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촌부 일기

모과 향을 맡으며

by 박래여

모과 향을 맡으며


모과, 참 못생겼지만 향은 기막히다. 모과를 땄다. 농부는 모과차와 모과주가 바닥났다며 담그잔다. ‘저 많은 걸?’ 올해는 단감농사 실농했고, 단감 주문도 뚝 떨어졌다. 단감주문 들어오면 모과 두어 개 넣어주는 재미도 있었는데. ‘강 처사가 올해는 모과 달라는 말을 안 하네. 다른 집에서 구했나. 그 집도 모과차 담그는 것 포기했나.’ 혼잣말을 했다. 나목의 가지에 노랗게 달렸던 모과를 따 놓고 ‘저걸 어떻게 하지?’ 이 궁리, 저 궁리하는 참인데 농부가 모과 차와 술이 없다며 담그잔다. 엄두가 안 났다. 나는 모과든 매실이든 효소를 담가만 놓지 잘 먹지 않는다.


창고에 그득했던 효소단지도 시나브로 비워졌다. 농부의 지청구도 따라붙어 ‘먹지도 않으면서 담그기는 왜 담구냐? 인자 이런 거 담그지 마라. 언제 담갔는지,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설탕과 과실주 사는 돈은 돈 아니가?’심심찮게 욕을 먹었다. 일꾼들 쓸 때는 음료수 대신 효소 액을 물에 타서 대령했었다. 일꾼들은 돈 주고 산 음료수보다 내가 직접 담근 효소 액을 더 좋아했다. 음료수 값을 아낄 수 있었다. 평소 담금 주를 즐기고 매실, 유자, 모과 등, 진액에 물을 타서 음료수처럼 마시는 사람도 농부다. ‘단 걸 저리 먹어도 당뇨 안 걸리는 게 신기해.’ 할 정도로. ‘먹기는 자기가 다 먹으면서 왜 내 탓을 하냐.’ 구시렁거리면서도 제철에 거두는 매실이나 모과를 버릴 수가 없어 또 부지런을 떨곤 했었다.


그러나 내 몸 건사도 힘들어지면서 모과 담그기도 포기하고 싶었다. ‘안 담글 거야. 누가 모과 달라면 따 가라고 하든가. 그냥 나무에 그대로 둬. 익어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예쁘잖아.’ 그랬는데 농부는 농사를 확 줄이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사사건건 잔소리도 늘었다. 텃밭농사도 농부 몫이 되었다.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농부가 모과를 땄다. 모과차와 모과 주를 담그잔다. ‘창고에 없어? 그 많은 걸 다 먹은 거야? 술은?’ 없더란다. ‘난 칼질 자신 없어. 당신이 하든가.’ 농부는 믿는 구석이 있다. 주말이 되었다. 농부는 아침부터 모과를 수돗가에 내 놓았다. 딸은 모과를 씻어 물기를 빼고 농부는 숫돌에 칼을 벼린다. 노랗게 익은 모과는 무처럼 잘 썰어진다. 덜 익은 푸른 모과는 칼이 안 들어갈 정도로 야물지만.


나는 감독관으로 등극했다. ‘씻어 말려둔 질그릇 항아리와 유리항아리, 설탕은 창고에 있다. 꺼내서 먼지부터 닦아라. 모과 씨와 상한 부분은 베어내야 한다.’ 기타 등등. 잔소리를 시작한다. 농부는 모과를 사등분으로 자르고 딸은 속은 파내고 나는 칼질을 했지만 금세 손목 증후군으로 포기한다. 모과는 익을수록 향기가 진하다. 사람도 노인이 될수록 모과 향기 같은 좋은 향기를 뿜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향기를 낼 수 없다. 인위적으로 향수를 뿌리면 몰라도. 모과 두어 개 씻어서 책장에 올렸다. 시부모님 방에 놔두던 모과처럼 내 방에도 놓게 될 줄이야. 그렇게 모과는 담금 주와 모과 효소로 나누어졌다. 모과를 버리기 아까워 몽땅 썰었더니 양이 많다. 담금 주는 해결했지만 효소는 설탕이 모자란다.


내일 설탕 한 포대 사야겠다.

올해는 유기농 유자가 왜 안 오지?

맞다. 완도 선생님! 선생님이 아프신가? 유기농 유자농사 포기하셨나? 이젠 연세도 있으니. 나도 택배보내기 쉽지 않아 대충 살잖아. 작년에 담근 유자청 다 먹었어?

조금 남았더라.

대단하다. 10키로가 넘는 유자청인데. 선생님 생각을 못 했네.


단감이 없어서 아쉽다. 우리 집 단감 맛있다고 좋아하셨는데. 선생님 근황이 걱정된다. 아마 여든은 넘었지 싶다. 문학으로 맺은 30년도 더 된 인연이다. 세월이 가는 사이 선생님은 수필집, 시집 몇 권을 출간하셨다. 유기농 유자농사를 지으시며 문학의 밭을 일구고 계신 선생님, 자주 소식 못 드려도 늘 마음 한 구석 든든한 버팀목으로 계시는 선생님, 잊고 살다가도 유자와 참다래가 도착하면 선생님 근황을 묻곤 했었다.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그 온정에 늘 마음부터 따뜻해지곤 한다. 올해는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건강이 안 좋아지신 것일까. 안부를 묻고 싶은데 보내드릴 단감도 없다. 전화를 하면 또 유자와 참다래를 보내주실 것 같아서 망설인다.


선생님, 새해에도 건강과 다복을 빕니다.

마음속으로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모과 향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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