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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찻잎을 비벼 널고

by 박래여

찻잎을 비벼 널고



찻잎을 따는 철이다. 올해는 녹차보다 황차를 많이 해야겠다. 찻잎을 덖고 비비는 과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덖음 차인 녹차는 장복하면 몸이 냉한 체질로 바뀌지만, 발효차인 황차는 장복해도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설이 있다. 사람 몸은 냉하면 병에 취약하단다. 속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엄마는 녹차보다 황차가 나아. 황차 많이 만들자. 녹차보다 만들기도 수월하잖아. 엄마가 만든 황차 맛이 최고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리하여 덖음 차보다 수월한 발효차를 세 번째 만들고 있다. 주말을 이용해 딸이 찻잎을 따 주면 하룻밤 시들게 널어뒀다가 다음날 비빈다. 진액이 나오도록 비비는 과정에서 내 땀도 섞인다. 보통 세 번 비빈다. 첫 번째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오도록 비빈 찻잎을 소쿠리에 널어 편다. 음식냄새 같은 잡냄새가 안 배는 장소에서 띄운다. 다음 날 한 번 더 비벼 바람을 쐰 후 다시 띄운다. 발효가 잘 된 찻잎은 진한 고동색이다. 그것을 펴서 말리면 된다. 햇볕에 널어 말리기도 하고, 그늘에서 일주일 정도 자연바람으로 말리기도 한다.


그러나 비비는 과정이 힘들어 한 번으로 끝내고 자연발효를 시켜 말려서 들이기도 한다. 지난해 황차가 참 맛있었다. 올해 황차는 정성이 덜해서 그런지 내 입에 조금 부족하다. 딸과 농부는 맛있다는데도 내 마음에 안 차서 다시 황차를 만든다. 이번에는 제 맛이 나야 할 텐데. 첫 번 진액 나오도록 비벼 그늘에 펴 놨다가 갈색으로 약간 변하면 다시 비벼서 펴 널기를 반복했다. 마무리를 지어 그늘에 널어놓고 이 글을 쓴다.


딸은 찻잎을 따고 있다.

엄마, 황차도 힘들잖아. 이번에는 백차를 만들지.

백차는 찻잎을 비비지도 덖지도 않고 그늘에서 말리면 된단다.

살청은 해야지.

몰라. 일단 만들어 맛을 봐야지.


딸은 하동 차 축제에서 백차를 사 왔다. 백차를 만드는 차인이 방법을 알려주더란다. 백차를 만들게 된 계기는 뭘까. 차 농가도 주인이 늙는다. 수제 차 덖고 비비는 과정이 힘들어지면서 대부분 기계를 들여 차를 덖는다고 했다. 수제 차 만드는 장인도 있긴 하지만 차 농가도 변하고 있다. 차 농가도 먹고 살아야 한다. 차를 판매해야 생계를 유지한다. 맛있는 차, 일반인이 선호하는 차, 가격은 저렴하고 맛은 좋은 차를 보급할 수 있어야 차 농가도 살아남을 것이다. 고민 끝에 백차를 만들게 된 것은 아닐까. 찻잎 자체만으로 차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목적이 아닐까.


백차는 찬물에 우릴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옅은 옥빛에 맑고 은은한 차향이 좋았다.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렸더니 황차 색깔이 났지만 맛은 부드러웠다. 괜찮았다. 나는 덖음 차와 발효차를 만들고 나면 몸살을 한다. 내가 몸살을 하자 농부는 내년에는 차도 안 만들어야겠다고 하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


아직 나 안 죽었거든. 몸살은 쉬면 돼. 우리 먹을 차는 내 손으로 만들어야지. 딸과 당신이 도와주면 돼. 딸이 한다잖아. 딸이 만든 덖음 차도 맛있잖아. 황차도 딸이 만들면 돼.


큰소리 쳤다. 차밭 조성만 해 놓고 차 농가로 거듭나지 못하지만 대순가. 차를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것만도 고맙다. 녹차나 황차는 싸지 않다. 차를 빗는 공정과정을 아는 사람은 차가 비싸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고물가시대다. 차를 즐기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밥 먹고 커피 한잔이면 간단하지만 차는 시간을 두고 여유로워야 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시간이다. 손바닥에서 풋풋한 차향이 난다. 컴퓨터 좌판을 두드리다 말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싼다. 차향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싱싱하고 맑은 기운이 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다.


이제 널어둔 차를 한 번 더 비빌 차례다. 세 번 비벼서 널었다가 물기 가신 후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키면 끝난다. 세 번째 만든 황차 맛은 어떨까. 벌써부터 궁금하고 입안에 달착지근한 맛과 은은한 차향이 감돈다. 커피 전문점이 끝도 없이 생겨나는 시점인데 전통 찻집도 그렇게 늘어나 커피처럼 사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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