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캐다.
농부는 봄에 창고 앞 자투리땅을 뒤집어 감자 두 두둑을 심었다. 범부채 꽃밭을 만들려고 꽃씨를 받아 뿌려둔 자리였다. 꽃씨가 발아해 어린잎이 여기저기 듬성듬성 났다. 한여름에 주황빛 꽃잎에 검은 얼룩반점이 찍힌 꽃이 피면 마당이 환했다. 호랑나비와 범나비가 번갈아 날아들고 벌들이 날아들어 눈길을 더 붙잡는 꽃이다. 그 꽃이 피는 자리를 확 뒤집어 감자를 심겠다고 했을 때 나는 참 어이가 없었다.
일단 감자를 심겠다고 결심한 농부를 막을 수 없었다. 농부는 곡괭이와 삽을 들고 대나무 뿌리도 파내고 돌을 골라냈다. 생땅을 뒤집어 거름을 섞었다. 두둑 두 개가 다듬어졌다. 동네에서 감자 씨를 얻어 와 심었다. 그 감자가 무성하게 자라 꽃을 피웠을 때는 경탄을 했다. 감자알에는 관심도 없었다. 하얀 감자 꽃에 반했다. 꽃이 피었다 지고 여름이 오자 무성하던 잎이 조금씩 쳐졌다. 하지 감자다. 여기저기서 감자를 캤다는 말이 들렸다. 감자를 캐야 하나. 농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망설이던 중이었다.
“아요. 감자 심었담서? 캤나? 하지 감자는 요때 캐야 한다. 토욜부터 장마 온단다. 적기에 안 캐모 감자는 썩는다.”
수영장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독촉에 딸과 나는 감자를 캐기로 했다. 먼저 감자 대를 뽑고 비닐을 벗겼다. 딸에게 호미로 감자를 상하지 않게 캐는 방법을 가르쳤다.
“엄마, 지렁이가 너무 많아. 지렁이 밭이 됐네. 달팽이도 있어.”
감자를 캐면서 딸은 연신 지렁이 때문에 기겁을 했다. 지렁이나 땅 강아지, 뒤쥐가 사는 땅은 살아있는 땅이다. 지렁이는 흙으로 덮어주고 감자알만 골라냈다. 알이 생각보다 굵고 많이 달려 기염을 토했다. 20킬로는 넘을 것 같다. 우리 집 양식할 감자는 충분하겠다. 팥죽 같은 땀을 흘리고도 기분 좋아서 헤벌쭉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성을 들이면 그만큼 보상을 준다. 힘든 일은 딸이 해결해 주니 감자 수확도 장난 같다.
감자두둑 옆에 심은 상추도 동이 오른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그 씨앗을 받아 또 심어도 될 것 같다. 그 옆에 붉은 줄기에 넓은 잎을 가진 근대도 자란다. 잎을 먹으면 근대가 되고, 뿌리로 먹으면 비트라는 채소다. 상추와 함께 심은 것이 붉은 근대였다. 처음에는 적 근댄 줄 모르고 치커리 종류 중 하난 줄 알았다. 쌈이나 겉절이로 먹었는데 특별한 맛은 없었다. 심심한 맛이랄까. 쌈 채소라고만 알았다. 이름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딸은 비트라 하고 나는 근대라 찾았다. 잎으로 먹으면 근대, 뿌리를 먹으면 비트라니. 비트라는 영어를 번역하면 근대라고 나온다. 비트나 근대나 같은 식물이었다. 잎을 먹느냐 뿌리를 먹느냐에 따라 이름이 다를 뿐이었다.
어쨌든 감자는 볼수록 대견하다. 근대와 상추는 식탁의 효자노릇을 했고 감자는 심어놓고 방치 수준이었으니 알이 굵고 많이 나와 고맙기만 했다. ‘딸아, 감자 삶아라. 굵은 것 몇 개 골라서. 저녁에는 감자로 해결하자.’ 그렇게 잠깐의 노동 후 찬물에 몸을 씻고 파근파근한 감자를 먹으며 더위를 이겼다. 올여름 입맛 잡아줄 감자도 두둑하겠다. 텃밭에 오이랑 고추도 주렁주렁하겠다. 냉동실에 부산 진이 네가 갖다 준 생선도 푸짐하겠다. 살가운 딸이 옆에서 심부름 다 하겠다. 돈 없어도 나는 재벌 마님 부럽지 않다.
202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