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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03. 2024

풀꽃처럼 사는 일

 풀꽃처럼 사는 일     



 도움 주고 도움받기가 삶이다.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알게 모르게 가족과 이웃, 나와 남은 서로를 돕고 도움 받으며 사는 거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평소 내가 쓰는 물건 하나도 누군가 만들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거다. 농부는 작업장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다. 일을 찾아 벌이면서 ‘일 조금만 하면 왜 이리 피곤할꼬. 옛날에는 안 이랬는데.’ 한숨을 쉰다. 옛날에는 젊었으니까. 지금은 노인이니까. 당연한 말을 왜 할까. 


 마당을 걷다 풀꽃을 만난다. 풀꽃은 어떻게 생겨났나. 풀꽃이 차지했던 자리에 내가 들어와 살면서 풀꽃은 꽃으로 보였다가 제거해야 할 잡초가 되기도 한다. 제 철이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풀도 살기 위한 투쟁 같다. 평온한 하루란 없는 것일까. 감정의 소용돌이에 들어가면 내가 살아온 길이 한심하고, 내가 살아갈 길이 아득하다. 인간의 삶은 정답이 없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이 나잇살 는다. 우리는 풀꽃 같은 존재 아닐까.        


 풀꽃

 박래여     


민낯이 고운 풀꽃 앞에 

허리 굽히고 

손 내민다.     


너랑 나랑 닮은 꼴로 살아도

너는 해마다 고운 모습인데

나는 해마다 삭은 모습이니

불공평하다고 툴툴거려도 

웃기만 하는 너 

잘났다.     


입 총 쏘아도 

밉살스럽기보다

곱기만 한 풀꽃 

어루만지다.        


 부부란 월하노인이 맺어준 인연이란다. 밉니 곱니 해도 이별하지 않고 몇십 년을 함께 하는 것도 전생의 업이다. 서로 갚아야 할 빚이 청산되지 않았기에 아옹다옹하면서 사는 것일 게다. 내게 사소한 것도 농부에겐 사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집이나 남편은 남편의 잣대에 아내를 맞추려고 하고, 아내는 아내 잣대에 남편을 맞추려고 한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남자는 몸에 밴 가부장적 사고를 버리기 어렵다. 자유로운 가정에서 자란 여자 역시 남자에게 맞추기 어렵다. 서로 받아주기도 하고, 묵인도 하다가 종내는 쇳소리가 나기도 한다. 


 부부는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어우러진다. 그렇게 서로 알게 모르게 희석되어 닮은 꼴로 거듭난다. 내 주장이 강하면 상대방이 치게 된다. 요즘 가스라이팅이란 심리학 전문용어가 심심찮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가스라이팅이란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자기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정신적으로 흔들리게 하는 정신적 학대를 말한다. 그렇다면 부부가 서로를 길들이려고 하는 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가부장적 가정에서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었다. 나는 남자가 원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여자의 도리라고 배운 마지막 세대 아닐까. 


 농촌에 시집와 살면서 무의식 속에 깃든 남존여비 사상에 곤혹스러웠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아버님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고,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꼴은 본 본다고 했었다. 시어머님은 남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아내의 도리라고 했다.  내 주장을 할 수 없었다. 시어머님도 남편에 대한 불만을 속으로 쌓으면서도 겉으로는 순종했다. 그 여파가 내게로 미칠 때 왜 그렇게 사시냐고 따지기도 했다. ‘아버님과 싸우세요. 왜 참기만 해요. 저는 어머님처럼 못 살아요.’ 그렇게 날을 세우기도 했지만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길들었다. 어딜 가고 싶어도 남편에게 허락을 구하는 나를 봤다. ‘당신 뜻대로 하소.’ 남편의 목소리 톤만 들어도 가지 마라는 말인지 가라는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나 스스로 포기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가스라이팅의 실체 아닐까. 가스라이팅을 가하는 사람도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도 그것이 상대방을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일이란 것은 모를 수 있다. 세뇌시킨다는 말과 가스라이팅은 뭐가 다른가. 세뇌란 사람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란다. 내가 농부의 말에 따르는 것은 세뇌당했다기보다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봐야 옳을 것 같다. 정신적 학대라고 생각했다면 진작 파투가 날 일이지만 나 스스로 농부를 따르고자 했다는 거다. 농부를 나보다 현실적이고 똑똑한 남자로 생각하거나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거나 집안의 화목을 위해서라거나 하는 자기 합리화를 끌어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쇳소리를 냈다. 

 “어째서 아버님과 똑 같이 굴어? 나는 어머님처럼 살지 않아. 내게 잔소리하지 마. 당신이 할 수 있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모른 척 해. 내게 강요하지 마. 내가 당신이 하는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 봤어? 한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당신도 나를 좌지우지할 생각 마. 내가 하고 싶으면 해. 당신 뜻대로 안 살아.”

 그랬는데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쌓인 감정을 쏟아낸 것 같아서.

       202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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