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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ug 06. 2024

당신은 참 외로운 사람이야

 당신은 참 외로운 사람이야.  

         박래여


   

 칠월 첫날이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칠월, 장맛비가 내린다. 관절염약인 진통소염제를 먹었다. 낮에는 그럭저럭 지내는데 밤이 문제다. 사람의 뼈는 성인일 때 206개란다. 그 뼈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키고 뼈에 붙은 살갗을 콕콕 찌른다. 돌아누우려면 저절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이렇게 몸 전체가 아픈 것일까. 눈을 감아도 머릿속은 끊임없이 생각에 잡힌다. 비몽사몽간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눈은 무거워 뜨지 않는데 머릿속은 수 십 가지 생각의 줄기가 거미줄처럼 얽혀서 돌아간다.


 원인을 찾아본다. 내 몸이 아픈 것의 절반은 정신적 문제라고 본다. 무엇이 내면 깊숙이 숨어서 잠자리에 들면 몸을 괴롭히는 것인가. 해가 뜰 시간이면 신기하게도 쑤시고 아프던 뼈마디가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통증이 가라앉는다. 무릎을 구부리면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던 것이 스스륵 풀린다. 눈을 감았지만 날이 밝아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새벽 다섯 시가 되기도 전에 창밖은 희붐하다. 누가 나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통증의 원인은 내 속에 있다.


 어떤 사람은 아픔을 왜 견디고 사느냐. 수술해라. 하지만 수술한다고 통증이 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수술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자로 남은 생을 사는 것을 무수히 본다. 일상생활에 덜 아플 수도 있다. 약을 안 먹어도 견딜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또 긴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수술하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말도 듣는다. 타인의 의견은 의견일 뿐이다. 결정하는 것은 내 몫이다. 


 두 무릎에 줄기세포를 넣었다는 아주머니가 뻗정다리로 걷는 것을 본다. 허리에 핀 몇 개를 박았다는 아주머니 역시 기우뚱거리며 걷는다. 인공관절 수술이 잘 됐다는 아주머니조차 걷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일단 수술하면 남의 다리 같지만 통증은 덜 하단다. 아파서 못 견뎌 수술했다는 사람들, 나도 그 정도로 통증이 심한가. 두 무릎을 수술했다는 할머니는 내 걸음걸이 보더니 전보다 낫다면서 수술은 아직 멀었단다. 


 신기하게도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몸이 편해진다. 농부가 관절운동을 시켜주면 허리와 다리가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약을 안 먹어도 견딜 만하다. 요 근래 잠을 통 잘 수가 없어 어제부터 진통소염제를 먹는다. 약은 사흘정도 먹고 뗀다. 대부분 시골 노인들은 진통소염제를 상시 장복하고 산다. 약을 안 먹으면 몸이 아파 움직일 수가 없단다. 약기운으로라도 움직일 수 있으니 낫지 않느냐고 한다. 나도 약을 먹어야 할까. 보건소에서 상비약으로 지어온 진통소염제가 있다. 그 약봉지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약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약을 끊을 수 없게 된다. 가능하면 병원과 약과 멀게 살다 자연사하고 싶다.


 당신은 참 외로운 사람이야. 

 갑자기 이명처럼 귓가를 스친다. 외로운 사람 맞다. 늘 외로움에 시달린다. 남편과 남매의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데도 외로운 것은 왤까. 외로움을 천형이라고 말한다. 죽을 때까지 벗어버릴 수 없는 숙명 같은 것. 내 마음에 평정심을 가지려면 얼마나 마음공부를 해야 할까. 분노나 미움 같은 불편한 감정이 있는가. 그런 감정조차 없어져버린 것 같은데 나는 왜 늘 허기지듯 외로움에 시달리는 것일까. 울고 웃는 감정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 모든 것에 무심하다. 무덤덤한 일상을 사는 것 같을 때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어떤 아주머니가 말한다.

 당신은 거치적거릴 것 없이 사는 것 같아. 남의 눈치 안 보고 참 편하게 사는 것 같아. 

 그건 맞다. 자비심이니 보시니 하는 말조차 입에 담지 않지만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편하게 산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면 나를 보고 농부는 ‘당신은 부잣집 마나님 같다. 나는 검정 고무신 신은 마당쇠 같고.’ 우스개를 한다. ‘부잣집 마나님이 그 마당쇠가 없으면 살아낼 수 없으니 고맙지요.’ 내 응수에 농부가 빙긋 웃는다. 나는 부잣집 마나님이 맞다. 너른 잔디밭, 계절에 따라 피는 야생화, 사시사철 변하는 숲, 산골짝 하나를 정원으로 삼은 나는 마음부자다.


 숲은 말없이 나를 품어준다. 숲에서 위로받는다. 날이 밝으면 통증으로 고통스럽던 밤을 잊고 또 하루를 살아낸다. 외로움의 원인이 통증에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꾸는 꿈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잠을 자면서도 생각 속에 갇혀 있는 나를 의식한다. 나는 낮을 사는가. 밤을 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기나 하는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런 마음 외에 무엇이 있기나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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