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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29. 2022

33. 토기 풀을 파내며

 토끼풀을 파내며    


 잔디밭을 독차지하려고 벼르는 토끼풀은 반갑잖은 풀이다. 잔디가 파릇하게 자리 잡기 전에 토끼풀 군락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다. 마당 돌기를 하다가 호미를 챙긴다. 토끼풀을 파내지만 역부족이다. 뾰족한 호미의 날로 토끼풀의 마디를 파낸다. 토끼풀도 살겠다고 앙탈이다. 마디 하나만 있어도 금세 세력을 넓히는 토끼풀을 보며 현 정치꾼을 생각한다.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옮긴다고 나라를 들썩거리게 한다. 5년의 임기를 끝내고 다시 평민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소치다. 5년은 길 것 같아도 금세 끝난다. 그 5년을 위해 현 국방부 건물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대통령 집무실을 짓겠다고 한다. 국민의 혈세가 한 사람의 권력자를 위해 낭비될 조짐이다.


 과연 이래도 되는가. 아무리 나라의 정치에 무심한 민초라도 참 어이없는 발상이다. 그 발상에 동참하는 국회의원들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나. 자기네는 잘 먹고 잘 사니 권력의 남용도 같이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치의 단초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라니. 죄 없이 죽어가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떠오른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만행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없을까. 아무 죄도 없는 국민을 사지로 내몰고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겠나.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철 심장이라면 모르나.    


 죽은 것처럼 서 있던 나뭇가지에 연둣빛 움이 튼다. 산속을 불그레하게 물들인 진달래꽃과 삽짝에 노란 등을 켠 개나리를 본다. 집 앞의 벚꽃 가로수도 연분홍 꽃잎을 연다. 아랫부분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지난해보다 삼사일은 늦은 개화다. 꽃을 보면 마음까지 순수해지는 사람들과 꽃을 봐도 무심한 사람들이 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순하고 맑아서 타인을 배려할 줄도 알고 나눌 줄도 안다고 하던가. 현재 대통령으로 당선인도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통령 집무실이 어디든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강하면 외형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토끼풀을 뜯어 담은 소쿠리를 들고 텃밭으로 향한다. 텃밭에 구덩이를 파고 묻으면 토끼풀도 썩어 거름이 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푹 썩어 거름이 되어줄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라와 국민을 기름지게 가꾸는 것이 첫째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것은 권력 남용이다. 독재자로 군림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지금 멈춰야 한다. 작은 나라 풀뿌리 근성으로 살아가는 민초의 한 사람으로서 강하게 알리고 싶다. 당신은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의 머슴이라는 것을.


 농부는 감산에 유황 칠 준비를 하러 떠나고 나는 호미를 씻는다. 말갛게 씻은 호미를 시렁에 건다. 비록 잔디밭에 난 파릇파릇한 토끼풀을 모두 제거하지 못했지만 시나브로 파내다 보면 씨를 말릴 수 있으리라. 벌써부터 새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목소리가 국민들 사이에서 나온다.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촛불 시위의 희생자가 될지 모르겠다. 정치 교체를 외치며 현 당선인을 찍은 사람들조차 등을 돌린다. 모두가 ‘예’라고 대답할 때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용기란 꼭 필요할 때 써야 자존감을 살린다.  


 진달래꽃이 환한 산은 볼수록 예쁘다. 자연정원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터전에 산다는 것이 좋다. 삶의 자리가 조금 불편하면 어떤가.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자리면 어딘들 편하지 않으랴. 쪽마루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길섶을 환하게 비추는 벚꽃과 버드나무와 느티나무의 움을 본다. 모과나무나 찔레 순, 산딸기나무는 제법 잎사귀가 자랐다. 하얀 민들레꽃과 제비꽃도 눈 맞춤한다. 점심은 저런 푸성귀 뜯어 넣어 비빔국수를 말아볼까. 토끼풀도 먹을 수 있는 풀이다. ‘내가 토낀 줄 아나.’ 귓가를 간질이는 음성에 빙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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