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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간절히 빈다.

by 박래여

간절히 빈다.

박래여



농부가 홑잎을 따 왔다. 봄에 나오는 첫 야생 산나물이다. 파릇파릇한 화살나무 어린잎은 만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나는 그것을 다듬어서 데친다.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점심 식탁에는 머위와 함께 홑잎나물이 놓인다. 고추장 한 숟가락 넣어 비빔밥을 하면 뱃속만 편한가. 마음까지 연둣빛 사랑이 된다. 야생 머위도 농부의 발품으로 식탁에 오른다. 우리 산만 한 바퀴만 돌아도 식탁이 풍요로워지지만 내 다리가 성할 때 이야기다.


농부는 틈날 때마다 산비탈이나 골짝에 들어가 산나물을 뜯어다 준다. 며칠 후면 제피순도 뜯어다 줄 것이다. 산중에 살면서 돈 안 들이고 발품만 팔면 식탁이 풍요로워지는 산나물이지만 몇 년 전부터 내게는 먼 당신이 되었다. 농부도 다리 힘 빠지면 누가 대신해 줄까. 쓸쓸하다. 국가 공식 노인의 길을 걷다 보니 다리 힘 빠지는 세월을 산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자주 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지. 다 살게 되어 있어.’ 중얼거릴 때도 있다. 지천에 늘린 것이라도 거둘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표고버섯 종균도 내 발길이 닿는 자리에 묘목을 세우기로 했다.


나는 야생산나물을 좋아한다. 야생에서 나고 자라는 것은 민초의 넋 같다. 나도 민초다. 아니 야생이다.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산기슭에 터 잡고 살면서 알게 모르게 야생에 길들어 산다. 무던하게 젖어 들어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다.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체감하면서 나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을 나이라서 그럴까. 세상만사가 참 헛것 같다가도 또 그것이 진실 같기도 하다. 삶은 진실이기도 하고 삶은 헛것이기도 하다.


홑잎나물로 저녁을 먹고 인터넷으로 저녁 뉴스를 본다.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의 헌재 평결이 나온단다. 몇 개월을 시국은 불안전하고 불신의 늪에 빠져 있었다. 대통령의 파면을 요구하는 측과 대통령의 사면을 요구하는 측의 공방으로 민심조차 편 가르기로 뜨거웠다. 일주일간 거대한 산불이 산야를 집어삼켰다. 모두 발을 동동 굴렀다. 민심조차 화마에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겨우 산불이 잡혔다. 헌재는 판결을 내리겠단다.


개인적 소회



저녁 뉴스를 본다.

탄핵이냐 면죄부냐

내란을 일으킨 여당 정권은

주객을 전도시켜 오리발을 내밀며

야당 정권을 내란범으로 몰며

배 째라는 식이다.


권력에 빌붙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겠다는

양심조차 시궁창에 던진

자긍심도 자존심도

두뇌도 없는 허깨비의 춤

이제 사라져야 한다.


헌재여 제발 올곧은 선택을 하라

국민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지 마라

그대들도 국민이다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탄핵 파면 결정을 망설이지 마라.


어떤 경우든 내 탓이요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개인보다 나라와 국민을 먼저 챙기는

큰 그릇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뉴스를 보면서 한탄한다

어리석은 짓을 벌여 놓고도

인간의 이기심은

반성할 줄 모르는구나 싶어

개인적 소회 한 줄 푼다.


다음날, 2025년 4월 4일 아침,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다. 윤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될 것인가. 기각될 것인가. 기로에 놓인 날이다. 내란죄가 성립될 것인가. 쇼로 그칠 것인가. 일을 벌인 사람은 반성이 없고, 그 일에 치어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사람은 불안하다. 살리느냐 죽이느냐. 나는 제 잇속 챙겨 비상계엄을 선포한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본다. 그 사람이 진정 국민을 위하고, 나라의 부흥을 바란다면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야 인격이라도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전 11시 20분경 발표가 났다. 헌재는 조목조목 내란죄를 나열하며 법을 어긴 증거를 제시한 후 판결을 내렸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속이 시원하다. 인터넷 뉴스를 지켜보던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옳은 판결을 해 준 헌재판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보다 자신을 내세웠고 오만방자했다. 국민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국민이 등을 돌리게 만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고 억울하게 당했다고만 생각하지 않을까.


불신과 불안으로 일상이 노곤했던 몇 달이 지났다. 이제 모두 안심할 수 있을까. 잃어가는 밥맛이 돌아올까.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물가가 내려올까.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민초가 다시 제 자리를 찾아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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