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촌부 일기

택배사고

<촌부일기>

by 박래여

택배사고


머피의 법칙을 생각한다. 나쁜 일은 연속으로 일어난다더니 유기농 단감농사 구사하다 폭삭했는데 겨우 건진 것도 정품보다 못난이가 많다. 때깔도 안 난다. 수량도 지난해 5분의 1도 안 된다. 매년 우리 집 단감을 선물로 여남 박스 넘게 주문했던 분들께도 못 보내드리는데. 택배사고가 잦다. 겨우 보내드린 분 중에도 택배로 받은 단감상태가 엉망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단감이 많을 때는 새로 보내드리는데. 올해는 수확해 오면 싹 포장해 보내면 남는 게 없다. 새로 보내드릴 수 없어 환불하겠다니까 괜찮다며 그냥 드시겠단다.


그런데 부산으로 간 단감이 주인 손에도 닿지 않고 며칠이 지나 돌아왔다. 주인이 다른 곳에 있단다. 그 집 아파트 문 앞에 두라고 했지만 굳이 착불로 우리 집으로 보내겠단다. 직감했다. 단감 상태가 망가졌구나. 가장 크고 좋은 단감이다. 올해는 한 번 작업해 오면 선물용 굵고 좋은 단감은 겨우 한두 박스 건질 만큼 귀하다. 그 단감을 주문했던 지인이 단감을 돌려받아 다른 집으로 보내달란다. 부산의 모 지역 담당택배기사랑 옥신각신 하다가 돌려받았다. 배달 온 우리지역 택배기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째지고 찌그리진 단감 박스를 개봉했다. 속지 넣은 것도 없다. 물건을 배달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 같았다. 담당 택배기사가 뜯어보고 단감 상태가 안 좋으니 책임회피를 하려고 돌려보낸 것 같았다. 한 박스가 전부 멍들고 깨져서 성한 단감이 없다. 못난이로도 팔 수 없겠다. 속상하고 화가 나 전화를 했다.


그쪽 택배기사는 자기 책임 아니고 보낸 사람 잘못이란다. 그냥 배달 중에 잘못 됐다고 미안하다면 나도 수긍할 수 있는 문젠데. 받을 사람이 없는 빈 집에 보냈으니 보낸 사람 잘못이란다. 지난해도 택배사고가 났었다.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 선물을 받을 사람의 주소를 잘못 알려줬을 때다. 그 단감은 돌고 돌아 일주일 넘어서야 제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단감 상태가 걱정돼 어떠냐고 물었다. 단감상태는 양호하다고 했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하면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인정이 동한다. 택배 물량이 많으면 사고도 따른다. 문제는 물건이 망가진 것을 자기네 잘못이 아니라고 우긴다는데 있다. 물건을 보낸 사람에게 잘못을 전가한다는데 있다. 단감은 새로 보내면 되지만 배 째라는 식으로 구는 양심불량이 싫은 것이다.


물론 택배일이 중노동인 줄은 알지만 고객의 물건은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택한 직업이라면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다. 그 직업이 싫으면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일단 직업군이 되었다면 양심불량으로 살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사기꾼이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온정도 있고, 양심과 의리가 있는 사람이 더 많아서 우리네 삶이 유지된다. 양심적이고 인정스러운 보통사람 덕에 세상이 온전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본인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남 탓으로 돌린다면 화는 남이 아니라 본인에게 돌아간다.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선한 뒤끝은 있어도 악한 뒤끝은 없다지 않는가.


어쨌거나 파손 되어 돌아온 단감의 사진을 찍어 지인에게는 보내고 단감은 수확하는 대로 새로 포장해 선물한 집으로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오히려 지인이 미안해하며 물건 값을 새로 보내겠단다. 손사래 쳤다. 세상엔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어떤 지인은 해마다 선물용 가장 굵은 단감을 열댓 박스 씩 주문하셨다. 올해는 유기농 단감 농사 구사하다 폭삭 주저앉아 굵고 좋은 단감이 귀하다고 했더니 크기에 상관없이 보내고 가격만 알려달란다. 35과에서 45과까지 선별해서 포장해 보냈다.


