몫과 그늘 2

단편 모음집

by 박래여

병원은 불이 켜진 병동도 있고, 불이 꺼진 병동도 있었다. 정문의 수위실은 불이 꺼져 있고, 1층 입구에 있는 응급실 앞만 환하게 등이 켜져 있었다. 주차장엔 제법 여러 대의 승용차가 서 있기는 했지만 병원의 겉모습은 음침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돌아가고 싶어. 가기 싫은데. 왜 난 바보처럼 말도 못 해’ 그녀는 속상해하면서 생각했다. 저 속엔 아직도 깨어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앓는 사람들이 통증을 참으며 잠을 청하거나 복도를 오락가락하겠지. 환자복에 링거 병을 달고 비위 거슬리는 역한 냄새 폴폴 풍기며 누워 있겠지. 사람이 아프면 왜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날까. 저곳에 입원한 사람들 소원은 뭘까. 하루속히 건강한 사람이 되어 나가는 것이겠지. 천사 같은 간호사와 신의 경지에 오른 의사를 기대하며 자신의 생명을 맡기고 있겠지. 어쩜 누군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을지도 몰라 지금.


그녀는 온몸에 좁쌀 같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자꾸 팔을 쓸었다.

“여보! 집에 가자. 나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 고마 가자.”

그녀는 그의 팔을 잡고 애원을 했다. 그는 들은 척도 않으며 병원 마당을 들어섰다.

그녀는 어지러웠다. 이젠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예전에 병원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어지간한 것에도 놀라지 않게 단련된 성격도 어찌 보면 병원 근무를 한 탓이다. 종합병원에 첫 발령을 받고 출근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응급실 근무가 주어졌다. 하필이면 응급실 근무하자마자 교통사고로 죽은 주검을 처리해야 했다. 버스와 승용차가 충돌하면서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일가족이 몰살을 했다. 백일도 안 된 어린애만 겨우 목숨 부지를 했다. 그 주검들이 응급실로 실려 왔다. 머리가 홀랑 벗어지고 피범벅이 되어 도로 공사 덤프트럭에 실려 온 주검들은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처참했다. 짐짝처럼 얼기설기 던져진 주검들을 보자 사람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모두 피해 달아났다.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 의사의 뒤를 따라다니며 의사가 불러주는 대로 주검의 상태를 점검하여 기록을 하여야 하는 데. 선뜻 나서려는 간호사가 없었다. 간 크게 그녀는 자원을 했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 내야 할 일이었다. 노련한 의사는 처참한 주검들을 많이 대한 탓인지 담담했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구토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표백한 밀가루에 끈적거리는 붉은 색소를 넣어 반죽한 것 같은 트럭 바닥을 밟으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곳엔 삶과 죽음이 일직선을 긋고 있었다. ‘직시해야 돼.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 해. 내가 사는 길이야.’ 의사는 주검 하나하나를 뒤적이며 상태를 살피고, 훼손 상태를 불러 주었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냉정하게 의사가 부르는 대로 열심히 받아 차트를 작성했다.


덤프터럭에서 내렸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번질거렸다. 차트를 책상 위에 던지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뱃속에 든 것을 몽땅 토하고도 모자라 한 사흘 밥맛을 잃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공장에서 천정에 올리던 쇠뭉치가 떨어져 머리가 깨진 사람이 실려 왔을 때는 세숫대야가 흥건하도록 피를 받아내기도 했다.

일곱 살짜리 남자애의 눈을 감겨준 적도 있다. 누나, 누나 하면서 따르던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병실을 돌고 온 간호 사끼 리 간호사실에 모이면 특실에 있는 그 남자애 이야기로 한동안 병실 근무가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애 총각 되면 아가씨들이 줄줄 따를 거야. 어찌나 미남인지 나도 깨물어주고 싶다니까.’ 하다가도 안됐어. ‘그 애 오래 못 살 거야. 그 어린 나이에……. 불쌍해서 어쩌지?’하면서 목소리를 낮추곤 했다. 그 아이는 뇌종양이었다. 1차 수술을 했고, 혈관을 막았던 암 덩어리는 제거되었지만 아무도 생명을 장담하지 못했다. 길어야 한 달? 일 년? 4대 독자라는 아이는 젊은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귀하디 귀한 손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좋으니 낫게만 해 달라고 의사를 붙잡고 애걸을 하던 칠순의 노인들을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도 지금처럼 신록이 우거진 철이었을 것이다. ‘누나 나 오늘 퇴원해. 다 나았대. 집에 갔다가 통원 치료받으려 다닐 거야.’ ‘그래? 잘됐구나. 병원 오면 누나 찾아오는 거 잊지 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간호사들이 용돈을 모아 사서 퇴원 선물로 준 커다란 곰 인형을 안고, 실에 매달린 풍선을 들고, 부모의 손을 잡고 병원 문을 나서던 아이. 그 애의 마지막 모습은 환한 미소였다.


