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무리>
3. 마무리
어떤 글을 쓰든 작가는 자신의 혼을 담아야 한다. 그것이 작가의 정체성이다. 순수문학이든, 참여문학이든 작가의 성향대로 글을 쓴다. 그 시대를 사는 작가는 그 시대의 변천사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게 된다. 작품의 바탕은 자연과 삶이다. 작가가 어떤 길을 가든 작가의 정체성만 확보되었다면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세태에 따라, 이해득실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는 작가라기보다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자신의 명예나 권력,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부류에 속하는 삼류 인생이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속성을 지녔다.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탐하고, 권력을 탐하는 것도 인간의 속성이다. 다만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어서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과 가지고 싶은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쟁취하려는 사람의 차이 아닐까. 그것은 사람의 그릇에 따라 다라 달라지는 삶의 형태라고 본다. 작가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나 열정을 가졌다고 본다. 그런 욕망이나 열정이 없다면 외길을 파야 하는 작가의 길을 가기 어렵다. 그것은 재능일 수도 있고, 고집일 수도 있고, 자신이 살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남이 봤을 때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도 본인이 결핍을 느낀다면 불행한 삶이 아닐까.
나는 작가로서 정체성이 확립됐는가.
자주 반문했던 적이 있다. 촌부로 자리매김하고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가. 그럴 수가 없었다.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으면 내가 없어져버리는 것 같았다. 절실하게 매달릴 것이 필요했던 적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었고, 구비문학을 접하며 살았고, 하얀 백지에 또박또박 머릿속에 든 생각을 옮길 때 나는 살아있는 것 같았다. 글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천형을 타고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언제였든가. 내가 쓴 글을 읽는 이의 마음을 풀어주기도 하고, 단단하게 조여 주기도 하는가. 나는 여운이 남는 글을 쓰고자 한다. 한 문장이라도 읽는 이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글쓰기를 하는가. 고민한다.
과연 내가 쓰는 글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일상의 넋두리에 그치는 글쓰기 같아서 절망할 때도 있었고 내가 가진 글재주를 제대로 갈고닦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절망할 때도 있었다. 내가 속한 세계는 작아도 그 작은 세계가 변화는 속도는 빠르다. 사람의 사고방식이 변해가는 것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그 변화되어 가는 현장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구나. 자각할 때, 내 얕은 앎으로 무슨 글을 쓰랴. 싶을 때 글쓰기가 두려웠었다.
그럴 때면 되새김을 줄기차게 했다.
그냥 이대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가진 소소한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안주하는 삶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속이 텅 빈 항아리 같았다. 순수문학이든 참여문학이든 내가 빠져서 쓰는 글, 내가 빠져서 읽는 책, 내가 빠져서 하는 사색에 무슨 의미부여가 필요할까. 내 글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삶이 보였다. 과거를 반추하는 것도, 현재를 직시하는 것도,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작가의 몫이라는 것, 작가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 길이 작가가 고민해야 하는 오늘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