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3>
3.
1960년 대 농촌은 집집마다 농우 한 마리씩 키웠다. 농한기가 되면 소들도 한가해진다. 그 소들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동네 조무래기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자기 집 소를 끌고 나왔다. 소를 먹이러 동네 뒷산인 연화산으로 갔다.
거긴 우리 동네 터줏대감인 조 씨네 선산이 있다. 잘 가꾸어진 묏등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우람하게 자리 잡았고, 너럭바위가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너럭바위 아래 옹달샘도 있었다. 거긴 소들보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각자 소의 뿔에 고삐를 칭칭 감아 산으로 몰았다. 자유를 만끽하게 된 소들도 궁둥이를 하늘로 치켜올리며 뜀뛰기를 했다. 커다란 입을 헤벌쭉 거리며 웃었다. 송아지는 제 어미를 찾아 뛰고, 수컷은 암컷의 등을 타기 위해 뛰고 암컷은 요령껏 수컷을 피해 달아났다. 소들이 산속으로 자유롭게 흩어져 배를 채울 동안 아이들은 각자 가져온 감자나 고구마를 굽기 위해 땅을 파고 불을 피웠다. 우리는 그것을 감자산곶이라 불렀다.
우리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평지에 호미로 땅을 팠다. 아궁이 모양으로 땅을 파고 구덩이 위에 서까래 모양으로 삭정이 굵은 것이나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포개 얹고, 생솔가지를 놓고 마지막으로 자갈돌을 수북이 얹었다. 아주 작은 움막형태가 되면 아궁이에 삭정이를 가득 채우고 갈비를 긁어 와 불을 붙였다. 성냥은 누가 챙겨 왔을까. 돌이 벌겋게 익을 즈음 잉걸불만 남은 아궁이에 감자나 고구마를 넣고 움막을 눌러 앉히고 흙을 퍼다 덮었다. 묏등모양이 된다. 감자가 익는 동안 소들은 산을 누비고 우리는 전쟁놀이를 했다. 빨갱이와 국군 편을 갈랐다. 나는 빨치산 정 아무개 역이었다.
감자산곶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면 우리는 놀이를 접고 모여 앉았다. 구덩이를 파헤쳤다. 노릇노릇 익은 고구마와 감자가 뒤집어졌다. 우리는 손과 얼굴에 숯검정 칠을 하고도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웃고 또 웃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갓 구워낸 고구마나 감자 아닐까. 배고픈 시절 그만한 간식거리도 없었으니 말이다.
해가 설핏 기운다. 그때쯤이면 멀리 나갔던 소들도 빵빵하게 부른 배를 뒤뚱거리며 주인이 있는 묏등 주변으로 슬금슬금 모여든다. 아이들은 자기네 소를 찾아 고삐를 풀고 돌아갈 채비를 한다. 소들 중에도 늑장을 부리는 게으른 녀석이 한두 마리는 꼭 있다.
“칠성이네 집 쇠가 안 보인다. 칠성아 빨리 쇠를 불러라. 어둡기 전에 거기 지나가야 한데이. 귀신 나오모 우짜끼꼬? 밤에 오줌 싼다 캤다. 해 떨어지기 전에 퍼떡 가자.”
우리는 조바심을 쳤다. 칠성이는 목이 터져라 점박이를 부른다. 집집마다 소 이름이 있다. 칠성이네 소는 등에 점이 있다고 점박이, 우리 집 소는 전체가 누렇다고 누렁이, 욱이네 소는 얼룩덜룩하다고 얼룩이 등등. 소는 희한하게 주인 목소리를 안다. 소들도 제 동료를 부르려고 ‘음머어!’ 합창을 한다. 어둑어둑해져 갈 때 점박이가 어슬렁거리며 동료 곁으로 온다. 우리는 소를 앞세우고 나란히 어둠살을 밟고 산에서 내려온다.
연화산에서 동네로 내려오는 비탈길에 조 씨들 선산이 있고 그 옆에 작은 움막이 있다. 움막에는 상여꾼들이 놓아둔 온갖 것이 다 들어있다. 움막을 지나면 논밭으로 이어진 모롱이가 나온다. 그 모롱이에 해묵은 비각이 서있다. 열녀문이다. 조 씨네 민며느리로 들어왔던 여자가 병치레 잦았던 남편을 잃고 이십 대 청상이 되어 자결을 했단다. 나라에서 열녀문을 하사했다지만 소문은 다르다. 문중의 강요로 목을 맸다는 설이다. 아이들은 대낮에도 열녀문 옆을 지날 때는 달리기 선수였다. 우리 동네는 밤에 우는 아이 달랠 때 ‘호랑이가 물고 간다.’로 겁주는 것이 아니라 ‘자꾸 울모 비각에 갖다 버린다.’ 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쳤다.
덕분에 우리 동네 아이들은 헛것을 자주 봤다. 비가 부슬거리는 날은 머리를 풀고 소복한 여자가 비각 앞에 나와 배롱나무를 흔든다든가. 하얀 고무신이 비각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든가. 머리를 산발한 여인이 통곡을 하며 모롱이를 돌아 움막으로 오르는 것을 봤다든가 하는. 어쨌든 아이들은 그 비각 옆으로 난 길을 지나다니는 것을 무서워했다. 귀신이 팔을 쑥 내밀어 끌어당길 것만 같은 그런 으슥한 길이었다.
아이들은 소의 고삐를 최대한 다잡고 소의 배에 붙다시피 해서 움막과 열녀문 옆을 지나간다. 비각 주변을 감싸고 있는 구불구불한 배롱나무가 민둥산이 같은 가지를 쑥 뻗친다. ‘으악! 저기’ 맨 앞에 섰던 칠성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열녀문 지붕 위에 하얀 것이 너풀거렸다. 아이들은 혼비백산해서 소의 잔등을 사정없이 때렸다. 소와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었다.
멀리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반갑다. 그제야 아이들의 헐떡거리던 숨도 잦아든다. 어둑어둑해진 마을에 하나 둘 별 같은 불이 켜진다. 새미골 불빛은 따뜻하다. 그날 밤 나는 귀신에게 잡혀가는 꿈을 꾸다 이불에 우리나라 지도를 그렸다.
“아이고, 이것이 또 쌌네, 쌌어. 명도야, 일 나서 옷 갈아입어라.”
할머니는 축축한 이불을 걷어내고 새 이불을 깔아주면서 중얼거렸다.
“삭주, 그놈도 조 가네 열녀문 덕에 명 보전 했제. 낼은 그놈한테 가서 괴기나 한 모타리 도라 캐야 쓰것다. 우리 명도가 허해서 헛것을 본 기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