올해는 일꾼도 안 썼다. 단감 하나하나를 내 손으로 골라 포장을 하는데도 실수가 나온다. 마지막 작업을 도와주러 온 00님이 내 작업을 묵묵히 도우며 지켜보다가 안쓰러운가보다. ‘어머님이 이렇게 정성을 들여 박스에 담는 것을 그 사람들이 알까요? 물건이 좋다 나쁘다만 평가하지. 농사짓는 분들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내 양심이지요.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내 손을 거쳐 가는 단감이라 받는 분들이 좋아하면 더 바랄 게 없지요. 굵든 자잘하든 깨끗하고 맛있는 단감 보내주고 싶어요.’ ‘감 따러 갔다가 사방에 즐비하게 버린 병든 단감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아버님이 얼마나 속상할지 알겠던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셀리의 법칙>이 적용 받기를 바라며 정성껏 단감을 포장한다.


주문받은 단감을 택배로 보낸 오후에 또 주문이 들어왔다. 신기하다. 셀리의 법칙이 적용된 것일까. 맛있는 단감 먹을 수 있느냐며 어느 사업체에서 온 전화였다. 몇 년 전까지 우리 집 단감을 대량으로 주문했던 회사다. 그 회사가 어떤 경로로 우리 집 단감을 접하게 됐고 그 맛에 반했는지 모른다. 그때는 몇 천 박스의 단감을 수확하던 때라 굵고 좋은 단감 이삼십 박스는 문제도 아니었다. 여러 해 단골 고객이었다. 그러다가 단감주문이 뚝 끊어졌다. 아마 우리 집 단감을 주문해 주시던 비서가 퇴직을 했지 싶었다. 그 사이 우리도 단감농사를 확 줄여 짓는데 그 업체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미안합니다. 유기농 농사지으려다 폭삭 했어요. 굵은 단감이 없어요.”

아쉽지만 거절했다.

단감수확도 막판이다. 단감수량도 적다. 중간 크기부터 그 이하와 못난이가 남았다. 봉지작업해서 저장고에 넣을 것도 없이 소매로 팔아야 할 것 같아 고민된다. 모 게시판에 우리 집 단감 판매 글을 올려볼까. 그 게시판은 해마다 단감 판매 글이 올라가면 정신없이 주문이 들어오곤 했다. 단감 수량이 많을 때는 주문 전화 받기가 행복했는데. 단감 수량도 적고 굵고 좋은 단감도 없으니 망설이던 중이다. 그 게시판을 드나든다는 손님이 ‘맛있는 단감 언제 먹을 수 있어요? 게시판에 글이 안 올라와서’하면서 전화를 했다. ‘올해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가 부담스러워요. 유기농하다 폭삭 했거든요.’ 그 분처럼 단감 판매 글을 기다리는 분이 있지 않을까. 단감 맛은 좋다니까. 수량이 적으니 선착순 주문 받겠다는 문구를 넣어 광고해 볼까.


아니야, 우리 집 단감 맛을 기억하는 고객은 알아서 연락하겠지. 기다려보자.

아무튼 올 들어 가장 많은 물량을 택배로 보내는 날이다.

단감아, 아무 탈 없이 주인에게 잘 도착하길 바란다.

나는 내 손으로 포장하고 이름을 쓴 단감박스를 쓰다듬으며 기도한다. 택배사고 없이 제 자리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택배사고로 인해 속상했던 마음도 사고를 친 택배기사에 대해서도 마음을 비운다. ‘사고치고 싶어 쳤겠나. 운수가 사나워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 단감 한 박스 손해보고 말지 뭐.’ 덕분에 머피의 법칙이 깨어져 셀리의 법칙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단감을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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