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증 반납에 대해.
오랫동안 수영장에 오시던 칠십 중반의 할머니가 근래에 보이지 않았다. 소담소담 이야기도 잘 하시고, 남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던 푸근한 할머니셨다. ‘아푸지 마라. 아파감서 사는 나이라 쿠지만 나도 아푼 기 지겁다.’ 하시면서 봉을 타고 다리 운동을 하고, 수영을 하시던 할머니다. 아프신가. 돌아가셨나. 입원하셨나. 혼자 생각이 많았다. 항상 단짝으로 다니던 할머니께 안부를 물었다. ‘요새 나도 안 본지 오래 됐다. 바뿐갑제.’ 두 분이 토라지셨나. 반응이 신통찮았다. 그 할머니께서 수영장에 오셨다.
아지매 요새 통 안 보여 걱정했습니더. 아팠어예?
아이다. 오후에 자전거 타고 오다가 심이 빠져 주저앉았니라. 그날 이후로 오전에 수영한다. 영감이 태워주는데. 영감도 인자 운전 겁난단다.
올해 아저씨 연세가 어떻게 돼요?
83살 아이가. 애들이 운전면허증 반납하라고 난리다. 운전 하지 말라고 병원 가깝고, 시장 가까운 읍내로 이사했는데 아직 면허증 반납을 안했다. 영감이라도 운전을 해야 가까운 병원이라도 댕기제. 내 후년에는 운전면허증 재발급 하라는데. 반납하지 싶다.
아지매도 그 산골에서 이사 내리 오소. 나이 들모 병원 근처에 살아야 한데이. 별장겉이 살기는 좋더만 노인한테는 전디기 에롭은 데더마.
옆에 할머니가 끼어든다. 우리 집 단골 고객이시다.
저도 걱정이라예. 나이는 들고 운전하기도 겁나지만 차가 없으면 사람 구경도 못하는 곳이니. 그렇다고 동네로 이사하자니 이사하기도 쉽지 않고.
과반수이상이 노인인 나라에서 노인을 위한 길이 안 보이니 문제다. 노인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빈발하다며 노인은 운전 못하게 하자는 성토대회가 열리는데 처음부터 노인이었던 사람은 없다. 대가족이 한 집에 살면 문제없을 일이지만 핵가족 시대다. 노인 부부나 노인 혼자 사는 것이 일반화 된 사회다.
특히 농촌은 띄엄띄엄 떨어진 동네다. 마을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시골 구석구석 못 미친다. 심심산골에 노인만 사는 집이 많다. 외출 때마다 비싼 택시를 부를 수도 없고 하루에 두세 번 고작인 마을버스도 무용지물이기 일쑤다. 유모차를 밀 정도만 되면 마을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유모차조차 밀고 다닐 여력이 없는 노인은 삽짝 나들이도 힘에 부치는 것이 현실이다. 재가 요양보호사를 둔 집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병원도 다니고 생활용품도 부탁할 수 있지만 장기요양 등급을 받기도 어렵다.
농촌 현실이 이런데 무조건 노인은 운전대를 잡지 말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각 노인의 형편 따라 유동성 있게 운전면허증을 갱신해 줘야 한다. 노인일수록 안전운전에 더 예민하다. 생명과 직결된 것이기에 운전대를 잡으면 더 신중하다. 누가 교통사고 내고 싶어서 내겠나. 젊은이도 실수를 한다. 젊은이도 나잇살 늘면 노인대열에 선다. 누가 노인들은 운전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나. 그 사람도 몇 년 못 가 노인이 된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
나는 삼십 수년을 산골에 살았다. 승용차가 없으면 동네 다녀오기도 힘들다. 여태 승용차 덕에 불편을 못 느꼈지만 노인의 길을 걷게 되면서 운전문제가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인명은 재천이다. 읍내 정도만 오갈 수 있으면 된다. 노인의 길은 살아가는 폭이 좁아지는 길이다. 시골 노인은 도시 노인보다 더 폭이 좁다. 장거리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기껏 오가는 길이라 해 봤자 읍내 나들이다. 팔십대 중반이 평균 수명인 우리 동네는 읍내 나들이조차 못하는 노인도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저희들 살기도 바쁜 자식들 오라 가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되겠지. 산목숨은 살아가게 되어 있다. 뭘 걱정하나.
내가 나에게 속살거린다. 미리 걱정할 필요 없다. 운전면허증 반납하게 되면 또 다른 길을 찾게 되겠지. 아직 아파트로 이사할 생각도 없고, 산골을 떠나 동네로 내려갈 생각도 없다. 이것이 내 인생이고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