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처음>
<단편 소설>
미륵불 위로 꽃잎이 화르르
박래여
느티나무 잎이 적갈색을 띄었다. 바람이 휙 지나치며 나뭇가지를 툭 친다. 잎은 앙탈하듯 팔랑거린다. 잎사귀 몇 개는 나뭇가지를 놓아버린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잎은 자유롭다. 하늘하늘 몸을 흔들며 땅으로 내려앉는다. 바람은 더 세게 가지를 흔든다. 심술궂은 바람의 장난을 느티나무는 느긋이 즐긴다. 제 몸의 무게를 비워내며 기꺼워하는 것 같다. 나뭇잎 하나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노파의 곁을 스쳐간다.
“저것이 을매나 갈 수 있을라고. 제풀에 주저앉을 주제에 꿈도 야무지지.”
느티나무를 빙 둘러싼 나무받침 대에 앉아 나뭇잎을 보던 노파가 중얼거렸다. 아흔은 됨직한 노파다. 노파의 옆에 노파를 꼭 닮은 낡은 유모차가 놓여있다. 느티나무 뒤쪽은 큰 저수지가 있고, 앞쪽은 넓은 도로다. 도로에는 차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노파는 초점 없는 눈으로 저수지의 물빛을 바라본다. 바람이 일 때마다 자잘하게 굽이치는 물결 위에 몇 개의 나뭇잎이 내려앉는다. 노파는 나뭇잎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흔들흔들 물결 따라 가는 나뭇잎의 모양새가 누군가를 닮았다. 희뿌연 새벽 빛 속에 삽짝을 나서던 준수한 청년의 뒷모습이다.
“이러구러 한 세상 갈 것인디. 한 생애 잘 살았디요?”
노파는 물결에 주었던 눈을 거두어 거리를 본다. 쉴 새 없이 차량이 오간다. 긴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끼익 위험한 멈춤도 있었지만 노파는 그 경적조차 무심하다.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본다. 누군가 그 먼 곳에 서 있는 것처럼. 그때 동네 쪽에서 트럭 한 대가 나오더니 느티나무 아래 멈춘다. 운전석에서 청년이 창문을 내리고 소리친다.
“할매, 추운데 만다꼬 나와 있소? 집에 있으라 캉께.”
“올 때가 다 됐제? 하관이 몇 시라 카데?”
“사시라 카데 예. 동네는 몬 들리고 바로 하 씨네 선산으로 간다요.”
“너거 아부지는 끝내 안 간다 카더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갈 필요 없다 카데 예.”
“그 고집도 닮았는가.”
“머라쿠요?”
“아이다. 니라도 댕겨 오이라. 할배한테 큰 절 올리고 오거래이.”
“알았싱께 할매는 퍼뜩 집에 들어 가이소. 날씨도 찹거마. 감기 들모 우짤라꼬 그라요? 수 십 년 전에 동네 떠난 사람이 죽어 온다는데. 할매가 와 저라는지 참말로 모르겠네.”
노파는 청년의 구시렁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지 고개만 끄덕이며 어서 가 보라고 손짓한다. 청년은 창문을 올리고 우회전을 해서 큰 길을 건너 앞 산 골짝으로 사라진다. 노파는 유모차를 앞으로 끌어 내 손잡이를 꼭 잡고 고개를 숙였다. 멀리서 아득한 노랫가락이 들린다.
‘꽃 사세요. 꽃을 사세요. 꽃을 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무명천에 검은 물을 들인 몽땅 치마에 종아리를 내 놓고 역시 무명천으로 만든 저고리를 입은 예닐곱 살 여자애가 폴짝폴짝 뛰어 간다. 손에는 쑥부쟁이와 산국을 한 주먹 꺾어 들었다. 꽃을 닮은 여자애가 생긋 웃는다. 여자애의 볼에 보조개가 깊다. 빨갛게 익은 앵두 같은 입술을 가졌다. 도톰한 그 입술을 훔치고 싶다. 노파는 눈을 번쩍 떴다. 다릿골 쪽으로 춤을 추며 가는 여자애를 잡으려는 듯 한쪽 손을 휘휘 저었다.
“아가, 오데 가노? 같이 가자. 아가, 아가, 니 내 좀 보자.”
여자애는 생긋 웃으며 돌아봤다. 노파는 벌떡 일어나 유모차를 밀고 여자애가 뛰어가는 다릿골을 향해 비틀거리며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저 혼자 신났다.
“아이고 옴마야!”
노파는 엉덩방아를 찧고 유모차는 노파의 기운 없는 손을 떨치고 저 혼자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려간다. 노파는 길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어버렸다.
“아이고 저걸 우야노. 잡아야 할 낀데 저거 없시모 내사마 한 발짝도 몬 가는데. 못에 빠지모 건지다 몬 할 낀데. 야야, 니 거게 좀 서거라. 야야, 아가, 저 유모차 좀 잡아 도고.”
노파는 다릿골로 뛰어가는 여자애를 불렀다. 여자애는 노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냥 노래를 흥얼거리며 멀어져 갔다. 다행히 유모차는 저수지 가에 설치된 가드레일에 걸려 멈췄다. 노파는 땅을 짚고 일어났다. 구십 도로 꺾인 허리가 숨 가쁘다. 노파는 숨을 헐떡거리며 잰걸음 친다. 겨우 유모차를 잡았다. 그 사이 여자애는 사라지고 없다.