그날 저녁 무렵 간호사 당직실로 걸려온 전화는 다급한 그 아이의 엄마였다. ‘우리 아이가 머리가 아프다더니 의식을 잃었어요.’ 응급실에 연락해 구급차를 보내고, 담당 의사를 부르고, 원무과에 가서 낮에 퇴원했던 아이라며 재입원 절차를 밟았다. 다행히 그 아이가 있던 특실이 비어 있었다.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끝낸 아이는 곧바로 병실에 올라왔다. 의식이 돌아온 아이의 손을 잡고 물었다. ‘괜찮니?’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랑 헤어지기 싫었구나.’ 아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백납같이 하얀 피부는 너무 투명해서 빙어처럼 속이 환하게 보일 것 같았다. ‘마음 준비 단단히 하셔요.’ 의사의 선고였다. 다음 날 새벽 한 시경 아이는 잠자듯이 가장 길고 먼 여행길에 올랐다. 아무리 눈을 감기려 해도 눈이 감기지 않는다는 어머니를 대신해 그녀가 아이의 눈을 감겨주었다.


“안 내리 끼가?”

“응? 아, 내려야지. 그냥 가면 안 될까? 괜찮은데.”

“또 그 소리. 잔소리 말고 내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차 문을 열었다. 차문을 여는 순간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개구리 소리 자글자글 끓었다. 참 지독하다. 그녀는 개구리 소리보다 먼저 바람결 따라 스쳐가는 소독 냄새에 벌써 뒷골이 욱신거린다. 이젠 잊은 만도 한데. 그녀는 코를 문지르며 눈을 찡그렸다. 늘 내 주장 한번 못하고 마는 여린 성격에도 속이 상한다. 괜찮다고 그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언제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따르는 것이 습관화된 자신이 참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그녀는 인적이라곤 없는 어두운 병원 마당에 섰다. 어둠에 반쯤 가려진 육중한 병원 건물을 바라보며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느 병동에서 불빛이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종합 병원이라고는 하나 도시처럼 입원 환자가 많을 리 없으니 불 꺼진 병동이 많을 것이고, 불이 켜진 병동에선 입원환자와 가족들이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장승처럼 오도카니 서서 병원 건물만 쳐다봤다. 이젠 다 잊었다고 생각한 아니, 잊고 있었던 기억이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안 들어가 끼가?”

“가기 싫은데.”

“또 보래?”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응급실 문을 들어섰다. 응급실 계산대에 간호사 두 명과 젊은 의사가 볼펜을 굴리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떻게 오셨습니까?’ 용건을 물었다. 그녀는 비릿한 소독 냄새가 역해서 코를 막으며 접수 대 앞에 쭉 놓여있는 딱딱한 의자에 가서 앉았다. ‘기름에 데었어요. 얼굴 전체를.’ 그는 그녀 대신 간호사의 물음에 열심히 답을 했다. ‘원무과에 가서 환자의 이름을 접수하고 오셔요. 아주머니는 욜로 와 보셔요.’ 그는 원무과로 가고, 그녀는 의사 앞으로 갔다. ‘어디 봅시다.’ 젊은 의사는 그녀의 턱을 살짝 감싸고 어디가 아프냐. 어쩌다 그랬느냐. 질문을 퍼부었다. ‘안 하던 짓 하다가 벌 받았어요. 아이들 간식해 준다고 감자튀김 하다가 프라이팬을 뒤집었어요.’ 그녀는 대충 병원을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곤 토를 달았다. ‘별것도 아닌데 미안해요.’하면서. 응급처치 잘했으니 화상 연고나 한 개 사서 바르면 될 것 같다고 그녀 스스로 증상과 진단을 다 말해버리자 의사와 간호사는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보다 하하 웃어버렸다.


