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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실에 깃든 혼백

<단편소설. 2>

by 박래여

2.


사람들이 성거린다. 아이를 놓쳐버린 나는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 집을 찾아 들어선다. 작은 골목 양쪽으로 돌담이 아기자기하다.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두른 텃밭도 있다. 텃밭에는 김장 무와 배추 모종이 파릇하게 자라고 있다. 인기척을 따라 텃밭을 지났다. 돌담을 돌아 들어가자 사 칸 집의 본채와 사랑채가 보인다. 그 마당 가운데 근수가 서 있다. 강 근수는 중고등학교 국어선생 퇴직자답게 말발이 세다. 나와 동갑내기 친구다. 이번 문학기행의 인솔자이기도 하다.

나는 한창 열변을 토하는 마당으로 들어서기가 민망해서 돌담에 비스듬히 누운 삽짝 앞의 우물곁에 섰다. 무너진 담장 너머에서 먹감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나무그늘에 몸을 숨기다시피 하고 집안을 살펴보았다. 이십여 명의 작가회 회원들은 본채 대청마루에 일렬로 걸터앉거나 마루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거나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거나 자유자재로 앉아 근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이극로 박사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계십니까? 국어학자, 혹은 한글학자로만 알고 있지 않나요? 월북했다고 해서 그분의 업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요. 그는 위대한 독립투사요. 우리말에 대한 애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말모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모르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을 말모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주시경,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 등이 편찬에 착수했다고 알고 있으나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빠져 있습니다. 바로 이극로 박사죠. 이극로 박사는 우리가 지금 쓰는 사전 편찬 작업에 따른 한글맞춤법 통일안,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작성에 핵심 인물이었던 것이죠. 우리 의령에서 배출된 걸쭉한 인물을 우리는 왜 도외시했을까요? 그가 북쪽으로 간 탓입니다. 이 집이 바로 이극로 박사가 태어난 집입니다.”

나는 근수의 장광설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 집의 생김새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저 집을 일자 삼간집? 아니야 사 칸 집이야. 정지까지 네 칸인데. 옛날 집 치고는 큰데. 오두막도 아니네. 가난했다더마. 기둥이 옛날 기둥인데. 그땐 동네에서 제법 잘 사는 집이었을 것 같네. 슬레이트지붕보다 초가집이었을 때가 예뻤겠다. 오두막을 헐고 생가 복원을 한 건가. 관리가 잘 돼 있네. 한글학자 이극로가 의령 사람이었다니. 등잔 밑이 어두웠네. 저 작은 집에서도 대가족이 우글거렸겠지. 옛날에는 다들 못 먹고살았는데도 애들은 어떻게 그리 많이 만들었는지. 이 집주인어른은 몇 남매를 뒀을까. 씨족 마을일 텐데. 좌익 아들 둔 덕에 오랫동안 연좌제에 걸려 고생했겠네. 친인척 간에도 원수지간이 따로 없었을 거야. 저 축담 닳은 것 봐. 모서리가 닳아서 완전히 기름칠을 한 것 같네.

축담 중앙에 놓인 댓돌이 반질반질 윤이 났다. 댓돌은 처음에는 네모반듯한 청돌이었겠지만 오랜 세월 닳고 닳아 모서리 없는 타원형이 되어 있었다. 그 집 축담은 마당에서 높았다. 축담과 축담사이를 낮추어 사람이 다니게끔 두 개의 돌계단이 놓여있었다. 옛날 집들의 특징 중 하나 아닐까. 고대광실도 그렇고, 민초들이 사는 오두막도 마당과 축담, 마루가 층이 져 있었다. 습기 예방과 관계있지 않을까.

“여러분은 글쟁이입니다. 우리말의 소중함을 아는 분들이지요. 또한 사라져 가는 귀한 토속어나 방언을 살리고 싶은 의지를 가진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말모이처럼 예쁜 말말입니다. 사실 그는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입니다.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 가르기 식의 좌우익 노선에서 그를 좌익분자, 즉 빨갱이로 몰았지만 그는 민족주의자이자 조국을 사랑한 독립투사이며 모험가입니다. 고려공산당 당수였던 이동휘와의 여정을 그린 <수륙 20만 리 주유기>를 찾아 읽어보시기 권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쭉 늘어앉은 대청마루 왼쪽 벽 옆에서 얼굴 하나가 쏙 나왔다. 그 아이였다. 고마리 풀꽃을 베던 아이, 그 아이는 대청에 앉은 사람들 뒤통수를 일별 하더니 아래채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던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다시 몸짓언어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턱을 치켜들기도 하고, 눈을 깜빡거리기도 하고, 빙긋 미소를 짓기도 하면서 아이에게 내 말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얘, 거기 숨어 있지 말로 일로 와서 나랑 이야기해.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싫다는 뜻이다. 벌거벗었던 웃통에 삼베저고리와 청색 조끼 차림이다. 길게 땋은 머리카락이 어깨에서 가슴 쪽으로 늘어져 있다. 허리 아래는 마루에 걸려 보이지 않았지만 십중팔구 삼베쇠코잠뱅이 차림일 것이 틀림없다. 짚신일까. 흰 고무신일까. 요즘 농촌 사람들은 검은 남자 고무신, 흰 남자고무신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겨 신는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청학동에서 한문공부하다 잠깐 집에 온 아이인가. 21세기를 사는 요즘 젊은 학부모들은 누구나 제 아이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남보다 다른 특별난 아이로 키우려고 한다는데. 속내를 살펴보면 돈 자랑이요. 허영 끼가 다분하다. 남 따라 장에 가다간 똥통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그때 마루에 걸터앉아 근수의 이야기를 듣던 최 여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자기 옆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문간을 벗어나 근수 뒤로 돌아 최 여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최 여사가 목적이 아니라 그 아이를 만나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다. 마루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자 근수도 돌아본다. 미안해서 일행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와 그리 굼뜨누? 분위기 깨진다.”

