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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03. 2024

『혼불』에 빠져서

『혼불』에 빠져서     


 

 비는 연일 오고 안개가 산 능선을 따라 집을 빙 둘러싼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검은 색깔로 얽히고 설 켰는데 산비탈은 연분홍 비단을 깐 것처럼 발그레하다. 연분홍 밑에 살짝 깔린 연녹색은 은근짜의 곁눈질 같다. 거기에 안개의 흐릿함은 어떤 신비로운 기운을 끌어낸다. 모호하고 아련하다. 살그머니 걷히다가 다시 짙어지는 안개는 오전 열 시가 넘어도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벽빛 같다. 


 『혼불』 7부를 읽고 있다. 1부와 2부는 푹 빠져 읽었지만 3부와 4부는 재미보다 꼭 읽어봐야 할 관혼상제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5부와 6부는 그냥 푹 빠져 읽었다. 내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들어있던 집안 내림에 대한 것을 포괄하여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기 십상이지만 어린 시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기억나게 했다. 작가의 혼이 깃든 소설 부분은 길지 않지만 그 부분에 들면 나도 깊이 빠져들었다. 전라도 지방의 관혼상제에 대한 자료와 양반가의 유교사상에 깃든 풍습, 음식, 풍물, 향악 자료가 방대하게 끼워져 있었다. 


 물론 역사의 흐름을 공부하는 재미도 있고, 그 시절 양반과 상놈, 천민, 민초의 삶을 되돌아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정작 이야기의 흐름은 자꾸 늦추어지고 있었다. 대하소설이라 그럴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들이 접하는 사건사고들을 박진감 있게 따라가기보다 작가의 시선은 사람이 사는 모습에 머물렀다. 그것도 여자의 일생이다. 『혼불』을 청암 부인의 죽음에서 끝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일본 강점기를 거치면서 몰락해 가는 양반가와 그 주변에 기생하며 사는 사람들, 사회적, 심적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사고방식, 열등감, 우월감, 분노, 타고난 성정, 돈의 위력 등, 광범위한 이야기를 어떻게 배치하고 이끌어 가느냐가 작가에겐 가장 중요했을 것 같다. 


 황석영의 『장길산』이 남자들 이야기라면 최명희의 『혼불』은 여자들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어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나는 여성작가의 대하소설보다 남성작가의 대하소설을 즐겨 본 것 같다. 여성작가의 대하소설이라면 단연 박경리의『토지』와 남지심의 『우담바라』 최명희의『혼불』등이지만 남성작가의 대하소설이라면 이병주의『지리산』, 조정래의『태백산맥』외, 이은성의 『동의보감』, 기타 등등이 있다. 독서는 나이 대에 따라 공감대와 느낌이 다른 것 또한 인정한다. 젊어서는 깨치지 못했던 것을 나이 들어 깨치게 되는 것들도 많다. 그래서 노인을 백과사전에 비유하는 것은 아닐까.


 길섶의 벚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나흘이면 벚꽃은 만개를 할 것이다. 비를 맞으면서도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벚나무를 바라본다. 잔디밭 여기저기 달래와 비비추가 파릇파릇하다. 비가 그치면 달래를 캐다 달래장을 만들어야겠다. 비비추는 삶아서 나물로 먹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어도 되지만 꽃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딸과 함께 하는 나날이다. 농부는 명상 가면서 딸을 불러 앉혔다. 내 보호자다. 여자가 얼마나 뒤숭하면(못났으면의 경상도 사투리) 일흔 문턱 밑에 앉아 보호자 없이 혼자 있을 수 없는지. 겨우 2주간이다. 혼자 잘 지낼 것 같은데 남편이나 딸 눈에는 안 그런가 보다. 『혼불』의 청암 부인은 19세에 청상으로 시댁에 들어와 죽을 때까지 혼자 잘 살았다지 않는가. 물론 보쌈하려고 벼르는 남자들이 있어 친인척 일가붙이 아낙을 불러들여 같이 잠을 잤다고는 하지만. 지혜로운 여인이요. 강인한 여인임에는 틀림없다. 딸이 있어 의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딸은 재바르고 깔끔하고 부지런해서 내가 지시할 것도 없다. 척척 알아서 챙겨주니 나는 가만히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중국 드라마를 보며 눈을 식히면 된다.


 그러나 숙제로 받은 소설에 몰입이 안 된다. 『혼불』에 내 혼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할 수 없는 것도 타고난 성격이다.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몰입이 안 되니 숙제를 포기할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내가 쓰는 소설의 깊이가 너무 얇아서다. 자격지심인지 모르겠다. 깊이 있는 소설, 독자의 혼을 빨아들일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왜 안 될까. 갈등하면서 다시 『혼불』에 빠진다.  

                202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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