“의사 선생님 괜찮겠습니까?”

원무과에 다녀온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제가 보기엔 괜찮은데요. 혹시 모르니 이틀 치 약과 연고 드릴게요. 혹 내일이라도 물집이 생긴다거나 하면 바로 오셔요.”

“내가 아무리 말해도 우리 서방님은 믿지 않아요. 독재자거든요.”

“여자가 쎈찮기는.”

그의 말에 그들은 화끈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진료비와 약값을 지불하기 위해 원무과에 갔다.

“당신 돈 가져왔어?”

“아니, 당신 지갑은?”

“깜빡했어.”

그가 원무과 직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동안, 그녀는 얼마나 다급했으면 지갑 챙겨 올 생각도 못했을까. 병원 가자고 닦달은 숨이 넘어가더니, 구시렁거리며 병원 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때도 이런 어두운 밤이었지.

슬픔 한 움큼 목구멍을 데웠다. 이젠 잊어진 줄 알았는데. 아니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녀는 시끄럽게 우는 개구리울음이 영안실을 가득 메웠던 그때의 통곡 같았다.


그때는 응급실 근무를 끝내고 병동으로 옮겼을 때다. 그녀는 내과 병동의 중환자실 근무였다. 죽음을 바라보는 불치병 환자가 병실마다 꽉꽉 차 있었다. 병원 근무를 하다 보면 세상이 온통 성한 사람보다 아픈 사람만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아마도 그 아이의 시신을 수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즈음 그녀는 병원 근무에 염증을 내고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회의로 가슴이 답답했고, 병원 근무가 싫어졌다. 예를 들면 한 시간 전만 해도 링거액이 다 되어간다고 인터폰을 울리던 환자가 갑자기 호흡 곤란이 와서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하고, 약을 먹이러 갔다가 깊은 잠에 빠진 듯이 창백하게 주검이 되어 있는 환자를 만나면 당장 직장을 떼려 치고 싶어졌다. 특히나 밤 근무 시간이 가장 싫었다. 종합 병원은 하루 3교대를 했다. 밤 근무 조가 되어 오후 10시에 병원에 들어가 다음 날 아침에 퇴근을 하고 나올 때는 아침 햇살이 그렇게 맑고 신선하게 다가 올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귀신들과 싸우다가 파김치가 되어 나오는 것처럼 진이 다 빠지곤 했다. 중병을 앓는 환자들은 새벽녘에 저승사자의 초대를 자주 받았다. 어두침침한 복도를 외면하고 앉아 차트를 준비하거나 책을 보다가도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리거나 환자 가족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오면, 귀한 생명이 또 이승을 떠날 준비를 하는구나 싶어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먼저 벌렁거렸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에게 간호사란 직업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다들 그래. 익숙해지면 무관심해져.’ 병원 근무를 오래 한 선배 간호사들이 위로해 주었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죽음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강심장을 갖기엔 그녀의 감성은 너무 여리고 눈물이 많았는지 모른다.


그날 밤은 유난히 어두웠고 추웠다.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그녀가 근무하는 곳은 7층 병동이었다. 생명에 지장을 느끼는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없을 때는 한가한 틈도 있었다. 자정 무렵이었을 것이다. 간호사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다가 엎드려서 살포시 잠이 들었나 보다. 누군가가 그녀를 잡으려 쫓아왔다. 도망을 치려는 데도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시장바닥이었다.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어두운 골목을 정신없이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다 잠이 깼다. 책상 앞이었다. 펴 둔 책 페이지에 침이 흘러 얼룩이 져 있었다. 같이 근무하던 간호사도 병실에 갔는지 보이지 않고, 병실 복도는 괴괴했다. 그녀는 무섬증이 왈칵 들어 간호사실을 나섰다. 휴게실에 가서 자판기 커피라도 한잔 뽑아 마셔야지 싶어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끔 밤 근무 시간이면 혼자 휴게실을 이용하곤 했다. 휴게실 창가에서 바라보는 병원 뜰은 참 아늑하고 좋았다.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병원 뜰은 소나무며, 후박나무들이 아름다웠다. 더구나 비가 오는 날이면 감성적인 그녀를 더 감상적이게 했다.


