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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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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01. 2024

봄비가 잦으면 헛 농사

봄비가 잦으면 헛농사    


 연일 비가 내린다. 봄비가 잦아지자 농민들은 누구나 한숨을 쉰다. 감산에 거름포대가 놓였던 것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감나무뿌리 부분에 시커먼 거름더미가 놓인다. 나무들은 너나없이 꽃을 피우고 잎눈을 돋운다. 참꽃이 피고, 개나리가 피고, 산수유며 조팝꽃, 목련이 한꺼번에 피었다. 꽃들이 왕창 피는 것도 이상기온 탓이다. 결국 목련은 냉해로 갈색으로 거무죽죽해져 버렸다. 동네 할머니들은 모였다 하면 농사 걱정이다.


  “봄에 뭔 놈의 비가 사알디리 오노. 봄비가 잦으모 헛농사되는데. 마늘이고 다마네기고 얼다 녹다 지쳐서 내리 앉는 거 뵈지도 안능가. 참말로 지랄겉은 날씨다. 패 한 뿌리에 천 원이라니 시상이 우찌 될랑고. 요새는 밥 묵는 것도 겁난다. 망둥이가 뛰모 꼴뚜기도 뛴다 카더이. 개나 소나 덤터기 씌우는 기 예사다. 그나마 봄이 몬사는 사람 살리는 격이다. 산에나 들에나 나가기만 하모 쑥이랑 뻬뿌쟁이랑 머구랑, 나물거리가 천지니. 그걸 캐다 장날에 파는 것도 심이 있어야 하제. 촌에 살모 보지란만 하모 밥이야 안 굶것제. 옛날 보릿고개 넘던 시절에 비하모 원님도 부럽잖다만 그래도 돈이 종이쪼가리 같아지니 겁난다.”    


 그러면서도 애써 현재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말은 조심스럽다. ‘내야 장 공화당 아이가’ 하던 촌로들이 많다. 그들에게 현 시국은 별 관심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됐던 관심 밖이다. 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내 밥그릇이다. 누가 정치를 하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쯤은 안다는 뜻이다. 촌로가 이러쿵저러쿵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내 몸 안 아프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무심하다. 마을 회관에 모여 듣는 가십거리 정도에 그친다. 

 그런데 요즘 촌로들 돈이 무섭단다.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시간차 타고 오일장 갈 정도로 정정한 노인도 대다수 팔십 대 중 후반이다. 그런 어른도 지팡이 짚고 희망근로 다닌다. 한 달에 열흘 출근하면 이십몇 만 원 나오고 한 달에 스무날 출근하면 사오십 만원은 나온단다. 촌로에게 큰돈이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대답이 시원하다.


 “국가에서 할매들한테 그냥 돈 주기 에럽다 아이가. 노느니 염불 한다고 나가모 밥값이라도 번다. 집에 있어봤자 떼레비만 보고 눴다 안잣다 하모 몸만 아푸제. 거기 가모 할마이들 만내 이바구 한다고 시간도 잘 가고 돈도 벌고 올매나 좋노. 내사마 죽을 때가 넘었지만 안 죽으니 이래 산다. 할마이들 소원은 딱 한 가지다. 내 손으로 밥끼리 묵고 걸어 다니다 자는 잠에 죽는 기다. 며누리 밥 얻어 물 생각은 안 한다마는 고려장 당하기는 싫으니 우짜것노.”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노인들은 평생 쓸고 닦았던 살림 다 놔두고 몸만 가서 죽어 나오는 곳이 요양원이라고 믿는다. 노인들 모시면서 고생한 자식은 누구나 오래 살면 자발적으로 요양원 가야지 했던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서 청암 부인이 임종 전까지 미음으로 연명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어머님을 생각했다. 요양원에서 일 년여, 병원 침대서 한 달여 계시다 돌아가셨다. 가끔 왜 어머님은 당신 떠날 준비를 안 하셨을까. 궁금하다. 어머님은 몇 년 동안 집에서 자리보전 하고 계셨는데도 당신 떠난 뒤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없으셨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며느리가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하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미리 정신이 맑을 때 유언도 하고, 보고 싶은 사람도 불러 만나야 하는 것이 마지막 이승의 길 닦음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사 들이기보다 현재 가진 것을 쓰다가 망가지면 미련 없이 버리기를 실천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서재의 책이 그렇다. 내가 쓴 글이 실린 잡지를 버리지 못하고 쟁여 놓았다. 작가들이 단행본으로 낸 책을  보내준 것도 마찬가지다. 신문이나 잡지는 쉽게 고물상에 갖다 버릴 수 있지만 내 글이 실린 잡지나 책은 애착이 먼저 잡는다. 남매에게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봤었다. 딸은 그냥 버리라 하고, 아들은 가만히 두라고 한다. 그동안 쟁여놨던 서재의 책들, 이런저런 공모전이나 백일장에서 탄 상장들, 먼지가 시커멓게 앉은 오래된 책에서 나는 묵은내를 거두어내고 싶을 때 있다. 내 죽고 나면 몽땅 쓰레긴데. 남겨 무얼 하랴. 싶어질 때 있다.


 나는 틈만 나면 남매에게도 어미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물어달라고 한다.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물을 데가 없더라.’며 무엇은 어디 있다고 알려놓기도 반복한다. 이승에 올 때도 빈 몸으로 왔듯이 갈 때도 빈 몸으로 간다. 망자가 살았을 때 아끼던 것도 죽고 나면 쓰레기가 된다. 『혼불』에서 청암부인 죽고 초상 치는 이야기가 길게 나온다. 양반가의 장례절차에 대해 소상하게 적었다. 이승에 올 때는 간소하게 왔지만 저승에 갈 때는 온갖 절차 밟아가며 꽃가마 타지만 무덤 속에 들어갈 때는 관 하나다. 지금은 그 관조차 불에 태워 사라지고 재 항아리만 유족에게 안긴다. 시부모님은 생장을 했지만 우리는 재가 되어 뿌려질 것이다. 내가 애착을 가졌던 물건도 나 죽고 나면 쓰레긴데. 살아있을 때 아낌없이 버리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요 며칠 컴퓨터에 앉기가 어려웠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 서다. 이삼십 대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며 봉건주의 시대 여자의 삶이 어떠했는지. 양반가와 그에 따른 노비들, 대종가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사는 상놈, 천민, 양민의 삶과 그 시절 관혼상제에 대한 자료를 소설 속에 잘 갈무리를 해 뒀기에 배울 점이 많았다. 무척 긴 자료는 자칫 소설 읽기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대종가를 둘러싼 노비와 민초의 삶, 전라남도 토박이말도 찰 졌다. 아직 반타작만 했기에 소감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가는 대로 둘 수밖에 없다. 

묶어 둘 끈도 없으니 안타까워하기보다

그러려니 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일이다.   

  

산속은 발그레 홍조를 띠고

삽짝은 노랗다.     


해마다 만나는 봄꽃들 보며 

너는 해마다 고운데 

나는 해마다 늙어가니 서럽기만 하랴.

어쩌겠나. 생의 절반을 넘어왔으니

남은 길도 넘어가지 않겠나.     


때 되면 먹고 때 되면 잠자리에 드는 것도

생리작용인 줄 아는데. 왤까. 

뚝 끊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아지는 것도 본질인가.     


달라질 것도 없는 일상을 줍는 일

오랜만에 최명희의 혼불을 다시 읽는다. 

손가락으로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것 같다던 

생전의 작가를 기억하면서

나도 내 영혼이 깃든 글을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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