우소 고마. 입은 옷으로 가도 지 복 있으모 잘 사는 기라요.”

외숙모는 기대를 모았던 큰 딸이 제 꿈을 접어버리고 부모가 반대하는 남자를 골라 살림 먼저 차리는 바람에, 막내딸은 남부럽지 않게 해서 좋은 가문에 시집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막내마저 가진 거라고는 불알 두 쪽만 딸랑 찬 고아나 진배없는 정호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할 판에 당사자 초차 달가워하지를 않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거기다가 양가 집안 식구끼리만 모여서 간단하게 식만 올리기로 한 것도 마음에 안 차는 판에 정작 시집갈 당사자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입은 옷에 가겠다니.

“이 싸가지 없는 년아, 연애는 지랄한다고 해 놓고 인자 와서 이라노. 행실을 똑바로 하고 댕기시모 이랄 필요도 없을 끼다. 시집을 내가 가냐? 가만히 있었으면 좋은 자리가 수두룩할 낀데 소문이란 소문은 죄다 나서 넘새스러워 댕길 수가 있나. 시집도 보내기 전에 배나 불러오까 무섭어서 서두는 기제 니가 예뻐서 이라는 줄 아냐.”

“처녀가 아를 낳아도 할 말은 있다더라. 요새 세상에 어때서”

“저 오살할 년 말뽄새 보소. 터진 입이라꼬 말이모 단 줄 아나? 정호가 니 서방 되기에는 오감타.”

“그라모 오빠만 사우 삼아서 살라모. 딸이 없시모 우떻까이.”

“머라카노?”

“옴마가 내 대신 시집가는 것도 아닌데 와 그리 야단이고. 간단하게 식만 올리기로 해 놓고. 다 소양 없싱께 집어치우라모.”

영순이는 휑하니 나가 버렸다.

“저저 칼 빼물고 뒈질 년, 오냐 시집이고 나발이고 니 알아서 가 봐라.”

외숙모는 전주 사람이었다. 전라도 억양에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씨는 어찌 들으면 재미있고 어찌 들으면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았다. 무척 매몰차고 인정 없어 보이는 갈라지는 말소리였다.

그날따라 날씨도 몹시 추웠다. 동지를 지낸 지 며칠이 안 되었을 때였다. 살갗에 닿는 바람만으로도 심장이 얼어붙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날도 영순이는 평상시처럼 시간차를 타고 사천읍까지 출근을 했다. 가끔 정호랑 같이 왔다가 자고 오기도 하고, 병원에서 잔다고 하면서 외박도 했지만 정호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니 집에서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따라 가가 살박을 나감서 자꾸 뒤돌아보는 기 안 잊히느마.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거마. 그 아가 마산에 나가 살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는 분명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지쳐 있는 표정이었지. 그 아 보내고 너거 외숙모가 그 아 땜에 속병 얻어서 골골하다가 저 세상 간 지 오륙 년은 되었을 랑가.”

외삼촌은 한숨을 푹 쉬면서 다시 담배를 물었다.

“야야, 가서 소주 한 병 더 가지고 온나.”

“예.”

성구 동생이 밖으로 나가자 외삼촌은

“그날이 살아있는 그 아를 본 마지막 인기라.”

나는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어찌해서. 왜. 자살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성구 동생이 가져온 술병을 받자마자 외삼촌의 잔에 술을 따르고 나 스스로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단숨에 마셨다. 아무리 세상이 돌고 도는 것이고, 요지경 속이라 하지만 이런 우연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영순이와 나는 서로가 남남으로 만났으니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사촌인 줄 알면서 사랑을 했던 어머니와 나의 아버지는 분명 씻지 못할 죄인일 수 있지만 사촌과 외사촌은 분명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동생을 나 역시 사랑을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동생이 나를 잊지 못해 자살을 했을지라도 내 잘못은 아닐 것이다. 사람 마음이 어찌 이리도 간사한지.

