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촌부 일기

뒷산 한 바퀴 돌아와

by 박래여

뒷산 한 바퀴 돌아와


딸이 있는 주말은 꽉 찬 느낌이다. 늦잠에서 일어난 딸에게 ‘나가자.’ 슬쩍 귀띔한다. ‘닭 칼국수 먹고 싶다며?’ 그렇게 집 뒤편의 한우산을 넘는다. 잿빛과 단풍이 어우러진 산마루에는 등산객들이 제법 오간다. 한우산 중턱에 터널을 뚫고 있다. 못 보던 건물도 들어섰다. 관광객을 위한 숙소와 편의시설이 생긴다는 소식이다. 도깨비와 호랑이 조형물이 내 눈엔 흉물로 보인다. 인공적인 것은 때가 타면 추하게 변한다. 자연은 자연그대로 보존해야 시간이 흘러도 빛난다. 한우산이 몸살을 앓고 있다. 언제쯤 공사가 마무리 될까.


한우산 공사 한다고 관광객을 막았던 몇 년 동안 산마루를 넘어보지 못했다. 그 사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길가에 무성하던 개나리 울타리도 사라지고 콘크리트 옹벽이 튼실하게 지어졌다. 주차공간으로 넓힌 것이다. 숲속의 산책길도 흙길이 아니라 인공으로 만든 나뭇길이다. 억새가 아름다운 한우산 정상에 오르고 싶었지만 거기도 정자 비슷한 건물이 서 있다. 인공물이 보이면 금세 호기심이 식어버린다. 돌아가자. 찰비계곡으로 내려섰다. 조림을 다시 하는지 산은 휑하고 임도는 사방에 나 있다. 산사태 나는 곳은 대부분 굴착기 같은 기계가 들어가기 위해 만든 임도거나 숲을 조림하기 위해 굵은 나무들을 베어낸 자리거나 전원생활을 위해 사람이 들어가면서 훼손된 곳에서 일어난다.


찰비계곡을 내려간다. 예전에는 물이 참 많았다. 숲도 계곡도 아름다웠다. 물도 풍부했다. 여름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락 싸서 한 나절을 놀다오던 계곡이지만 지금은 물이 없다. 겨울이라 그럴 수도 있다. 어쩌면 아래 위 사방댐 탓인지 모른다. 사방댐에는 푸른 물이 찰랑거려도 그 아래는 개울보다 못하다. 아름다운 길로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졌던 달구지가 오르던 구불구불한 흙길은 진작 넓혀지고 포장이 되었다. 다행히 흙길은 아니지만 영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시멘트 포장을 했던 옛길은 이끼가 끼고 숲이 우거졌지만 운치가 있어 좋았다. 고즈넉한 그 길을 가만가만 걷고 싶다.


예전의 찰비계곡이 더 아름답게 각인된 것도 나이 탓일까. 아이들과 물장구치며 놀았던 흔적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아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했다. 내가 늙어가는 만큼 자연도 늙어가서 그럴 거다. 스스로 위로한다. 쥘부채처럼 골을 이룬 능선에는 아직도 가을빛이 아름답고 양지 뜸에 오목하게 앉은 마을은 조용히 명상에 든 것처럼 고요하다. 벽계 저수지에는 태양광 시설이 즐비하다. 예전의 너른 호수라고 보기에는 뭔가 답답하다.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주변의 변화가 가져온 모습은 아무리 곱게 보려 해도 내겐 낯설다. 이 고장에서 사십여 년을 붙박이로 살아온 내게 주변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달갑지 않다.


신반 <닭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몇 년 만에 갔는데도 닭 칼국수의 맛은 변함이 없다. 칼칼한 맛에 허한 속을 데웠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배 좀 꺼자야겠다. 오늘이 신반 장인데 장 구경하고 가자.’ 길거리에 펼쳐진 난전은 벌써 짐을 싸는 중이다. 시골 오일장은 아침 일찍 섰다가 오전에 끝난다. 예쁘게 진열된 신발, 가방과 옷가지들을 거두면서도 장사꾼은 연신 손님을 부른다. ‘한 번 보고 가이소.’ 반대편 길가에 천막을 친 길거리 음식이 있다. 닭, 오징어, 고추, 고구마, 식빵, 쥐포 등, 튀김 종류와 붕어빵, 국화빵, 오뎅 등, 보기 드문 길거리 음식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것저것 섞어서 한 봉지를 샀다. 추억이 어린 식품에 매료되는 것은 나잇살 늘수록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엄마는 배부르다면서 저걸 또 사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부녀가 죽이 척척 맞다.


거기 아름다운 개인 정원 소천정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집을 찾아들었다. 마당가를 흐르던 개울에서 수박도 띄워놓고 푸성귀를 씻던 아낙의 구부린 뒷모습이 떠오른다. 집이 예뻐서 구경 왔다니까.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붙잡던 인정, 거목의 향나무는 더 거목이 되었지만 본채엔 사람 흔적이 없다. 돌담 안쪽 옆으로 조립식으로 지은 집이 보인다. 아마도 거기 누군가 살고 있는 모양이다. 덕분에 담쟁이덩굴로 감싼 돌담길을 돌아 본채를 구경하고 작은 옆문을 열고 돌다리를 건너 소천정 정자로 들어갔다. 구부정한 소나무도 여전하고 돌 틈 사이마다 꽃과 풀이 자란다. 물이 마른 두 개의 연못에는 여러 빛깔의 가랑잎이 누웠다. 정자를 두른 오죽울타리도 여전하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작은 정원은 여전하다.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다른 작은 정원, 작은 연못과 돌다리, 나무와 꽃이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정원의 거목이 된 소나무를 바라보며 돌 위에 앉았다. 소천정 우물은 그대로지만 물은 탁하고 흐리다. 아무리 아름다운 정원이라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허전한 바람만 분다.


정원을 구경하고 돌아 나오며 볼품없이 잘려나간 향나무 거목의 흉터를 바라본다.

향나무가 저래 거목이 되려면 수령 몇 백 년은 되었을 거야.

그러게. 수령이 적혀있지 않던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야 마땅한 향나문데.

아름다운 정원을 뒤돌아보며 그 자리를 떠났다.


오랜만에 홀가분하게 우리 고장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오니 양이가 반갑게 마중 나온다. 낑낑 눈을 부라리며 보리가 시샘한다. 보리도 양이도 외로웠구나. 집 지켜줘 고맙다. 양이를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동물도 사랑으로 자라고 사랑으로 보답한다. 내 품에서 양이는 가르랑 가르랑 행복한 속내를 드러낸다.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이 장희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다> 첫 구절을 떠올린다. 아직 겨울 길목인데 나는 벌써 봄을 기다리는지 모른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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