“닮았는데. 닮았는데. 누굴 닮았더라.”
노파는 중얼거리며 느티나무를 바라봤다. 다시 느티나무 곁으로 올라갈 엄두가 안 났다. 느티나무와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 길을 돌아보며 노파는 천천히 돌아섰다. 다릿골을 향해 유모차를 밀고 간다. 노파의 굽은 허리가 금세 땅바닥에 주저앉을 것처럼 휘청댄다. 노파는 ‘고향에 돌아오니 좋소? 쪼맨만 일찍 와서 내 손이라도 잡아주고 가지.’ 중얼거리며 미륵골 쪽으로 접어든다.
미륵골에는 도화라는 아이가 살았다.
도화는 동네 노인들로부터 인물 값 할 것이라는 소리를 톡톡히 듣는다. 박복한 여자의 첫째 조건이 미인이라 하던가. 비록 기름기는 없지만 박속같이 하얀 피부에 갸름한 얼굴, 짙은 눈썹, 물기 어린 촉촉한 눈, 벌써 엉덩이 쪽이 볼록해지는 여섯 살짜리 여자애,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빨간 댕기를 단 아이, 겨우 여섯 살인데도 남의 눈을 현혹하는 미모를 가진 아이, 그 아이가 온다.
여자애는 무명 저고리에 종아리 위에 쑥 올라간 검은 치마를 입고 있다. 치마 밑으로 가늘지만 쭉 뻗은 하얀 종아리가 눈부시다. 발목을 덮은 흰 버선에 흰색 코고무신을 신었다. 손에는 들꽃을 꺾어 한주먹 쥐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다릿골 쪽으로 팔랑팔랑 뛰어간다.
동네 골목에서 중년 남자가 걸어 나오다 여자애를 발견하고 달려와 덥석 안는다. 여자애는 까르르 웃는다. 남자는 여자애를 안고 빙빙 돌며 여자애의 볼에 자신의 볼을 대 비빈다. 여자애는 들꽃을 흔들며 까르르 웃는다. 남자의 얼굴에 들꽃을 대고 흔들다가 또 까르르 숨이 넘어간다. 남자는 자꾸만 ‘아이고 요 이뿐 것, 요 이뿐 것’하면서 여자애의 가슴이랑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비빈다.
“아재, 따거. 수염도 안 깎았네. 울 할매 보모 나 뚜디리 맞는단 말이야. 이거 놔.”
여자애가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린다. 치마가 말려 올라가고 속곳이 벌어진다. 남자는 여자애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꽉 잡고 속곳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여자애는 두 다리를 쭉 펴려고 해도 힘이 달린다. 남자는 여자애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양쪽 허리에 척 걸치고 여자애의 고추를 만지작거린다. 여자애는 앙탈을 하다가 그만 으앙 울어버린다. 그제야 남자는 슬그머니 여자애를 길바닥에 내려놓는다.
“아재, 나뻐, 아푸단 말이야.”
“아이고 미안, 우리 도화가 하도 예뻐서 안아 준 기라.”
“울 할매한테 일러 주끼라.”
“그럼 요거 안 준다. 요거, 안 물래?”
남자는 마고자 주머니에서 도톰하게 접은 종이를 꺼낸다. 도화는 군침을 삼킨다. 남자가 그것을 손바닥에 놓고 종이를 편다. 동글동글한 박하사탕이 있다. 여자애가 손을 쏙 내밀자 남자는 사탕을 몽땅 준다. 여자애가 눈을 살짝 내려감으며 배시시 웃는다. 타고난 눈웃음에 남자는 ‘요 이뿐 거. 인자 됐제?’하면서 여자애를 다시 안는다. 여자애는 다소곳하다. 여자애는 사탕 하나를 입에 넣어 빤다. 입안이 환해진다. 남자의 손이 다시 사타구니로 들어오지만 가만히 있다. 남자가 여자애의 고추를 만지작만지작 하다가 아래위로 쓸어내리고 토닥토닥 때려주기도 하는데 사탕이 다 녹아간다. 여자애의 볼이 빨갛게 익는다. 어쩐지 기분이 좋다. 아재가 거기를 만져주면 숨이 차고 얼굴이 발개진다. 여자애는 아마도 박하사탕이 너무 달콤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으흠, 으흠, 아이고 이것을 우짜모 좋노. 또옥 니가 예뻐죽것다. 도화야, 도화야!”
남자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여자애의 볼에 입을 쪽쪽 맞춘다. 여자애는 남자의 까칠한 털이 볼에 닿는 것이 싫다. 여자애는 ‘아재, 따거’하면서 다리를 쭉 뺐다. 남자가 털썩 여자애를 길에 내려준다. 여자애는 구겨진 치마를 톡톡 털어 편다. 거기가 뻐근하다. 남자는 키를 낮추어 여자애를 다시 안아준다. 여자애의 궁둥이를 쓰다듬어주며 귀에 대고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할매한테 올 저녁에 내가 간다 캐라.”
여자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박하사탕을 손에 꼭 쥐고 골목 안으로 뛰어 간다. 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날아간다. 남자는 여자애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다. 산기슭에서 복사꽃이 화르르 화르르 쏟아진다. 남자가 여자애를 바라보듯 골목 안 어떤 울타리 너머에서 새까만 눈빛 하나가 남자를 째려보다 여자애의 뒤를 쫓는 줄 누가 알겠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