“권섭아. 옛날에 너거 외할매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한테 한 말이 있었다. 우리가 고향에서 이사를 나와서 박 씨 문중이 문을 닫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날 길 가던 스님 한 분을 만났단다. 끝내가 어릴 땐데 어머님이 안고 있으니 그 스님이 가만히 아이의 관상을 보드란다. 사가에 살모 근친결혼을 해야 하고 그것을 비껴갔을 때는 비명횡사할 상이라면서 자신에게 주면 좋은 비구니로 기르겠다고 하는 것을 얼라에게 당치도 않는 말을 한다면서 성을 벌컥 내며 거절했단다. 그렇지만 가마이 봉께 그 시님이 뭘 좀 아는 것 같더란다. 그 시님이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어머니는 이런저런 집안일을 물었단다. 너거 옴마 생년월일을 갈카 줌서 죽었는지 살았는 지나 알고 싶다고 했더니, 걱정 마람서 너거 옴마가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하드란다. 부처님이 돌본 담서.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가드란다. <그 여인은 대나무 밭에 연꽃이 뿌리를 내리는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집안의 업장이 풀리고 발복 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드란다. 그러면서 ‘이 아이를 잘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뒤에라도 마음이 변하면 우리 절로 보내주십시오.’하면서 갔단다. 어머님이 늘 우리 끝내 걱정을 했는데. 고마 그때 시님께 시주했시모 지 팔자는 펴있을지도 모르는데.”

아아, 그 말. 어디선가 들었던 그 말. <대나무 밭에 연꽃이 뿌리를 내리면 집안이 발복 한다.> 어머니가 주문처럼 외웠던 말이었다. 그 자리가 어디란 말인가. 연꽃이 연못에서 자라지 억센 대나무 밭에서 자랄 리는 도저히 없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도대체 그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겁니까?”

나는 화를 벌컥 내면서 외쳤다. 외삼촌도 성구도 놀라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영순이가 죽던 그날, 점심 나절부터 날씨가 푸근하게 풀리는 것 같더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오후 서너 시가 되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진눈깨비가 오다가 저녁나절이 되자 눈송이가 제법 탐스럽게 날리면서 풀 더미 위나 나뭇가지에 쌓이는 것이었다. 그 눈송이를 맞으며 집에 온 사람은 정호 혼자였다. 왜 끝내는 같이 오지 않느냐고 했더니 병원에 가니 벌써 퇴근을 했다 하드란다. 집에 온 줄 알고 부랴부랴 달려오는 길이라면서 안 왔냐고 되물었다.

외숙모는 얼핏 아침에 다툰 생각이 나면서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직 시간차가 댕기니까 오것제.”

“눈이 이렇게 계속 오면 길이 미끄러워서 버스가 왕래를 못하면 어쩌죠?”

정호는 길목에 나서서 막차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어깨가 축 처져 집으로 들어왔다. 어디든 찾아 나서 봐야겠다고 하는 것을 외삼촌이 말렸다. 친구 집에 갔다가 춥고 길이 미끄러우니 못 오는 모양이라고 기다려 보자고 달랬다.

밤새도록 눈이 왔다. 다음 날 아침,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서 햇살을 받고 은빛으로 빛났다.

그러나 그날 밤 끝내 영순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밤새도록 뜬눈으로 새운 정호가 움푹 꺼진 눈으로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연락을 해 보고, 찾아도 갔지만 영순이는 출근도 하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는 말만 들었다. 외삼촌과 정호는 온종일 영순이가 갈만한 친구 집을 수소문하고 찾아봤지만 아무 곳에도 영순이의 흔적은 없었다. 병원에 같이 근무한 아가씨 이야기로는 어제 몸이 아파서 일찍 집에 가야겠다면서 나갔다는 것이다. 서울 오빠네로, 언니네로 알만한 집은 다 연락을 했지만 종무 소식이었다.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봄 날씨처럼 포근하게 날이 풀리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눈이 따뜻한 햇살에 녹으면서 길이 온통 진구렁으로 변해 지저분했다. 그 하얀 눈이 알고 보니 검은 먼지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응달에는 그래도 눈이 하얗게 쌓여 정서가 풍부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주고 있었다.

