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두번째>
“할매 할매! 사탕 무 봐. 맛나다.”
도화는 오두막의 사립문을 힘차게 밀고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그 집은 다릿골 동네에서 가장 후미지고 동네 뒤의 골짝에 있는 오두막이었다. 집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집 뒤로는 대나무 밭이 무성했다. 오두막의 사립문 기둥에 묶은 긴 간짓대 끝에 오색 띠가 팔랑거렸다. 오두막은 작은 방 두 칸에 부엌이었지만 방 하나는 신당으로 꾸며져 있다. 그 오두막의 가장 빛나는 곳은 부엌문 옆에 만들어진 장독간이다. 나지막한 작은 돌담이 둘러쳐진 장독간은 정갈하다. 크고 작은 항아리가 놓인 장독대는 반질반질 윤이 난다. 장독간 앞에는 크고 넓적한 돌을 우묵하게 파내 만든 물받이가 놓였고, 그 물받이로 골짝의 물을 끌어댔다. 커다란 대나무를 잘라 속을 파내 골짝에서 내려오는 물을 집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큰 돌확 앞에는 반듯반듯한 청석이 놓여 설거지나 허드렛일을 하기 좋도록 만들어졌다.
청동 세숫대야에서 걸레를 빨던 할머니가 도화를 봤다. 할머니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다. 할머니는 샘가에서 일어서자마자 머리에 썼던 무명 수건을 벗었다. 대나무 비녀를 꽂은 쪽 진 희끗한 머리카락 묶음이 뒷목 언저리에 탁 붙어 있다. 할머니는 천천히 무명치마를 뒤집어 젖은 손을 닦았다. 적삼 아래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아직도 할머니라고 하기엔 참 고운 모습이다. 쉰 중반이나 됐을까.
“그 사탕 누가 주더노?”
“수봉이 아재가......”
“수봉이 아재 만냈나?”
“응. 저기 질에서”
“예뿌담서 니를 또 안아 주더나?”
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탕 가지고 일로 온나.”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어렸다. 도화는 할머니가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항상 인자하기만 하던 할머니가 수봉이 아재 이야기만 하면 화를 낸다. 왜 화를 내는지. 도화는 사탕을 할머니 앞에 내밀었다. 할머니는 사탕을 받지 않았다. 도화를 빤히 바라본다. 여전히 싸늘하고 엄한 눈빛이다.
“그것을 갖다가 뒷간에 던져 넣어라.”
“할매, 이거 맛나다.”
“똥 묻은 거라 더럽다. 퍼떡 갖다 버리고 와서 세수하고 미륵불님 앞에 가 무릎 꿇고 앉았어라. 안 그라모 미륵님이 노한다. 내가 몇 분이나 말해야 하노. 수봉이 아재든 누든 안아 줄라카모 싫다카라 캤제?”
도화는 할머니가 야속하다. 입안을 환하게 해 주는 박하사탕, 미륵불 앞에 놓인 팥 시루떡보다 더 맛있는 박하사탕을 주는 수봉이 아재, 수봉이 아재 품에 안기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은데. 도화는 입을 꾹 다물고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도화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입에 넣기만 하면 사르르 녹아내리는 달콤한 박하사탕은 똥통에 빠졌다. 도화는 세수를 하고 신당에 들어가 얌전히 앉았다. 이번에는 회초리를 몇 대나 맞아야 할까. 지난번에는 상철이네 할아버지 무릎에 앉았다고 열 대를 맞고 벌을 섰다. 새벽마다 찬물을 떠다 미륵불님 몸 씻기는 작업을 하며 천수경을 백번 외웠다.
도화는 할머니의 처분만 기다리며 빙그레 웃고 계신 미륵불을 바라봤다.
할머니가 신당에 들어오셨다.
“오늘은 미륵님이 니가 백팔 배를 하모 용서하겠단다.”
“미륵님 고맙십니더. 참 할매, 수봉이 아재가 할매한테 이 말을 전하라 카던데.”
“뭔 말?”
“할매한테 내가 간다 캐라.”
