몫과 그늘 1

단편 모음집

by 박래여

“으 헉!”

큰일 났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화장실의 세면대로 달려갔다. 수도꼭지를 확 털었다. 콸콸 쏟아지는 찬물을 얼굴과 목에 끼얹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본다. 얼굴 전체가 불에 달구어진 프라이팬이다.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아 얼굴을 담갔다. 숨을 멈추고 기다린다.

어떻게 하지. 무엇을 발라야지. 소주에 담그라던데. 아니야, 치약을 바르면 되었지. 얼굴 전체에 치약을? 그것도 아니야. 화상 연고가 있었던가. 아마 없을 거야. 비상약 사 본지도 까마득한 걸. 어쨌든 찾아봐야지.

그녀는 고개를 들고 숨을 확 내 쉬었다. 세면대 앞 벽에 걸린 거울 속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얼굴이 마주 본다. 머리 위에 달린 형광등을 떼어다 꼼꼼히 살피고 싶다.

괜찮겠지. 일단 기름기부터 제거해야지.

그녀는 손바닥 가득 오이비누를 칠해 싹싹 문질렀다. 향긋한 오이 냄새가 시원하다.

화기를 없애는 데는 오이 팩이 최고라 했지. 오이 팩을 해봐? 아니야. 연고를 발라야 해.

어쨌든 가장 화끈거리는 곳이 목의 울대 아래 숨통이다.

“괜찮나?”

또 일 쳤구나 하는 얼굴로 문 앞에 서 있는 그와 두 아이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 ‘너희 옴마는 물가에 내 논 알라 겉애서 내가 따라 댕김서 잔소리해야 한다. 안 그라모 일 친다.’ 그녀는 물기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웃음이 나오나? 빨리 병원 가자.”

“병원 문 닫았는데.”

“응급실은 말라꼬 있노.”

“응급실까지나? 하여튼 병원은 싫어.”

아이들은 이미 판정이 어떻게 날지 뻔히 안다는 듯이 실실 웃으며 제 방으로 내빼고, 그녀는 저 극성에 또 병원 신세를 져야 하겠구나 싶어 막막해진다. 평소 병원이라면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싫어한다. 소독 냄새와 땀 냄새가 합쳐진 것 같은 병원 특유의 냄새는 늘 그녀에게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길 가다가도 병원 근처에 가면 그 냄새 때문에 고개를 외로 꼬고 피해 달아나곤 한다. 누군가 병원에 입원해서 병문안을 가게 되면 얼굴만 살짝 들이밀었다가 나와 버리곤 하는 버릇도 그 냄새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이를 낳을 때도 병원 가기 싫어서 집에서 낳았을까. 아이가 서너 살 때였다. 고열에 시달리다 경기를 하여 종합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뇌막염으로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말에 입원을 시켰던 적이 있다. 엄마가 되어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힐난하는 의사의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도 코를 막고 병원 나갈 궁리만 했었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 옆에 있어야 할 때도 틈만 나면 병실 빠져나오기 급급해서 간호사로부터 뒷소리를 듣기도 했다. 병원이라면 무조건 멀리하고 보자는 것이 평소의 그녀다.

그녀가 병원 냄새를 못 견뎌한 것은 오래전부터 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20년도 전이었지.

"번 주에 내 여자 친구 소개해 줄게. 네가 보고 맘에 들었으면 좋겠어. 그쪽 집에서 결혼을 서두르는 모양이니까. 네 덕을 좀 봤으면 싶어. 어머니가 반대하실 거야. 누군지 알면 너도 깜짝 놀랄 거야. 어려서 시골에 살 때 우리 옆집에 살던 석이 기억나? 저네 어머니가 과부였잖아. 우리가 과부 딸이라고 많이 놀렸었지. 뜻밖에 우리 회사에서 만났다. 중학교 졸업하고 사환으로 입사했다가 야간 고등학교 졸업하고 정식 직원이 된 거래. 늘씬하고 예쁜 아가씨로 변했더라. 어려서도 예뻤잖아. 니가 질투할 정도로. 그 애를 다시 만나다니 난 내 눈을 의심했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꼬맹이였거든. 네가 좀 도와주렴. 그 집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 사이가 좋지 않았잖아. 어머니는 본데없는 순 쌍것이라고 상종을 말라했고, 석이 어머니는 반상의 구별이 없어진 지 언젠데 은근히 사람 괄시한다고 어머니를 싫어했지. 어머니는 말끝마다 뼈대 있는 가문에서 자란 여자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고 하시면서 은근히 집안 좋은 혼처 자리 구하고 있잖아. 그러니 어쩌겠어. 석이가 반 맘에도 차지 않으실 테고. 부탁 좀 하자. 내 편 되어 줄 거지?"

"그 언니 어머니도 알아? 석이 언니랑 사귀는 사람이 오빠란 걸?"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대. 놀래게 해 준다나. 석이 어머니는 걱정 마. 우리 아들 삼자며 좋아했잖아."

"어머니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생각하기 싫어 그녀는 거울을 확 문질러버렸다. 가슴 안에 새빨간 뾰루지가 돋아났다. 그녀는 화가 난 얼굴로 화장실을 나와 연고를 찾았다. 화상 연고가 어딘가 있긴 할 텐데.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그의 채근이 무서워서 그런지 화상 연고를 찾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무좀 연고가 있기에 이걸 발라도 될까 잠시 머릿속을 굴려 본다. 발에 바르는 무좀약을 얼굴에 바르면 얼굴에 무좀 걸리는 건 아닌가? 궁하면 통한다고 했지. 효능 부분이 적혔을 텐데. 그녀는 손가락만 한 연고를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깨알같이 적힌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안경을 쓰고는 다시 읽어보려고 했지만 눈이 침침해서 읽을 수가 없다. 설마 기름이 눈에 들어간 것은 아니겠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아이들을 불러 1도 화상이라 적힌 글자가 있는지 확인하라고 닦달을 한다. 신경질을 부리는 그녀와는 달리 아이들은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실실 웃으며 거실로 나왔다.