“계십니까?”

오전 열 시경이었다. 외삼촌은 방안에 있다가 누군가 삽짝에서 주인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 옆방에서 영순이의 혼수 이불을 꾸미고 있던 외숙모는 며느리에게 나가 보라고 손짓을 했다. 행방이 묘연한 딸의 혼수 이불을 꾸미면서 자꾸만 바늘을 잘못 찔러 손가락에 피를 보곤 하는 중이었다. 이 가시나가 어릴 때처럼 또 도망질을 한 것은 아닌가 싶고, 정호가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될 것을 왜 말없이 또 집을 나가 부모 속을 썩이느냐고 탓을 해 보다가도 내가 너무 심하게 닦달을 한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려 오기도 해서 안절부절못하던 참이었다. 어쩐지 꿈도 계속 뒤숭숭하고 불길했다.

“어머니!”

며느리의 새된 소리가 골을 쩌렁 울렸다. 외삼촌도 외숙모도 벌떡 일어나 용수철에 튕기듯 밖으로 튀어 나갔다.

“무슨 일이고?”

“어머니. 이 일을, 이 일을 우째예.”

두 사람의 건장한 남자가 마당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서에서 나온 장형삽니다. 이 사람은 이 형사고. 같이 가서 확인을 해 봐야 할 일이 있습니다.”

외삼촌은 며느리에게 외숙모를 데리고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며느리가 외숙모의 손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사람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그랍니꺼?”

“며느님께 대충 이약을 했십니다. 저 아래 언덕에서 처녀를 발견했는데. 신고한 마을 사람들 말이 이 집 처녀 같다기에 확인해 보라고 왔십니다. 며느님 말로는 댁의 따님이 집에 안 들어온 지 사흘이나 된다더군요. 수고스럽지만 같이 가셔서 확인 좀 해 주시렵니까?”

“가입시더. 그럴 리야 없지만. 우리 딸이 행방이 묘연한 거는 사실입니더.”

그들이 타고 온 경찰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길가에 백차랑 경찰차들이 쭉 늘어서 있고,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자리 주변에는 빨간 줄이 쳐져 있고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둥그스름한 언덕 아래 커다란 해송 한그루가 겨울 빛을 받아 더 푸르렀다.

“저깁니다.”

외삼촌이 다가가니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소나무 아래 사흘 전에 입고 나간 검정 외투 차림의 딸아이가 잠자는 것처럼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핏기라곤 없는 얼굴이 파랗게 얼어 있었다. 두 손을 배 위에 단정하게 맞잡고 있는 것이 금세 깨어날 것처럼 보였다.

“아무데도 상한 흔적이라곤 없었어. 자는 디끼 편안한 얼굴이었어. 입술이 방그레 웃는 것 같았지.”

외삼촌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조용조용히 그때의 전경을 그림을 그리듯이 말하고 있었다.

“자살이란 말입니꺼?”

“몰라. 타살 같기도 하고 자살 같기도 한데 미제 사건으로 처리 했것제.”

“시체 부검도 해 봤는데 약을 복용한 흔적도 없었고, 강간을 당한 흔적도 없었어예.”

성구 동생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차를 탔시모 한 정거장만 더 와서 내리면 바로 집인데 와 거기서 내렸는지 모르 것고, 그 눈도 오고 춥은 날 그 언덕에는 말라꼬 올라갔든지 몰라.”

“경찰서에서는 머라쿠데예?”

“발견하기 사흘 전쯤 밤 아홉 시경에 죽은 것 같다더군. 그 시간에 우리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었제. 정호가 집 앞에서 8시 반에 도착하는 막차까지 기다리다 들어와서 나랑 같이 있었제, 너거 외숙모는 예단으로 보낼 혼수 감을 손질하고 있었고.”