도화는 할머니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열심히 절을 하기 시작했다. 도화는 신심을 다해 미륵님께 잘못을 빌었다. 할머니께도 말할 수 없는 비밀, 수봉이 아재가 거기를 만지작만지작하면 이상하게 숨결이 가빠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또 만져 주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는 것을. 수봉이 아재만 보면 안기고 싶다는 것을. 수봉이 아재가 다녀간 날은 할머니의 얼굴에도 복사꽃이 핀다는 것을 도화는 알고 있다. 깊은 밤, 잠든 도화를 신당에 옮겨 놓은 할머니는 수봉이 아재랑 사랑놀이를 한다는 것을 도화는 본능적으로 알아챘지만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비밀이란 것도 알았다.
“저것이 인물값은 톡톡히 할 끼라. 저것한테는 도화 살이 끼었다네. 어린기 벌써부터 눈웃음 살살 치는 거 보소. 꼬리 아홉 달린 백 여시가 달리 백 여시 간디. 저거 할미가 무당이잖나. 저거 이름을 도화라 지은 이유도 불이 났을 때는 맞불을 피워야 불을 잡는다고 하자네. 도화살 타고 난 팔자를 고칠 수는 없으니 맞불이라도 질러보자는 뜻이라네. 저거 어매도 바람나서 나갔다 아이가. 행인물이 아니었제. 저거 할매도 행인물이 아니제. 과수댁이지만 신들린 여자라 남정네들이 부정탈까봐 멀리해서 그렇제. 어매 닮았는지. 할매 닮았는지. 참말로 가시나가 벌써부터 싹수가 다르다마다요.”
동네 늙으나 젊으나 여자들이 모여앉아 놀다가 도화가 지나가면 저희들끼리 찧고 까부는 소리였다. 도마 위에 올라앉은 생선은 아무리 회를 쳐도 아프단 말 못한다. 도화는 죽지 않았기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칼질을 기억한다. 그때마다 도화는 할머니의 말을 기억한다.
“인물 값 한다는 말 듣지 않도록 조신하게 굴어야 한다. 니가 행동거지 잘못하면 미륵님의 노여움을 탄다. 그때는 이 할미도 니 옆에 못 산다. 너거 아베 따라 간다는 거 명심해라.”
자나 깨나 할머니의 애원에 가까운 협박 말이었다. 아니, 염불이었다. 예쁜 여자가 왜 박복한지. 말귀 트이면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소리였다. 동네 할아버지, 뒷집 아저씨, 오빠들까지 도화만 보면 예쁘다, 예쁘다. 안아 줄게. 사탕 사 줄게 업어줄게. 우리 뽀뽀 할까? 우리 놀러갈까? 엄마아빠 놀이 할까? 박하 분 사줄게. 댕기 사 줄게. 네가 원하는 것 다 해 줄게, 한 번만 만나 줘. 너를 못 보면 죽을 것 같아. 상사병 걸린 남자들, 그때는 몰랐다.
“니 누가 오데 가자 캐도 절대로 따라 가모 안 된다. 여자는 조신해야 서방 복도 있고, 자식 복도 있는 기다. 주야장창 미륵불님을 신주 단지 모시듯 모시고 살아야 할 팔자다. 여자는 우짜든지 일부종사해야 된다. 몸단속 잘 해야 하니라. 남자들은 모다 짐승이다. 짐승. 알것제?”
귀에 대못이 박히도록 듣는 이야기다.
도화는 신당에 들어갔다. 고사리 손을 합장하고 삼배를 드린 후 미륵불 앞에 굻어 앉았다. 미륵불님이 빙그레 웃고 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아버지 얼굴 같다. 어찌 보면 수봉이 아재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상철이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도화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무당이었다. 안방 아랫목에 미륵불을 모셨다. 미륵불은 할머니를 닮았다. 눈도 코도 윤곽조차 불분명한 돌부처였지만 할머니는 새벽마다 그 돌부처의 몸을 씻기고 절을 했다. 미륵불 앞에는 쌀을 담은 밥그릇과 물을 담은 국그릇이 놓였다. 쌀그릇에는 항상 초가 꽂혀 있었다. 손님이 오면 그 초에 불을 켰다. 촛농은 쌀에 떨어져 딱딱한 연꽃 모양을 만들었다.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신기가 있었다. 실성한 처녀로 소문이 났었다. 할머니는 인물이 고왔다. 갓 피어나는 매화처럼 예뻤다. 이웃 동네 가난뱅이에다 늙다리 총각이 할머니를 탐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무척이나 아꼈다. 그 덕일까. 할머니에게 붙었다던 귀신이 사라졌다. 횡설수설하던 할머니는 음전한 여자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한 지 십 수 년이 지나도 할머니에게는 태기가 없었다. 할머니는 주야장창 아이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부부는 부처님께 빌고, 천지신령님께 빌었다. 어느 날 꿈에 미륵불이 나타나서 자신이 미륵골 너럭바위 틈에 처박혀 있으니 찾아다 모시라고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다음 날 너럭바위를 찾아 미륵골을 헤맸고 꿈에 가르쳐 준 곳에서 미륵불을 찾아냈다. 앉아있는 돌부처였다. 대여섯 살 아이만한 크기였다. 미륵불을 모시자 신통방통하게 태기가 있었고 할머니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약간 모자라는 칠삭둥이였다.
