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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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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27. 2024

매화는 터지고 상사화 잎은 솟고

매화는 터지고 상사화 잎은 솟고    


 

 내가 태어난 자리를 고향이라 한다. 부모형제랑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은 늘 그리움이 고인 곳이다. 그리움, 나잇살 따라 고향의 의미는 어떻게 변하는가. 더 절실하고 더 애틋하지 않을까. 남자와 달리 여자는 돌아가기에 먼 자리지만 마음 한 자락 닿아있는 곳이 고향이다. 어릴 적 친구들이 생각나는 것도 나이 듦을 의식하기 때문이리라. 


 지팡이를 짚고 도로변에 서 있던 노인이 자주 떠오른다. 엄마였다. 내 삶에 지쳐 허덕일 때면 엄마 생각이 간절했었다. 엄마를 만나러 갔던 날, 신작로에 나와 서 있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외로웠으리라. 이웃집 아이들 건사하고, 농사일 도와주면서도 타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 보고 싶어서 날마다 길거리에 나와 서성였으리라. 


 짐승은 새끼를 낳아 키우다 젖떼기를 하면 냉정하게 정을 끊어버리지만 사람은 평생 자식을 품에서 떼어내기 어렵다. 피붙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씻어내고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끈적끈적한 것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부모 곁을 떠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새삼스럽게 부모를 생각하는 것도 피붙이에 대한 정이다. 혈관을 흐르는 피, 떼어낼 수 없는 피의 순환을 생각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비로소 고아가 됐다는 것을 실감했었다. 다행히 피붙이인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에 조금은 위로받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를 낳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될 텐데. 자식 키우기 힘들다고 기피한단다. 부부 둘만 행복하면 된다지만 자식은 끈이다. 삶은  희로애락의 장이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그 삶을 살아가는 과정 중 하나다. 서른 중반에 이른 남매는 아직 미혼이다. 결혼을 하라고 닦달할 때가 있다. ‘엄마, 결혼하면 또 애 낳으라고 할 거지?’ 너스레를 푸는 남매지만 결혼을 해야 삶이 온전해진다고 말한 들 귓등을 스쳐가는 바람 같은 말이다. 저희들 인생은 저희가 알아서 산다고 큰소리친다. 


 인생은 정해진 길이 없다. 정해진 답도 없다. 평생 행복할 수도 없고, 평생 불행할 수도 없다. 어떤 삶이든 스스로 뛰어들어봐야 길도 찾고 행복도 찾는다. 나는 산골에 젖어 사는 촌부라고 말하지만 만족하느냐는 물음에는 답하기 곤란하다.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내면에는 한 자리에 젖어 살기 싫은 점과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뭔가 이루고 싶은 것, 나만의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지나치면 욕심이다. 그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행복은 먼 그리움이다. 나잇살 더해지면서 내 자리에 안주하여 평온함을 추구하는 나를 본다. 


 나무는 한 자리에 뿌리를 박으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나무를 흔드는 것은 바람이다. 바람이 흔들어주지 않으면 나무는 직립이다. 바람이 흔들어줄 때 나무는 살아있음을 느끼지 않을까. 바람에 휘둘려봐야 제 뿌리가 튼튼한지 약한지 가늠하지 않을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희로애락의 중심에 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튼실한 뿌리를 박고 섰다면 그 나무는 어떤 바람에도 견뎌낼 것이다. 


 나라는 나무는 어떤가. 척박한 땅에 이식된 나무다. 내 뿌리는 어떤가. 내 자리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애썼다. 다행히 그 자리에서 고목이 되어가는 중이다. 나 혼자 애쓴 것은 아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애썼다. 나잇살 늘면서 뿌리를 생각한다. 내 뿌리는 튼실하게 박혔는가. 한 철 잘 보내고 있는가. 이젠 쉬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기름진 곳에 뿌리를 내렸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를 떠올린다. 뭔가 모자라는 것을 느낄 때, 내 선택으로 달라진 삶이라는 것을 느낄 때, 평범하게 태어난 내가 평범한 삶조차 살아내지 못한 것 같을 때 자책하곤 한다. 그래서 사람이다. 


 저승에 계신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막내딸에 대한 기대를 놓아버렸을 때 얼마나 허망했을까. 영리하고 똑똑한 딸, 뭔가 해 낼 것 같았던 딸, 부모의 기대를 받았던 딸이 촌부가 되어 허덕이며 사는 모습을 봤을 때 실망하지 않았을까. 부모님은 성공한 딸이길 바랐을 것이다. 번듯한 직장 팽개치고, 좋은 혼처자리 마다하고 촌부의 길을 택한 딸이 섭섭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가. 내가 택한 자리에서 뿌리를 내렸고, 남은 나날도 내 자리에서 늙어가다 마무리할 것이다. 여긴 남매의 고향이다. 언제든 돌아오고 싶은 자리가 아닐까. 


 고향집에는 둘째 언니가 산다. 언니는 왜 고향집으로 들어갔을까. 중학교를 졸업하고 떠났던 고향이다. 30여 년 공직생활을 청산했을 때 언니는 고향집으로 들어갔다.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남동생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집이다. 오 남매 어린 추억이 깃들어 있는 집이기에 그리웠던 것일까. 귀촌한 언니 덕에 가끔 고향집을 방문한다. 애틋함보다 세월을 느낀다. 고향집도 우리 자매처럼 늙어가는 것을 봤다. 정들었던 이웃도 거의 떠난 마을, 낯설기만 했다. 갈 때마다 변하는 풍경들도 낯설었다.


 초가집에서 살던 시절,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던 마을, 인정이 넘치던 산골마을을 기억한다. 덕천강과 평강들과 지리산 자락이 감싸 안은 산골마을, 전설과 신화가 구전되어 오던 마을, 내 그리움은 기억 속에만 있다. 산은 그대 론데 사람 사는 마을은 달라졌다. 도시화된 고향, 삭막해 보이는 고향 언저리를 휘돌아 올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역사는 변하기에 역사라고 하던가. 의식주가 풍부해질수록 정은 멀어지고 불신의 벽은 두꺼워진다. 강줄기가 메말라가는 것도 문명의 이기 때문이리라.


 낯설어진 고향을 떠올리며 산자락 베고 누운 엄마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날, 삽짝의 매화꽃은 터지고, 담장 아래 상사화는 푸른 잎을 쏙쏙 내밀었다. 

                   202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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