“누가 수사선상에 올랐습니꺼?”

“우리 집 식구들이랑 정호도 수차례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았지만 알리바이가 정확한데 뭔 말이 필요 하것노. 정호 저 아가 어찌나 서럽게 울면서 몸부림을 치든지 따라 죽을까 겁을 냈니라.”

“동생이 그리 되고 나서도 정호는 자기 고향으로 갈 생각을 안 했지예. 자기를 양아들로 받아 도라꼬 통사정을 하면서 이 집에서 같이 살게 해달라고 하는데 어찌나 막무가낸지 아부지도 옴마도 그 정성에 감복을 해서 허락을 했지예.”

“직장에 다니는 것 같지는 않던데.”

“동생 그리 되고 그 충격에 쓰러진 옴마가 근 일 년을 병석에 누워 지냈지예. 정호가 직장까지 관두고 와서 병수발을 하면서 아부지와 밤나무 단지를 가깠습니더.”

“그럼 외숙모님은 그 질로 앓다가 돌아가신 거네?”

근 일 년을 자리보전을 하고 누웠던 외숙모는 정호의 극진한 보살핌 때문인지 병의 차도가 있어 문밖출입도 하고, 텃밭에 나다니며 남새밭도 가꾸고 살림도 했지만 늘 병약했다. 그러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외숙모가 돌아가시고 성구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외삼촌 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우리 끝내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 한 기라. 심중에 맺힌 한이 있었든 기라. 그 아이의 소지품에는 마산에 살 때 있었던 흔적이 아무것도 없었어. 다 없애 삔 기라. 한 번은 댕기로 와서 한다는 말이 동성동본은 왜 혼인할 수 없느냐고 심각하게 물은 적이 있었어. 나는 어머이가 한 말이 생각나서 사귀는 사람이 동성동본이냐고 물었더니 제 친구 중에 그런 아가 있어 물어본다드마. 그 말이 짜안 해. 세월이 약인 갑다. 이런 이약도 술술 하게 되니 말이다.”

외삼촌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내 가슴에 싸한 아픔이 밀려왔다. 영순이는 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신혼의 단꿈에 젖어 살 때에도 그 아이는 나를 그리워했던 것일까. 나 때문에 죽었을까. 타살은 아니었을까. 그럼 누가, 누가 그랬을까.

“참 너거 옴마가 남긴 유품은 뜯어봤나?”

“예.”

“무슨 말이 없더나?”

“어머니는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라십니더. 제 앞으로 된 땅문서가 있디예. 큰 집과 그 앞의 논이었습니더. 잿골 할매 큰 아들을 앞세웠다는 논임자가 바로 어머니였습니더. 그래서 외삼촌이랑 의논해 볼라꼬 왔십니더. 제가 그 집에 들어가는 기 옳은지, 어떨지, 결정을 할 수 없습니더.”

“가야제. 한 살이라도 젊어서 고향에 돌아가 뿌리를 내리는 기 옳은 일이 아니 것나. 영덕이 고놈이 종손 노릇을 제대로 할랑가. 맺힌 고는 맺힌 곳에서 풀어야 하는 기 사는 이치니라.”

“외삼촌도 새 장개 가이소.”

“데끼. 이 나에 무슨 욕을 묵을라꼬. 나는 이미 묏자리까정 봐 논 몸이고 좋은 처니 있으모 우리 정호 중매 좀 서라. 저 놈이 더 늙기 전에 장개를 보내야 할 낀데.”

나는 <고향 아구찜> 아주머니를 떠 올리고 있었다. 늙을수록 서로 의지할 이성의 벗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외로운 사람들끼리 정 붙이고 살게 하는 것도 정이다 싶었다. 인사를 한 적도 없는 외숙모보다 그 보촌댁 아주머니가 더 인정스럽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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