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Apr 10. 2022

27. 범이 청년과 저녁을

범이 청년과 저녁을    

 

 저녁이다. 범이 청년이 회를 잔뜩 포장해 왔다. 통닭과 도넛도 싸 왔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와? 부모님은 어쩌고?’ 식탁에 포장을 풀어 차리며 물었다. 저녁 무렵 청년의 전화를 받았다. 회를 사온다 기에 저녁을 먹여 보낼 생각에 밥을 지어놓고 기다렸었다. 청년이 싸온 포장을 열며 놀랐다. 횟집에서 시켜 가져왔다는데 셋이 먹어도 다 못 먹을 정도로 푸짐하다. 수시로 느끼는 것이지만 청년은 덩치에 비해 씀씀이가 크다. 반색을 하면서도 ‘돈 아껴야지.’ 나무란다. 


 청년은 정이 있다. 천방지축이긴 하지만 젊어서 아닐까. 우리만 맛난 것 먹기 미안하다며 부모님도 같이 모시고 오지. 하자. 부모님 드실 것은 따로 주문해서 갖다 드리고 오는 길이란다. 저녁 먹고 가라고 청년을 잡았다. 푸짐한 회와 딸려온 반찬만으로도 식탁이 꽉 찬다. 초밥까지 있었지만 새 밥 지은 것으로 회덮밥을 만들어 줬다.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은 다 맛있다며 무척 잘 먹어서 한 정 더 간다. 


 청년은 우리에게 잘한다. 농촌에 자리 잡도록 도와준 고마움을 잊지 않겠단다. 고사리 농사와 산초 농사에 이어 단감농사도 청년에게 물러줬다. 농부와 청년은 멘토와 멘티다. 우리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서슴없이 불러준다. ‘우리는 아들 같은 범이를 곁에 둔 것이 좋고, 범이는 좋은 스승을 곁에 둔 것도 복이다. 열심히 배워. 농부 말 귀담아들으면 농사 제대로 지을 거야.’ 청년은 ‘넵! 열심히 따르겠습니다.’ 흔쾌히 대답한다. 


 농부와 청년은 커피를 마시며 단감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며칠 동안 농부가 감나무 전지를 도와주고 거름 내는 것도 도와주었다. 유황을 언제 어떻게 쳐야 하는지 묻는다. 잎눈이 나기 직전에 유황을 쳐야 한다고 미리 준비하라고 했지만 귓등으로 들었던 모양이다. 유황 준비가 안 됐단다. 우리는 유황을 만들어 친다. 친환경농법 약제 회사에서 여러 가지 재료와 필요한 오일을 구입한다. 그것을 커다란 통에 배합해 놓고 발효시켜서 쓴다. 완성된 유황을 사다 쓰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약 효과도 직접 만들어 쓰는 것에 비할 수 없다. 


 결국 농부는 작은 전등을 들고 창고에 다녀온다. 우리가 만들어 둔 것으로 한 번은 칠 수 있을 것 같단다. 유황 합제 할 재료가 도착하면 배합하는 법도 가르쳐주겠단다. 청년은 거듭 고맙다며 돌아갔다. 참한 처녀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 박사학위까지 가진 청년이 농사꾼으로 살겠다니 기특하다. 노인만 있는 마을에서도 청년은 귀한 존재다. 더구나 부모님과 같이 도시에 살다가 귀농한 경우다. 청년의 부모님은 농사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청년에게 든든한 울타리는 되어주지 않을까. 청년의 어머님이 더 고마워한다. 


 몇 년 전, 처음 시골로 이사 왔을 때는 먹고살 길이 막막했단다. 우리 고장이 아니라 다른 고장에 자리를 잡았지만 텃세에 밀려 이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단다.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우리에게도 불신이 먼저였다. 사람에게 한 번 당해 본 사람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 쉽지 않다. 모자가 우리 집 일꾼으로 와서 고사리 작업을 도와주면서 믿음을 가지지 않았나 싶다. 우리도 그때 고비였다. 나는 몸이 아픈데도 고사리 작업과 단감농사에 일꾼 뒷바라지도 해야 했었다. 시부모님도 힘들게 했고 일꾼은 귀하고, 사면초가에 빠져 허덕거릴 때였다. 마침 청년이 우리 집을 찾아오면서 일꾼 한 명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일을 시켜보니 눈썰미도 있고 몸을 사리지 않고 부지런했다. 됐다. 싶었다. 


 예전부터 농사꾼이 부지런하면 제 식솔 밥 굶길 일은 없다고 한다. 부자는 못 돼도 신간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농촌이라고도 한다. 때 빼고 광낼 일은 별로 없는 농촌 삶이지만 큰 욕심 안 부리고 살 수 있는 터전이기도 하다. 청년이 부지런하다고 소문나면서 여기저기 일감이 많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일꾼 귀한 농촌이니 당연지사다. 이 논 부쳐 달라, 저 밭 부쳐 달라. 동네 사람들이 서로 소작 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거절하기도 힘들다는 청년이다. ‘좋은 처녀 소개해 주는 집에 우선권을 주면 되겠네.’ 우스개를 하고 싶어도 상처받을까 봐 듣기만 한다. 


 어디 시골로 시집오려는 처녀 없을까. 청년에게 귀농 청년 모임도 있으니 여기저기 발품 팔아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처녀 있으면 앞뒤 재지 말고 당겨보라고. 판소리에서 추임새가 빠지면 재미를 감한다. 짝 찾는 청년이나 처녀에게도 주변에서 흔들어주는 추임새가 필요하다. 중매쟁이 한 번 되어볼까. 내 주변의 처녀들을 물색해 봐도 참 귀하다. ‘요새 농사꾼에게 시집가려는 처녀가 어디 있겠나. 가방 끈 긴 청년이 농사짓는 것도 이상타.’는 반응이다. 월하노인이 점지한 짝이 어딘가 있겠지. 너무 늦지 않게 짝이 나서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6. 조리돌림 하는 태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