“1도 화상이라고 쓰였네.”

“그럼 됐어.”

연고를 낚아채듯 빼앗은 그녀는 화끈거리는 얼굴에 발랐다. 어디가 아픈 지 꼬집어 찾아낼 수도 없어 얼굴 전체에 무작 배기로 발랐다. 그녀가 하는 꼴을 지켜보고 섰던 그는 결국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독재 근성을 발휘한다.

“빨리 가자.”

“괜찮을 것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나서라니까.”

그는 벌써 의료보험 카드를 챙겨 문 앞에 서 있다.

어쩔 수 없군. 코 꿰어 끌려가는 송아지 꼴이 따로 없다고 구시렁거리면서 그녀는 앞섶이 다 젖은 허드레 옷을 벗었다. 20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을 찾아가면서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해 봤자 본전도 못 찾을 판이니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이득이다. 그녀는 창밖에만 눈길을 주고 있다가 슬쩍 운전석에 앉은 그의 얼굴을 보았다. 잔뜩 찌푸린 얼굴이 노릇 짱 하다. 놀란 건가? 밴댕이 소갈머리 아저씨가 아주 심각한 걸. 그녀는 그의 심각한 얼굴을 곁눈질하다가 푸들푸들 웃었다.

“왜 웃노?”

“당신 장인어른 생각이 나서.”

아버지도 생전에 늘 어머니께 그랬다. 어머니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맘 놓고 무엇 하나 맡기지를 못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대꾸도 못하고 있던 어머니는 슬그머니 일어나 부엌이나 뒷간으로 가면서 ‘무슨 남자가 밴댕이 소갈머리 같을까’ 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만 늘어 마누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고 구시렁거리다가도 ‘이리 안 오나?’ 소리엔 찍 소리도 못하고 대령하곤 했다. 어머니는 속에 있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사니 화병이 생겼다고 넋두리를 하시곤 했다. 가슴을 열어 보이며 명치끝에 바윗덩이 하나가 박혀 있는 것 같다고도 하고, ‘너의 아부지 땜에 편한 밥 한 술 못 먹고살았다.’ 하신다. 열네 살에 시집이라고 와 보니 올망졸망 어린 시누와 시동생에 시어머니의 고초 바람 시집살이에 애간장 다 녹아나고,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이젠 좀 편할런가. 했더니 ‘너의 아부지 시집살이가 더 혹독하다.’면서 육십 평생을 눈칫밥 먹고 산다고 푸념이 늘어지곤 하셨다.

그 뒤를 잇는 사설은 늘 반복이 가능한 것이다.

‘너의 아부지가 우리 잘 난 아들 그리 험하게 보낸 후론 내 발모가지에 족쇄 채우고 사는 기 낙이다. 인자 지나 내나 구들더께 될 날이 머잖았거마. 너의 아부지 강짜는 갈수록 심해지니 감옥살이 따로 없다. 젊어서부터 오데 나간다 쿠모 눈에 쌍심지 키더니 늙은 깨 더 하는 거라. 동네잔치가 나도 너의 아부지 허락 없이 나갔다간 다리몽둥이 분질러놓는다고 엄포니 이런 시집살이도 없는 거라. 내가 전생에 너의 아부지한테 무슨 죄를 그리 지었시꼬. 내 죽으모 염라대왕 앞에 가서 꼭 물어볼 끼라.’

그러던 어머니도 아버지 돌아가시자 날마다 눈물 바람으로 사신다.

그녀는 차창 밖으로 비치는 어두운 밤 풍경에 젖어들면서 욱신거리던 얼굴의 통증도 많이 완화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간간히 차들이 지나쳤고, 앞만 비추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희끄무레하게 드러나는 들녘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어둠에 가려 잠을 청하던 들녘과 가로수들이 갑자기 나타난 불빛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저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병원 가는 길은 고즈넉했다.

“많이 아푸나?”

“아니.”

“근데 왜 말이 없어?”

“꾀병하려니 쉽지 않아서.”

그녀는 실없이 웃었다. 평소 밝은 성격이지만 호들갑을 떨거나 꾀병을 부리거나 할 줄 모르는 여자란 것을 아는 그인지라 그녀가 입을 봉하고 있자 속이 많이 타는 모양이었다. 가속페달의 속도가 더해졌다. 그녀는 그냥 돌아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장난하느냐고 또 된소리가 나올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그를 위하는 길이고, 그녀를 위하는 길이었다.

읍내에 있는 종합병원이라고는 하나 중심가를 벗어나 산모롱이 하나를 돌아야 했다.

병원이 보였다. 병원은 황량한 산기슭에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반은 어둡고, 반은 밝은 불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어.’ 그녀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혀끝에 달싹거리는 말이란 놈이 병원을 보는 순간 따악 멈추어버렸다. 하얀 색깔의 육중한 5층 건물은 어둠 속에 우뚝 서서 그녀를 내려다봤고, 그 뒤의 검은 산 그림자는 사천왕처럼 무섭게 비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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