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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값

<푸름살이 시>

by 박래여

꼴값

박래여


건고사리 부치러 우체국 갔다

무게보다 부피가 큰 고사리 박스 놓고

얼마예요

오천 원입니다

삼천 오백 원 하더니 왜 오천 원이죠

올 때마다 설명 했잖아요

서울에 부칠 때도 오천 오백 원이었는데

처음부터 깎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짜증내는 여직원

그렇지 까마귀 고기는 내가 먹었지

내가 내 꼴 봤을 때

참 꼴값 한다는 생각 지울 수 없었다.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야 할 삶을

말없이 품어만 주는 산보고 숲보고 풀보고 살았더니

사람 만나면 무슨 말 해야 할지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어제 만났던 사람 오늘 만나도

어제 했던 말 오늘 또 하고

익숙했던 이름 금세 까먹고 허둥지둥

까마귀 고기 너무 자주 먹는 꼴

미안하단 말 던지고 우체국 나섰다.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

마음이 육체보다 먼저 늙어서

푼돈 천원, 혹은 오백 원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내 꼴이라니

사람은 늙어갈 수록

마음도 곱게

말씨도 곱게

행동거지도 반듯하게 해야 할 터인데

아직 망령 날 나이도 아닌 내가 망령 난 꼴이니

문득, 만사 접고 먼 길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 몹시 그립다.


* 위의 시를 시밭에서 꺼내 읽으며 싱긋 웃습니다.

아침에 딸의 하소연이 목에 걸렸거든요. 삼십 대 후반인지 사십 대 초반인지 모르지만 딸의 상관이라는 공무원이 딸의 옷 입는 것을 가지고 주의를 주더랍니다. 팔이 드러나는 민소매나 나시는 안 된다. 긴 치마 입어라. 사사건건 속을 뒤집는다네요. 공무원 수칙에 복장 규정이 있는 것인지. 정장, 교복 등, 무의시 속에 깃든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지. 옷은 자기 취향이잖아요. 남의 눈에 야하게 보이지 않고 깔끔하게 입으면 되잖아요. 딸의 옷맵시가 독특해서 시샘을 하는 것인지. 미학 전공인 딸은 옷 입는 감각이 남달라요. 속상해하는 딸에게 말했어요.

"그 공무원은 자기 업무는 제대로 못하면서 윗사람들에게 손바닥은 잘 비비겠구나. 괜찮아. 예쁘기만 한 걸. 그 상관이 또 지적질 하면 싱그레 웃으며 '공무원이 되면 당신처럼 옷 입는 것까지 간섭받아야 하나요? 저는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이거든요. 언제든 사표내고 나갈 수 있어요. 한번 만 더 옷 입는 것 지적 질하면 할랑할랑한 나비 옷 입고 다닐 겁니다.'염장 질하라고요.

지금이 어느 시댄가요. 21세기에 새파란 공무원이 그렇게 고착된 사고를 가졌다니 한심하네요. 인공지능 에이아이도 주인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세상인데 시골구석에 박혀 있는 공무원의 사고가 저렇게 고리타분하다니. 어미가 너무 튀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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