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대로 살 수 없는 삶
매미가 목이 틔었다. 매미소리와 새소리에 깨어난 아침이다. 사랑채 지붕 옆에는 능소화가, 마당가에는 범부채 꽃이 곱다. 범나비와 호랑나비와 벌이 윙윙 댄다. 비는 연일 오락가락하고 사방이 풀이라 습하다. 아침 일찍 감산에 다녀온 농부는 마당의 잔디를 깎는다. 비가 질금거리니 살판난 것은 풀이지만 고추가 걱정된다. 아직 붉은 고추 첫물도 못 땄는데 탄저병 기운이 돈다. 병들기 전에 약 오른 매운 고추부터 따서 냉동실에 넣는다. ‘야들아, 제발 병균 이겨서 우리 먹을 정도, 딱 열 근만 거두게 해 다오.’ 나는 고추가 주렁주렁 달린 고춧대를 쓰다듬으며 기도한다.
날마다 서너 개씩 따내던 오이넝쿨도 기운이 달리는지 주춤하다. 고맙다. ‘많이 열려줘서 선물도 많이 했네.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 오이 몇 개 따고 토마토 덩굴을 본다. 아침에 농부가 토마토 한 소쿠리와 가지 두 개를 따다 놓았다.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 두면 농부가 들며 나며 먹는다. 달걀과 버무리 해서 아침식탁에도 올린다. 서너 포기만 심어놔도 자급자족하고도 이웃과 나눌 수 있으니 아니 고마우랴. 시장에 나가면 이게 다 돈이다. 돌 들깨도 무성하다. 깻잎 장아찌도 담갔으니 더 욕심부리지 않기로 한다. 그래도 아깝다. 점심상에 올릴 풋고추 몇 개 따서 집안으로 들어온다.
오랜만에 대청소를 시작했다. 척추협착증에 디스크, 퇴행성관절염을 앓으면서 대청소하기도 힘에 겹다. 아들은 방학하면 오겠지만 딸은 주말에 오지 않을까. 은근히 딸을 기다린다. 시어머님이 날마다 나를 기다리던 심정을 알겠다. 전화기를 바라본다. 수시로 울리던 전화기다. 수화기를 들면 대뜸 ‘머 하노? 내리 왔다 가라.’ 툭 끊어지던 목소리, 나는 서둘러 시댁으로 향했고, 별 것도 아닌 일감을 놓고 나를 기다린 시어머님께 은근히 부아도 났었다. 그 심정을 내가 노인이 되어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힘에 부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남은 나날 노인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농민신문사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농민신문은 촌부가 된 이래 늘 내 숨통을 틔워주곤 하던 고마움 신문이다. 올해는 창작기금 신청에도 탈락되었다. 어디 돈 나올 구멍 없을까. 궁리를 하던 차에 원고 청탁을 받았다. 창간 60주년 특별 기고란에 실을 글이란다. 어찌 마다하랴. 신을 믿는다거나 믿지 않는다거나 할 필요도 없이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의 순환을 믿는다. 선한 마음으로 살면 간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는다든가.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지도 까마득하다. 그동안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고, 시부모님과 집안일과 농사일, 놉 뒤치다꺼리는 이삼 년 전까지 이어졌었다.
지난해 시어머님도 소천하시고 겨우 나는 자유부인이 되었다. 이젠 맘껏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주어졌지만 몸이 안 따라준다. 농부증이라고 하던가. 만성 성인병에 시달리는 나이가 되었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다 때가 있는 기다.’ 어른들 말씀을 떠올릴 때가 많다. 날밤을 새우며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농사일과 시부모님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치어 허덕댔다. 나는 몸도 정신도 지쳐갔다. 더 이상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때 두 어른이 돌아가셨다. 아흔 중반이 넘도록 장수하신 두 어른이니 아쉬울 것도 없지만 이젠 내가 영락없이 노인 길을 걷는다.
시어머님 임종 때 나는 어머님의 투명한 손을 잡고 ‘어머니 저 같은 며느리 만나 속 썩을 때도 많았지 예? 편안히 먼저 가셔서 자리 펴 놓고 기다려 주이소. 머잖아 저도 따라갈게 예. 다음 생에는 모녀로 만나 더 알콩달콩 살아 보입시더. 어머니, 철딱서니 없는 며느리 예쁘게 봐주시고 아껴주셔서 고맙습니더.’ 그런 인사를 했었다. 자주 어머님이 그립다. 내게 촌부의 자리를 지키게 해 주셨던 어른, 한 마디 툭 던지는 것이 비수 같았지만 그만큼 애정도 주셨던 어른, 살림 사는 것, 농사일하는 것, 그 모든 것을 나는 시어머님께 배웠다. 생활 속에서 체험해 얻은 지혜는 책 속에서 얻는 지혜와 다르다.
우리 네 삶은 은근과 끈기가 있어야 자신도 이웃도 건사할 수 있지 않을까. 성질대로 살 수도 없는 삶이다. 성질부리면 남보다 자신이 먼저 멍들지만 성질 죽이고 놓고를 반복하다 보면 모난 성질도 닳아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때쯤이면 삶의 의미도 깨치게 된다. 해마다 맞이하고 보내는 계절이다. 다년 생 꽃은 늘 제자리에서 피었다 진다. 우리 네 삶도 마찬가지다. 아등바등해 봤자 달라질 것도 없다. 오십 보 백 보 차이는 날지 모르나 근사한 수치에 불과하다.
대청소를 끝내고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 식혀놓고 찬물을 뒤집어쓴 뒤 큰 대자로 뻗었다. 등에 닿는 마루의 감촉이 좋아서 눈이 저절로 감긴다. 천창은 흐리고 창밖은 물소리 요란하다. 또 한 차례 소나기가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