그녀는 승강기에서 내렸다. 병원 현관 앞에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응급 환자가 실려 왔구나 싶었다. 그런데 거기 있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았다. 모두들 혼이 빠져버린 사람처럼 파리한 모습이지만 분명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눈을 끔뻑였다. 착각인가 싶어 다시 바라봤다. 외삼촌도 있고, 언니도 있었다. 아니 그곳엔 형부가 있었다. 형부는 현관 바닥에 쓰러질 듯 퍼질러 앉아 있는 사람을 부축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엄마!”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어머니 앞에 우뚝 섰다. 어머니는 허우적허우적 손짓만 했다. 그녀는 어머니를 붙잡고 소리 질렀다.

“엄마! 무슨 일이야? 형부 엄마가 왜 이래요?”

“처제, 이 일을 우짜모 좋노. 처남이, 처남이......”

그녀는 눈앞이 노랗게 변했다. ‘아닐 거야.’ 그녀는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한다고 나갔던 오빠가 피투성이가 되어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현실일 수 없어. 꿈을 꾸는 거야. 빨리 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 오빠. 도와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석이 언니랑 결혼하게 해 줄게. 눈 좀 떠 봐. 오빠, 엄마도 허락하실 거야. 엄마에겐 오빠가 전부잖아. 제발 눈 좀 떠 봐. 오빠, 내 말 듣고 있지?’ 그녀는 전신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오빠를 안고 오열하다가 까무러쳤다. 그날 새벽 오빠는 단 서너 시간을 버티다가 다시는 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백의의 천사라는 간호사가 되어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간절히 염원했던 그녀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사랑하던 오빠를 자신의 손으로 영안실로 옮겨야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간호사라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고, 병동을 가득 메우고 있는 냄새에 토사곽란을 하듯이 구역질을 해댔다. 그 후로 그녀는 붉은색만 보면 딱 질색을 하게 되었다. 물론 간호사란 직업도 버렸다.


그녀는 병원 마당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나왔다. 그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나온 김에 우리 데이트나 하고 가자. 아귀찜에 쇠주도 한 잔 어때?”

“또 봐라. 정신없이 군다. 누가 볼까 두렵네요.”

“보면 어때, 볼 사람도 없는 허허벌판인걸. 당신에게 우리 오빠 얘기 한 적 있었어?”

“아니, 결혼 초에 오빠가 있었다고만 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오빠 생각이 나서. 우리 오빠 참 멋있었는데. 다정다감하고 정다운 사람이었어.”

“나만큼?”

“피이, 착각도 자유다. 병원에 오면 오빠 생각이 나서 싫어. 내 탓이니까.”

“교통사고였다며?”


그랬다. 오빠의 죽음은 교통사고였다. 그날 퇴근길에 친구들이랑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날은 무슨 괴로운 일이 있는지 연거푸 술만 마셔서 같이 있던 친구들도 걱정을 했단다. ‘택시 잡아 줄까? 아니 걷고 싶어. 가을비 좋잖아. 비도 맞으며 천천히 걸어가야지. 가다가 우리 석이도 보고. 얀마, 지랄 좀 고마 떨어라. 애인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오빠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건널목을 건너다가 빗길에 과속으로 달리던 트럭에 치였다고 했다. 오빠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나뒹굴었고, 길 가던 행인이 발견하여 신고를 했다고 한다.

오빠는 그렇게 갔다. 친정 식구들은 오랫동안 불면에 시달려야 했다. ‘부모보다 먼저 간 놈은 자식이 아니라 원수다.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마라.’ 아버지의 함구령은 추상같았다. 가끔 어머니께서 한숨을 쉬듯이 그 녀석만 살아있었으면 하셨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가슴에 묻은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다. 말하지 않는 그 속내는 더 새까맣게 탔겠지만. 아니 그녀에겐 더 가혹한 짐이 지워졌다. 아무에게도 말조차 할 수 없는 것. 오빠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오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 말만…….


“오빠, 알아?”

“뭘?”