근수가 웃으며 농을 건넨다.

“계속해 다 듣고 있으니까.”

근수는 다시 회원들 앞으로 돌아서고 나는 마당가를 빙 돌아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아이가 없다. 최 여사만 반갑게 손을 잡는다. 나는 담벼락 뒤편을 살폈지만 아이는 어디에도 없다. 최 여사 옆에 앉으며 두리번거렸지만 아이는 흔적도 없다. 최 여사가 뭘 그렇게 찾느냐는 듯이 나를 본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근수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린다.

“이극로 선생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무슨 일에나 먼저 예산을 세우고 시작한 일이 없다. 다만 먼저 뜻을 세울 뿐이다. 그러니 나의 생활은 언제나 모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언어문제가 곧 민족문제의 중심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덕분에 한글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 표준어 사정이 통일되고 조선어 대사전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때였다. 농담 잘하고 짓궂기로 소문난 소설가 선생이 ‘잠깐만’하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모든 눈이 대청 가운데기둥 옆에 앉은 선생에게 쏠렸다. 선생은 우리 일행 중에서 가장 연장자다. 활달하고 말발도 세다. 곱사춤도 잘 추고, 음담패설도 잘해 좌중을 잘 웃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갈색 개량한복을 입은 선생은 반백의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었다. 어디로 보나 예술가 티가 나는 선생이다.

“점심시간이 다 됐는데. 공부는 밥 먹고 합시다. 사설이 너무 길면 밥맛 떨어져요. 강 선생 그만하고 자리 좀 옮깁시다. 의령 하면 의병장 곽재우, 삼성 이병철, 백산 안희제 선생도 있으니까. 차차 공부합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럽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사람들이 일어섰다. 몇몇 사람은 이극로 선생의 생가 구석구석을 다시 둘러보고 삽짝을 나섰다. 나도 일행과 함께 나섰으나 내 눈은 줄곧 아이를 찾고 있었다. 그 아이는 이 동네 사는 아이일까. 아까 다리 밑에서 만났을 때 말을 걸어보는 건데. 아쉽다.

강 근수가 앞장섰다. 근수의 인솔로 우리 일행이 이극로 선생의 생가를 나와 들길을 걸어 관광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관광차가 막 출발하려는 찰나였다. 이극로 선생의 생가 앞 들판에 그 아이가 있었다. 잎이 누르스름하게 변한 밭에서 순을 걷어내기도 하고, 포실한 황토가 드러난 밭두둑에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강 선생, 저기 수확하고 있는 것이 뭐지?”

“아, 저거? 감자야. 여긴 감자를 많이 심어. 벌써 감자 수확 철인가 보네.”

“저 아이는 뉘 집 아이지? 저기 머리를 길게 땋아 늘어뜨린 애 말이야.”

“어떤 아이? 애는 없는데. 할매들만 앉아 있거마.”

“저 아이 말이야.”

아이는 관광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를 태운 관광차는 이극로 생가가 있는 지정면 두곡리를 벗어나 지정면으로 향했다. 면소재지에 있는 해물탕 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제야 겨우 회원들 간의 수인사가 오갔다. 거기서도 소설가 선생의 너스레는 좌중을 웃겼다.

“그동안 잘 지냈소? 다들 안 본 사이 더 젊어졌네. 신수가 훤해졌어. 시인은 시를 짓고, 소설가는 소설을 지어야 살맛이 나는 세상인데. 그랬다가는 밥 빌어먹기 딱 좋으니 다들 글쟁이 사표 내고 직업전선에 골인해서 돈 맛을 안 거요? 특히 찻집 냈다고 소문난 최 여사 십 년은 젊어 보이네. 나도 돈 좀 벌어봅시다. 소설나부랭이 써봤자 입에서 군내만 나는데. 거기 주방장 취직 좀 합시다.”

“노인네 모셨다가 일치면 어쩌려고요. 사절입니다.”

최 여사의 한 마디에 좌중은 폭소를 터뜨렸다.

“자, 그럼 오후 일정을 잡아 보겠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있습니다. 그 옆에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임란 전승 보덕비각이 있고, 건너편 함안 땅에는 조간송 선생의 합강정이 있습니다. 아니면 바로 유곡면 세간리로 가서 현고수와 곽재우 장군 생가를 들리든가 좀 더 가서 백산 안희제 생가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강바람 좀 쐽시다. 두물머리가 어찌 생겼는지 궁금해요.”

최 여사가 말했다.

“금강산이 나오더니 보덕각시라. 좋소. 그 예쁜 관음보살의 현신 보덕각시 좋지.”

소설가선생이 말하자

“샘, 보덕비각을 보덕각시로 착각하지 마세요. 엉큼하기는. 각시 보는 눈도 없으셔. 보덕각시가 옆에 있는데도”

“아이쿠, 최 여사가 관세음보살이야? 법화경을 달달 외운 마랑이가 그럼 난데. 에이 최 여사는. 보덕각시 백골이야 백골. 인생이 무상하여 이 몸은 그만 입에 풀칠하고 물러나겠소이다.”

“할배요. 착각 마이소. 나는 마랑청년을 찾습니다요.”

“옳다구나. 최 여사, 오늘만큼은 내가 마랑이 되어 드리리라.”

최 여사와 소설가 선생의 너나들이 입씨름에 웃음꽃은 끊임없이 피어났다.

“그럼 일단 두물머리를 보고 현고수와 곽재우장군의 생가를 가든가. 백산안희제 생가를 먼저 가든가. 결정하기로 하고 출발합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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