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Mar 20. 2024

봄을 먹은 날

봄을 먹은 날     


 연자줏빛 꽃을 단 광대나물 줄기를 손바닥에 올렸다. 긴 겨울을 난 의연함이 느껴진다. 쌀 알갱이 같은 진분홍 꽃은 둥근 꽃잎 사이로 얼굴을 비춘다. 꽃샘추위에 입술 열기가 겁나는 것 같다. 난쟁이 냉이 꽃, 파란 큰 개불알 꽃도 마찬가지다. 눈여겨봐야 보이는 풀꽃들, 나도 누군가의 풀꽃이 아닐까. 어쩌면 이미 풀꽃으로 활짝 피었다 시들어가는 꽃이지 싶다.


 감산에 갔던 농부가 쑥과 머위를 뜯어왔다. 봄나물 맛에 취했나 보다. 신문지를 깔고 다듬었다. 농부도 마주 앉아 쑥과 머위를 다듬는다. 남편을 보고 웃었다. 구부정하게 어깨를 숙이고 쑥에 섞인 지푸라기를 주어내는 모습이 어색하다. 여자가 하면 자연스러워 보이는 일도 남자가 하면 어색해 보이는 것도 편견인가. 마당가를 돌며 냉이와 쑥을 캐는 내가 보기 싫었던 건가.


 “냉이도 캐 올까? 이런 거 다듬는 것은 아무래도 당신 못 따라가겠고”

 엊그제 끓였던 냉이 국이 맛있었나 보다. 이번에는 냉이나물 해 줄까? 냉이랑 쑥을 섞어서 된장국 끓여도 괜찮아. 그는 금세 냉이 한 소쿠리를 캐 왔다. 흙덩이가 그대로 달린 냉이다. 마당가 차밭 언저리에 있던 건가. 냉이군락을 봐 뒀던 모양이다. 많이도 캤네. 나물 해 먹으면 되겠다. 다시 신문지를 펴고 냉이를 쏟았다. 꽃이 핀 냉이도 섞이고, 냉이 아닌 잡풀도 섞였다.

 “이건 냉이랑 비슷해도 냉이 아닌데. 아직 냉이도 몰랐어요?”     

 “생긴 게 냉이 같아서.” 

 “같은 냉이라도 꽃 핀 것은 질기다고 캐지 말랬잖아.”  

 그랬지만 어린 꽃을 보니 버리기 아깝다. 다듬어서 소쿠리에 담았다.


 저녁에 냉이를 끓는 물에 무르게 삶아 무쳤다. 그는 냉이나물보다 냉이 국이 낫단다. 향긋한 봄 냄새가 무침보다 국에 더 진하게 담기나 보다. 냉이무침에 밥을 쓱쓱 비벼 먹으니 그 맛도 봄맛이다.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관광차를 타고 오간다. 그들은 마을 입구 주차장에 내린다.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손에는 검은 봉지와 작은 칼을 들고 있다. 산길로 오르는 사람보다 논밭에 들어가는 일행도 더 많다. 그들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쑥과 냉이, 민들레 등, 봄나물을 캐거나 논두렁밭두렁을 누빈다. ‘길옆에 난 것은 중금속 오염된 것이라 몸에 안 좋아요.’ 그 말을 하고 싶은데 괜한 참견을 하는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친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있기나 할까. 그들의 기분을 내 한 마디에 망칠 수도 있다. 모르면 약이고 알면 병이다. 쓸데없이 오지랖 넓은 짓 하다 망신살 뻗는다.


 한때 오지랖 넓은 짓 하다 무안당한 적이 있어서 그럴까. ‘신경 끄소. 당신 꺼 아닌데 웬 잔소리? 남이야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언제 봤다고 아는 척 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눈을 흘기던 사람들이 있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불문율은 존재한다. 남이 하는 일에 콩쥐팥쥐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말을 해도 사람 봐가며 해야 한다. 무턱대고 아는 척했다간 뺨 맞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안타깝다. 


 희한하게 길섶에 널린 쑥이나 냉이는 이들이들하게 살이 올라 탐스럽다. 왤까. 아스콘에서 나온 중금속 거름발이 좋아서 그럴 거다. ‘발품 조금 더 파시오.’ 풀이 무성한 묵정이에 들어가 캐는 쑥이나 냉이, 민들레는 무공해라고 본다. 


 삼월, 쑥국 끓이고 머위 초간장, 냉이무침으로 봄을 먹은 날이다. 

              2024.   3. 

매거진의 이전글 범부채 뿌리가 마당가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