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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공부하는 날

by 박래여

공부하는 날


사방 댐 공사도 마무리를 지었다. 폭우가 쏟아져봐야 사방 댐 공사가 잘 됐는지, 잘 못 됐는지 알 수 있겠지만 시끄러운 기계음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산불로 인해 초토화된 마을들 덕에 공사 현장에 몇 개의 소화기가 뒹군다. 돌 깨는 작업을 하면서 불꽃이 튈 수 있기에 배치한 것이겠지만 그 소화기를 보면 내가 산불 취약 지구에 산다는 것을 체감한다. 공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뒷정리는 남았는지 쓰레기와 함께 소화기가 뒹굴고 있다.


저거 우리 주고 가면 좋겠다. 갖고 가 봤자 쓰지도 않을 건데.

감독한테 말해 보람.


나는 물건을 보면 마음이 생긴다는 고사성어 견물생심(見物生心)을 떠올린다. 산불은 예측불허다. 소화기를 몇 개 갖추고 있지만 불안하다. 산불취약지구에 산다는 것이 올해만큼 불안했던 적도 없다. 막상 소화기를 달라고 할 감독관도 담당 공무원도 만나기가 어렵다. 굴착기 기사만 마무리 작업한다고 바쁘다. 공사현장에 누가 오가는지 주시하다가 ‘돈 몇 푼 한다고 공짜를 바라나.’그만 욕심을 내려놓는다. 푸름으로 채워지는 숲이 말랑말랑하게 웃는다.


수영장이 일주일간 휴식에 들어갔다. 수영장 주변이 온통 축제장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의병제로 불렀지만 몇 년 전부터 홍의장군 축제라나. 왜 의병제란 이름을 바꿨는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의병 곽재우 장군이 붉은 옷을 입었다 하여 홍의장군으로 불렸다고 한다. 꽃철이 되면서 지자제는 온통 축제장 만들기에 혈안인 것 같다. 축제를 벌이면 그 지역 주민에게 어떤 혜택이 있을까. 사방에서 장사꾼들이 몰려들고 관광객이 모여든다지만 축제장에 가 보면 구경꾼보다 장사꾼이 많다. 바가지요금 근절이라는 팻말만 붙었지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흥청망청 돈 쓰게 하는 축제장이지만 사람들은 씀씀이가 얄팍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호주머니 열기를 두려워한다.


대통령은 파면당했고, 대통령관저에서 나왔다지만 나라는 여전히 어수선하다. 금값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물가는 치솟기만 한다. 음식 값도 마찬가지다. 수영장이 쉬니까 밖에 나갈 일도 없다.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던 나는 집에서 빈둥거리자 관절이 비명을 지른다. 누가 그랬다. 걸어야 산다고. 게이트볼장이 유행을 하더니 그라운드 골프장으로 바뀌고 다시 파커골프장이 유행을 한다.


아랫마을 공장 부지에 파커 골프장이 생겼다. 주차요원도 배치된 것을 본다. 날마다 성업 중이다. 그 집 사장의 사업수완에 놀란다. 선경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돈 버는 수완이 좋은 사람 같아 감탄한다. 공장부지 주변의 땅을 사서 늘리고 잔디를 심어 가꿀 때만 해도 그것이 골프장으로 바뀔 줄은 몰랐다. 기존 공장이 사양길에 들자 파크 골프장으로 바꾸어 탔다. 사업을 하는 사람의 목적은 무엇일까. 돈을 버는 것일까. 성취욕일까. 베트남에 공장을 짓는 농부의 친구 역시 돈보다 성취욕인 것 같다. 넌지시 노욕이라고 퉁을 줄 때도 있지만 노욕도 부릴 만하니 부리는 것이리라.


북창을 연다. 사방댐 공사현장에 놓인 소화기에 또 눈이 멎는다. 별 거 아닌데 욕심을 낸다. 내겐 필요하고 공사장엔 쓰임을 다한 것 같아서 욕심이 나는 걸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내 것 아니면 욕심내지 말자.’ 나는 견물생심(見物生心)에 이어 또 하나의 고사 성어가 떠오른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고사성어다.


공사장 곁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소화기 덕분에 고사성어 두 개는 확실히 익혔다.

공부하는 날, 이면지에 見物生心과 小貪大失을 크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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