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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n 18. 2024

새미골 아이

<단편소설. 5>

 5.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왔다. 나락을 베고 고구마를 캤다. 우리 동네는 나락 농사보다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지었다. 산간 다랑논은 소출이 적었다. 겨울나기를 하려면 고구마가 비상식량이었다. 꽁보리밥 가운데 쌀 한 줌 얹어서 밥을 짓는 집도 드물었다. 쌀 한 줌은 노인과 남자들 밥그릇에만 들어가고 여자들은 누룽지와 꽁보리밥을 먹었다. 꽁보리밥도 감지덕지해야 할 만큼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고구마나 감자밥도 흔했다. 시래기나 무밥도 흔했고, 나물죽이나 풀데 죽을 끓여 끼니를 잇는 집도 많았다.

 

  강변 하천부지는 땅이 기름졌다. 국가 땅이지만 개간한 사람이 임자였다. 물론 참흙과 모래가 반반 섞인 밭이라 물 빠짐도 좋고 곡식도 잘 됐다. 고구마 캐는 철이 돌아오면 강변 밭에는 여기저기 원두막이 세워졌다. 우리 밭가에도 원두막이 세워졌다. 고구마 서리를 하러 오는 밤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밭둑은 돌담이었다. 밭을 일구며 주워낸 돌을 쌓아 만든 담이었다. 누구네 밭인 지를 알리는 작은 돌담은 경계선이었지만 하천부지 전체를 빙 둘러친 높고 넓은 돌담은 강물의 범람을 막아주는 보였다. 돌담 위는 널찍하고 편편했다.


 아버지는 거기에 원두막을 세웠다. 고구마 밭을 지키는 파수 대였다. 원두막이라 해 봤자 돌담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대나무로 서까래를 만들었다. 거적 몇 개 올려 지붕을 이었다. 밤바람을 막기 위해 고구마 밭쪽만 틔우고 나지막하게 거적으로 원두막을 둘렀다. 밤의 강바람은 차다. 돌바닥에는 가마니나 작은 멍석을 깔았다. 아버지가 외출한 날이면 우리는 고구마 밭을 지키러 갔다. 우리는 원두막에서 촛불을 켜 놓고 책도 읽고 숙제도 했다. 물론 죽검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예비용 무기였다. 아버지는 여자라도 제 앞가림은 해야 한다고 팔 꺾기, 남자의 급소 차기 등, 호신술도 가르쳐 주셨다. 


 1970년대 초반쯤이었을 게다. 진작 육이오동란은 끝났지만 지리산 자락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이웃 간에 불신의 벽도 높았고 말도 함부로 못 했다. 연좌제법은 강력했고, 독재정치의 시작으로 시국은 어수선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모였다 하면 전쟁놀이를 즐겼다. 모두가 적당한 대나무 봉이나 막대기 하나씩 꿰차고 국군과 빨치산 편을 갈라놓고 칼싸움을 즐겼다. 남자애 같았던 나는 단연 칼싸움을 잘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죽도는 내 호신용 무기였다. 밤마을 갈 때면 항상 휴대했다.   


 그날은 밤바람이 유난히 찼다. 나는 언니들 곁에서 만화책을 보다가 서늘한 강바람에 가물거리던 촛불이 꺼졌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는 누웠다. 얇은 여름 이불을 덮고 작은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언니는 입담이 좋았다. 책을 많이 읽으니 아는 것도 많았다. 세 자매가 시시덕거리다 풋잠이 들었다. 누군가 쓱 원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덩치 큰 복면을 한 남자였다. 그림자는 망설임 없이 문 앞의 큰언니를 덮쳤다. 언니는 비명을 질렀고 나는 죽검으로 남자의 머리를 타격했다. 남자가 윽, 신음을 하며 일어섰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린 언니는 남자의 급소를 찼다. 남자는 거시기를 움켜잡고 꿇어앉았다. 큰언니는 내 죽검을 빼앗아 남자를 난타했다. ‘그만, 그만해라, 명자야. 내다.’ 남자가 죽어가는 시늉을 했다. 언니는 단박에 복면을 벗겼다. 나는 성냥을 켰다. 성냥개비 불은 금세 꺼졌지만 언니는 그가 누군지 당장 알아봤다.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보소. 아재, 동네 우사 당해봐야 알겠소?”

 어둠에 눈이 익었다. 별빛이 훤하게 원두막 속을 들여다봤다. 내 눈에 비친 큰언니는 사천왕 같았다. 죽검을 든 큰언니의 손은 금세 남자의 머리통을 후려칠 기세였다. 남자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 언니에게 빌었다. 

 “명자야, 내가 잘못했다. 벌써부터 니를 은혜 했지만 어르신께서 허락을 안 해서”

 “가소. 퍼떡. 아부지 오모 아재는 맞아죽소. 우리 아부지 성질 알지요? 퍼떡 가소.” 

 그때 멀리 강 건너에서 관솔불이 보였다. ‘엉가, 저기 아부진 갑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언니가 속삭였다. ‘자야!’ 큰언니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평소 다니던 징검다리가 아니라 우리 밭과 직선거리에 있는 보를 막은 지름길인 강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원두막에 불이 꺼졌으니 마음이 급하셨던 것이다. 외출하면서 늦을지도 모른다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오신 것도 불길한 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소문은 금세 우리 동네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박 샌 집 큰 딸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며? 남정네 두셋 붙어도 이기 축제. 땡삐는 저리 가라쿠네. 저잣거리 삭주 어른 아들이 보쌈 하로 갔다가 학을 뗐단다.”

 

 그때부터 큰언니 별명은 땡삐가 되었다. 땡삐는 땅벌의 경상도 사투리다. 땅벌은 꼬투리가 토종벌보다 작은 벌인데 땅에 구멍을 파고 집을 지어 무리로 산다. 독침이 어찌나 강한지 한 번 쏘였다 하면 생사를 오갈 정도다. 땅벌은 영리하다. 벌을 건드린 사람을 쫓아 십리는 족히 따라온다는 벌이다. 큰언니가 땡삐란 별명을 얻자 중매쟁이 노파도 며느리 감으로 눈독 들이던 이웃도 서로 눈치를 봤다. ‘드센 여자는 팔자도 세다는데. 생긴 것은 곱상한 처니가 성깔이 무섭다니. 생각을 다시 해 봐야겠다.’는 식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큰언니는 얌전한 척 내숭쟁이는 아니었다. 활달하고 통이 컸다. 


 “네가 사내아이로 태어났으모 올매나 좋것노. 삼시랑도 참!”

 아버지는 맏딸을 맏아들처럼 의지하며 허전해하곤 했다. 

 큰 언니는 열여덟 나던 해 경찰아저씨와 백연가약을 맺었다. 작은언니와 나는 꽃처럼 예쁜 신부와 신랑의 목에 사철나무줄기를 엮어 알록달록 색종이로 만든 종이꽃을 달아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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