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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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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ug 10. 2024

오이 나누기

 오이 나누기      


  사흘 만에 환한 햇살이 눈부시다. 눅눅한 습기를 빨아들이는 햇살에 창문부터 활짝 열고 빨랫줄에 빨래를 널었다. 내 잠을 깨우던 새소리도 숨을 죽였다. 날씨가 뜨거울 것 같다. 폭염주의보가 내렸나. 폭염이 와도 우리 집은 시원한 편이다. 오후 서너 시간만 냉방기를 돌린다. 격세지감이다. 이태 전까지 냉방기 없이 선풍기로 살았는데. 저녁이 되면 산바람이 시원하다. 숲이라 모기가 많아 어찌 사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의외로 모기약 없이 산다. 기온이 낮으니 모기가 서식하기 어려워서 그럴까. 


 고추가 붉어지기 시작한다. 매운 고추 약 오른 것은 따서 냉동실에 얼린다. 오이도 딴다. 오이는 줄 곳이 생겼다. 수영장 가는 길에 국숫집에 넣어줄 생각이다. 그 집은 잔치국수를 한다. 동네 할머니 따님인데 친정에 들어와 살며 국숫집을 열었다. 할머니의 막걸리와 손 두부는 젊은 날부터 입소문을 탔었다. 할머니는 내가 시집오기 전부터 동네 회관 옆에 붙은 가게에 세를 주고 구멍가게를 했었다. 구멍가게의 막걸리와 손두부가 진짜배기라고 등산객의 입소문을 탔다. 할머니도 팔순이 넘고 힘에 부치자 도시 살던 딸이 들어와 국숫집을 낸 것이다. 


 모전여전이라 하던가. 따님의 국수 마는 솜씨도 소문이 났다. 막걸리와 손두부를 곁들인 잔치국수, 점심시간이면 마을 회관 앞의 공터엔 차가 빼곡하다. 나는 그 집 국수를 좋아한다. 이웃사촌이라서 그럴까. 국수 좋아하는 줄 알아서 그럴까. ‘언니, 국수 좀 넉넉하게 담았는데.’하면서 곱빼기를 놓는다. 그 국숫집에 가면 배꼽이 톡 튀어나올 만큼 포식을 한다. ‘당신 그걸 다 먹을 수 있어?’ 농부가 의심의 눈으로 쳐다본다. ‘정이잖아. 국수는 금세 소화 되잖아.’ 나는 맛있게 양푼을 비운다. 


 날은 덥고 밥 차리기 싫을 때면 농부랑 그 국숫집에 간다. 손두부 한 모와 국수 한 그릇이면 저녁 안 먹어도 든든하다. 더울 때는 잘 먹어야 한다는데 차가운 것만 찾게 되는 것도 여름철이다.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없다. 그럴 때 국수가 최고다. 나는 전생이 중국 어느 소수민족에서 살았던 것일까. 국수가 주식인 그런 민족이었나 보다. 삼시세끼 밥을 먹으려면 짜증이 나지만 삼시세끼 국수는 질리지도 않는다. 국수를 아예 박스 째 사다 놓는다. 


 수영장 가는 길에 국숫집에 오이봉지를 넣어주었다. 예쁜 사장님은 반색을 한다.  

 이렇게 챙겨주시고, 국수 먹고 가세요.

 아니요. 운동가는 길입니다. 오이가 무공해라 그냥 씻기만 해도 돼요. 


 별 것도 아닌데 주는 마음이 즐겁다. 우리 집 오이를 선물 받은 사람들은 모두 시중에 파는 오이와 맛이 다르단다. 청정구역 일급수 물 먹고 내 사랑 먹고 자란 오이라서 그럴까. 나눌 수 있어 좋다. 오이야 많이 열려다오. 줘서 즐겁고 받아서 즐거운 오이가 되어주길 바란단다. 읍내 나가니 모두들 덥다고 난리다. 여름 한 철 수영장은 시원하고 좋은데. 의외로 사람들이 적다. 날마다 학생들이 생존 수업으로 두 시간씩 수영 연습을 한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자글자글한 수영장은 폭염도 힘을 쭉 빼고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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