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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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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23. 2022

32. 악양루에서 등악양루를 찾다.

악양루에서 등악양루를 찾다.    

  

 오후 새참 시간에 농부는 붓글 쓰려 문화원으로 가고, 나는 수영장에서 놀았다. 물에서 놀면 덜 아프지만 오른팔 때문에 수영보다 걷기를 했다. 농부와 만날 시간에 맞춰 수영장을 나섰다. 공원은 행사 준비로 바쁘다. 벚꽃 잎이 휘날리는 산책로를 걸었다. 연등을 달고 있는 작업자에게 ‘의병제 행사하나요?’ 물었다. ‘행사는 안 합니다.’ 간단한 답이다. 


 의병제 축제도 않으면서 한 달을 축제기간으로 정해 사방에 돈을 뿌리고 있다. 꽃만 봐도 황홀한데 전등을 달아 불을 켜고 부스를 세우고 텐트를 쳐서 인형놀이를 하는 이유는 뭘까. 국가 재정 낭비 아닌가. 코로나는 확산일로라 모임조차 몸을 사리는 판국에 행사도 하지 않으면서 축제 판을 벌이는 것이 못 마땅하다. 나무의자에 앉아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꽃눈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공원을 보는 사람이 행복에 이를 수도 있겠지. 부정보다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자. 덕분에 일자리가 생겨 생활고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농부를 만났다. 사방에 꽃이니 꽃구경하고 갔으면 하는 눈치다. ‘함안에 소문난 중국집이 있다더라. 여기 할머니들도 모여서 원정을 다니는 모양이야. 우리도 거기 가서 저녁 해결하고 오가는 길에 꽃구경할까?’ 그렇게 국도변 나들이를 했다. 사방에 벚꽃이 만개를 했다. 어느 길은 은행나무 가로수가 완전 사지가 잘린 채 서 있다. 볼썽사납다. 어린 묘목을 심어 한 아름이 되도록 자란 것들이다. 어딜 가나 비슷한 가로수 수난사가 있다. 어우러지기 전에 황폐해져 버리는 길들이 아쉽다. 


 어디든 나무가 서로 어우러진 숲길은 아늑하다. 숲길을 달리면 마음부터 설렌다. 양쪽으로 벚꽃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그 가운데를 달리는 기분이라니. 그런 꽃길을 자주 만나기도 어렵고 금세 끝나버리기 일쑤다. 벚꽃 터널로 유명한 하동이 떠오른다. 하동에서 쌍계사 가는 긴 벚꽃 터널은 환상적이었다. 지금은 예전의 운치가 많이 사라졌다. 길을 넓히는 공사가 몇 년 동안 계속되었고, 아름드리 자랐던 벚나무도 많이 사라졌다. 작은 벚나무가 심어져 있긴 하지만 예전처럼 벚꽃 터널을 길게 만들 수 있을지. 가까운 합천도 벚꽃 길이 있지만 아직 만개하긴 이르다. 


 법수의 그 중국집을 찾아들었다. 해물 쟁반짜장을 시켜놓고 우리는 <등악양루> 시를 가지고 논했다. 그 시를 쓴 중국의 유명한 시인이 누구냐. 소동파? 두보? 이태백? 정확하게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두보였다.       

//예부터 동정호를 소문으로 들었더니

오늘에야 악양루에 오르네     

오나라, 초나라가 동쪽과 남쪽에 갈라섰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호수에 떠 있도다.     

친한 벗에게선 편지도 한 장 오지 않고

늙고 병든 몸만 외로운 배 안에 있네.     

고향 북쪽에선 전쟁 일어났다니

그저 난간에 기대어 눈물 흘릴 뿐.//     


 전쟁이 일어난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한 슬픈 시였다. 중국의 악양루에 오르면 동정호가 절경이라고 한다. 함안에도 악양루가 있다. 북쪽으로 절벽의 좁은 길을 걸어 오르면 작은 정자가 있다. 그 정자에서 앞이 탁 터인 너른 들과 강물을 만난다. 함안 천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다. 풍경이 아름답다. 중국의 악양루에서 바라보는 동정호를 닮았다 하여 경남의 악양루라 한다. 거기 입구에 처녀 뱃사공 전설도 있다. 


 악양루 덕에 호강했다. 해물 쟁반 짜장면은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양도 넉넉했다. 할머니들이 원정을 가는 이유를 알겠다. 외식의 즐거움은 기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먼 길을 에돌아가며 목적지를 찾는 재미도 있고,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오는 길은 또 다른 길을 택해 꽃길을 즐길 수 있으니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느낌이다. 


 그런데 왜 잠이 안 올까. 노인이 되면 깊은 잠을 못 잔다고 하던가. ‘아직 난 노인 아닌데.’ 잠자리에 누워 뒤척인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꿈에 취하기도 한다. 장수하는 노인은 잘 먹고, 소화 잘 시키고, 배변 활동 원활하고, 숙잠을 잔단다. 저녁을 과식해서 그런가. 맞다. 뱃속의 포만감이 잠을 앗아갔다. 해물 쟁반짜장이 원인이지만 다음에 또 악양루에서 등악양루를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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