“어머니가 그 아주머니를 왜 싫어하는지? 어머니가 왜 시골 살림 다 뭉쳐서 도시로 이사 나왔는지.”

“우리들 공부 때문이었잖아.”

“아니, 어머니와 나만 아는 비밀인데. 석이 언니랑 결혼하는 거 어머니는 절대 반대일 거야. 아버지도 마찬가지겠지. 하필이면 그 언니야? 그 회사 내에도 여직원이 우글거릴 텐데. 참 무슨 악연인지 몰라.”

“이야기해 봐. 무슨 일인지.”

“이젠 오빠도 알아야겠지. 어차피 석이 언니라면 한바탕 난리가 날 테니까. 오빠가 판단해서 결정하는 수밖에 없겠지. 사랑엔 국경도 없다니까. 오빠도 알지? 어머니는 원래 내색하는 성격이 아니잖아. 아버지가 가끔 그랬잖아 어머니 보고. 여자가 좀 사근사근한 맛도 있어야 하는데 무슨 여자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밍밍하냐고. 하지만 난 지켜봤어. 그것도 아주 여러 번. 어느 날 새벽이었지 자다가 소피가 보고 싶어 깼어. 난 뒷간 가는 것이 무서워서 텃밭에다 볼 일을 봤지. 석이 언니 집이랑 우리 집 사이에 있는 텃밭 알지? 난 무심히 그 집을 바라봤어. 그때 문이 열리면서 누가 나오는 거야. 난 아버지란 걸 알았지. 내가 아마 초등학생이었을 거야. 어머니께 그 이약을 했어. 왜 아버지가 석이 언니 집 안방에서 자고 오느냐고. 어머니는 내 종아리를 때렸어. 봐도 안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고. 입만 뻥긋하면 어미 죽는 꼴 볼 거라고 엄포를 놓았지. 난 새파랗게 질려서 고개만 끄덕였어. 그때처럼 어머니가 모질어 보인 적이 없었어. 그리곤 이듬핸가 우린 보따리를 쌌어. 어머니는 차근차근 준비하셨던 거야. 어머니는 우리가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던 거야. 아버지께 따라 나올 생각이 없으면 아이들만 데리고 나가겠다고. 그래서 우린 도시로 나올 수 있었어.”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오빠는 아가씨 데리고 온다더니 왜 소식이 없냐며 채근하는 어머니의 말에도 싱긋이 웃기만 했다. 가을바람처럼 쓸쓸한 그 웃음처럼 오빠는 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먼 곳으로 그렇게 갔다.


그 해 겨울, 그녀는 병원을 떠났다. 더 이상 병원에 대한 미련이 남지 않았다.

“인자 가자. 빨리 타라니까. 맨날 저러니 내가 맘을 놓을 수가 있나. 세 살짜리 알라 물가에 내놓은 거 맹키로 따라 댕기야 하니. 도대체 언제 철들래?”

“뭐?”

그녀는 팡 터졌다. 병원 마당이 들썩거렸다. 개구리도 깜짝 놀라 숨을 죽였다. ‘병실 사람들 다 깨겠다.’며 그는 그녀의 등을 밀에 차에 올렸다. 그녀는 계속 웃었다.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연신 웃었다. 이 여자가 실성을 했냐는 그의 지청구를 듣고서야 겨우 웃음을 멈추었다. 차는 천천히 병원 마당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 묻혀가는 병원 건물을 돌아보며 지나가는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내가 왜 웃었는지 알아? 예전에 우리 아버지가 꼭 당신 같았어. 엄마 보고 늘 그랬거든. 물가에 내놓은 알라 같아서 맘을 놓을 수가 없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면 어머니는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아무 말도 않다가 뒤 돌아 서서 뭐라고 하시는 줄 알아? 남자가 쪼잔 해서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고.”

“나 보고 하는 소리지?”

“아니, 당신 보고 하는 소리 아니야. 절대로. 절대로는 중 담뱃대.”

그들은 웃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슬픔 덩이가 안개처럼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그 슬픔은 끝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앙금처럼 가슴 밑에 가라앉았다가 작은 돌멩이 한 개에도 안개처럼 피어오르리라는 것을. 하지만 살아가는 일은 산 사람의 몫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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