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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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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06. 2024

쑥과 냉이 된장국

쑥과 냉이 된장국     



 길섶에서 쑥 캐는 아주머니를 봤다. 나도 소쿠리와 칼을 들고 마당가를 돌았다. 쑥이 아직 어리다. 냉이와 쑥 한 주먹을 캤다. 난쟁이 냉이도 자잘하지만 흰 꽃을 피웠다. 냉이는 꽃이 피면 뿌리가 질겨진다. 꽃을 맺지 않은 것만 찾아 뿌리까지 뽑았지만 쑥과 합쳐도 한 끼가 어렵겠다. 내친김에 삽짝을 나섰다. 못 둑에 갔다. 거기도 쑥은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봐야 보인다. 양지바른 비탈을 내려서면 쑥이 보일 텐데. 길게 목을 빼다 만다. 비탈에 버티고 엎드려 쑥을 캐기엔 겁난다. 사실 못 둑을 걸어보기도 오랜만이다. 몸을 사리게 된 것도 부실한 다리 때문이다. 쭈그리고 앉아 쑥 한 주먹을 뜯었다. 냉이랑 섞으면 한 끼 국은 끓이겠다. 푸른 못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집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개나리 군락에서도 꽃눈이 맺혔다.


 며칠 전 농부가 야생머위를 뜯어 왔었다. ‘벌써 머구가 났어? 빠르네.’ 저녁 식탁에 머구를 삶아 올렸다. 초간장에 찍어 먹었다. 쌉싸래한 머위 향에 입맛이 살아났다. 삼월 초에나 첫 머위 구경을 하곤 했는데 올해는 이른 편이다. 골짜기의 머위 밭은 잘 있을까. 누가 머위를 뜯어갈까. 해마다 아랫집 형님과 3월 10일경이면 발품을 팔았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피어 반기고 골짜기 물은 청량하게 흘렀다. 골짜기의 너럭바위에 앉아 한오백년을 목청껏 부르곤 했다. 흥이 나면 짚고 오르던 막대기로 너럭바위를 때리며 장단을 맞추곤 했었다. 형님은 배꼽 빠진다고 웃었다. 


 한때의 즐거움이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둘만의 머위군락지를 먼눈 보기만 했다. 농부가 ‘머구 딴다고 산에 오르기만 해 봐라. 쫓아낼 기다.’ 엄포를 놨었다. 농부의 엄포가 아니라도 휘청거리는 다리로 산에 들기 두려웠다.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했다가는 그런 불상사가 없다. 칠십 중반이 된 형님 역시 거동이 불편해졌다. 농부나 아저씨의 힘을 빌릴 때도 있지만 골짜기 머위 밭은 포기하고 집 앞의 머위 밭만 바라봤다. 고사리 밭을 남 주면서 머위도 자연스럽게 남의 손에 넘어갔다. 틈새에 농부가 발품을 팔아 뜯어다주면 밥상에 올리는 것만 내 몫이 되었다. 지천에 널린 산나물조차 먼 그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늙는다는 것이 서글펐다. 


 저녁에 쑥과 냉이를 넣어 된장국을 끓였다. ‘벌써 봄맛을 보네.’ 농부가 쑥국에 밥을 만다. ‘마당가 쑥이 이렇게 자랐던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못 둑에서 한 주먹 캐 보탰어.’ 내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농부의 눈이 모로 돌아간다. ‘못 둑까지 갔다고? 당신 제정신이야?’ 아이고, 또 이실직고하고 욕먹었다. ‘걱정 마세요. 비탈은 안 내려갔어. 그래도 못 둑까지 다녀왔잖아. 장하지?’ 애교 작전을 폈다. 마당에서 캤다면 될 것을 꼭 나불거려서 욕먹었다. 다리와 허리 부실한 아내를 부뚜막에 올라앉은 고양이처럼 위태롭게 여기는 것도 사랑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스라이팅 당하고 사는 것이 맞다. 농부는 자기가 가스라이팅 당하고 산다지만 니미렁내미렁 하고 사는 거지 뭐.


 쑥 냉이 국으로 봄을 맞이했다. 길섶이 온통 하얗다. 가로수 매실나무에 꽃이 만개했는데 꽃샘추위는 계속된다. 춥다고 하나 살얼음 얼었다 녹는 수준이다. 며칠이나 가겠나. 봄나물이 지천이다. 잡초도 어릴 때는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내 고향 사투리로 질경이(질경이), 쑥부쟁이, 코딱지나물(광대나물), 곰보배추 등, 어린 나물이 마당가에도 널렸다. 곰보배추는 깨끗하게 씻어 요구르트에 갈아먹기도 한다. 혈액순환에 좋다고 했다.


 우리가 잡초라 하는 것도 대부분 한약재에 속하고 어린잎은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달래, 돌나물, 머위, 씀바귀, 뽀리뱅이, 지칭개, 갈퀴풀, 소루쟁이, 산마늘, 생강나무 어린잎, 고추나무, 화살나무 어린잎, 찔레순 등, 사방에 널린 먹을거리지만 채취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청정구역에서 채취한 것이어야 한다. 차량이 다니는 길가에 있는 것은 중금속 오염이 심각하고, 들녘은 제초제 성분을 걱정해야 한다. 


 어쨌든 봄이 되니 발품만 팔아도 맛깔스러운 한 끼를 먹을 수 있으니 좋다. 부지런히 야생초 뜯어다 삶아 볶거나 무쳐서 먹어야지. 식탁에 오르는 먹을거리 물가가 두세 배씩 올랐다. 시장보기 겁나는데 청정구역에 살면서 누릴 행복이 뭐겠는가. 발품만 팔면 되는 반찬거리다. 내일은 질경이나 캐 볼까. 쑥국을 먹으며 봄맛을 들였더니 쌉싸래한 봄나물에 구미가 당긴다. 뽀리뱅이랑 지칭개랑, 곰보배추와 광대나물, 큰 개불알 어린잎을 섞어서 별미를 만들어볼까. 2월 다 갔다. 

              202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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