할아버지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득남 턱 쏜다고 친구들과 오일장에 나갔다가 그 길로 비명횡사 했다.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저수지 입구의 개골창에 빠져 죽었다.
할머니는 아들을 얻고 남편을 잃었다. 남편을 잃고 혼절했다 깨어난 할머니에게 신기가 돌아왔다. 내림굿도 안 받고 무녀가 됐다. 입에서 술술 나오는 말이 어찌나 잘 맞는지 명도로 소문났다. 어느 집에 언제 초상이 날 것이라고 예고하면 희한하게 초상이 났다. 누가 다친 다거나. 아기가 생긴다거나, 길흉화복을 풀어내는 할머니의 소문은 인근 고을에 쫙 퍼졌다. 미륵불의 영험이라 했다. 할머니는 복채 욕심이 없었다. 손님이 주는 대로 복채를 받았다. 엽전도 받았지만 닭도 받고, 돼지 새끼도 받고, 삼베나 모시 같은 베도 받고, 곡식도 받았다. 동네 궂은일이나 좋은 일에 자주 불려 다녔다.
아들은 할머니의 금지옥엽이었다. 지능은 모자라도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아들도 청년이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할머니께 뜬금없이 소리쳤다.
“옴마, 나 장개 갈래. 연이한테 장개 보내 줘.”
열아홉 살이 된 아들이 저자거리 주막집에서 여자를 봤다. 작부로 팔려온 열다섯 살 난 연이라는 처녀였다. 아무리 칠푼이 아들이지만 작부라니 안 될 일이었다. 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히자 아들은 목을 맸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주막집 주인을 찾아갔다. 연이를 봤다. 참했다. 할머니는 처녀의 몸값을 치르고 연이를 며느리로 삼았다. 연이는 착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딸을 팔았다고 했다. 연이는 아들과 금술이 좋았다. 할머니는 미륵님이 아들의 배필을 점지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손녀가 태어났다. 도화였다. 도화가 자박자박 걸어 다닐 즈음 역병이 돌았다. 동네마다 시체가 즐비하게 쌓였다. 아들도 그 역병에 걸려 저승길을 갔다. 할머니는 자신의 팔자가 대물림 되는 것을 봤다.
춘삼월 꽃그늘이 사방에 드리우는 날 할머니는 연이를 불러 앉혔다.
“저 아이는 내가 키우꾸마. 니는 보따리 싸서 떠나거라. 젊으나 젊은 기 이 촌구석에 백히서 수절하라는 말은 못한다. 아무리 니가 조신하게 굴어도 청상과부 넘보지 않을 남정네 없다. 나중에는 동네 물 어지럽힌다고 조리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그라이 떠나거라.”
“어무이요. 도화를 두고는 못 갑니더.”
“니 사주에도 도화 살이 끼었더라. 도화살 낀 팔자는 일부종사 못한다. 니 딸년도 그렇다. 그라이 도화는 내가 키우꾸마. 니는 훨훨 날아다니다가 우리 아들처럼 참한 사내 있거들랑 집에 들어앉아도 될 기다. 니 팔자가 그러하니 뭇 사내가 쫓을 끼다만 그것도 다 니 하기 나름이다.”
그렇게 며느리를 내쳤다.
할머니는 도화를 신의 딸이라 했다. 윤회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삼천 겁을 돌고 도는 것이 업의 고리라 했다. 할머니는 아들의 대에서 윤회의 고리를 끊어줘야 할 것 같았다. 미륵불에 의지하고 빌었다. 타고 난 사주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의지에 의해 완화시킬 수는 있다고 믿었다. 할머니는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누구든지 억지로 도화를 취하면 신벌을 받아 집안이 풍비박산 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