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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19. 2022

31. 노망과 치매의 차이

노망과 치매의 차이    

 

 시어른께서는 병원에 입원을 하셨어도 집에서처럼 간병인과 간호사, 의사를 힘들게 한다. 밤이고 낮이고 자식들에게 전화해서 요구사항이 많다. 병원 입원한 지 겨우 사흘인데 집에 가야겠다하다가 병실이 맘에 안 든다고 옮기기도 했단다. 춥다고 이불 가져오라. 먹을 것 가져오라. 자식에게만이 아니라 요양보호사에게도 수시로 전화한단다. ‘할배 땜에 내가 죽겠어요. 인자 전화 안 받을 랍니다.’ 그러라고 했다.


 노망 든다는 말의 뜻을 생각한다. 치매와 다른 뜻일까. 노망 들다. 인터넷 어학사전에는 ‘나이가 들어 망령스러운 증세가 생기다.’로 뜻풀이가 되어있다. 치매는 ‘정상적이던 지능이 대뇌의 질환으로 저하된 것’이라고 되어 있다. 백세가 코앞인 노인이니 치매보다 노망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시모는 치매환자지만 시부는 노망이 드신 것 같다. 그렇다고 자식이 어떻게 해 드릴 수도 없는 문제다. 그 변덕을 무슨 수로 다스릴 수 있을까. 


 두 어른을 요양원으로 모시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이 든다. 자식 된 도리도 할 만큼 하지 않았을까. 이제 힘에 부친다. 과중한 스트레스는 건강에 치명타 같다. 겉으로는 스트레스 안 받는다고 하지만 속내는 다른 것인지. 나는 밤에 잠을 통 못 잔다. 몸이 너무 아프다. 통풍일까. 낮에는 잡다한 일상에 치어 견디지만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무섭다. 농부도 깊은 잠을 못 자는 눈치다. 


  어제 범이 어머님께서 잔파를 비닐포대 가득 보냈다. 오전 내내 다듬어서 소금에 살짝 절여놓고 파김치 담글 준비물을 챙겼다. 새우젓, 갈치젓, 고춧가루, 찹쌀 풀, 깨소금, 육수 등, 적당량을 섞어 양념을 만들었다. 지난가을에는 아랫마을 형님이 잔파를 한 포대나 주셨다. 그것을 이웃에 나누어주고도 이틀에 걸쳐 다듬어 파김치를 담갔었다. 파김치가 맛있다고 아들도 퍼가고, 딸도 퍼갔다. 푹 익은 파김치는 농부가 좋아한다. 파김치가 바닥날 조짐이라 아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파 선물이 들어왔다. 힘에 부쳐도 열심히 다듬어서 한통을 담그고 나니 큰 일 한 것 같다.         


 그리고 방앗간에 맞춘 쑥떡을 찾으러 갔다. 시부모님과 농부의 새참용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해쑥으로 쑥떡을 한다. 벚꽃 길 따라 고개를 넘는 길은 꽃길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눈을 즐기며 고개를 넘는다. 아름답다. 파릇파릇 물오른 초록 잎눈도 꽃잎이 눈처럼 쌓인 길섶도 아름답다. 저 꽃잎을 밟으며 걸어볼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생각 모두 흩어져 날아가고 맑고 순수한 마음이 될까. 내 마음에 자꾸 때가 끼는 것 같다. 싹싹 씻어 내리고 말갛게 헹구고 싶다. 좋은 생각만 하고, 이웃이나 가족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만 간직할 수는 없을까. 


 쑥떡을 찾아와 한 번 먹기 좋게 작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세 등분으로 나누었다. 한 덩이는 우리 집, 한 덩이는 시댁, 한 덩이는 시누이에게 주기로 했다. 시누이가 편한 운동화를 사 왔다. 발에 딱 맞다. 발이 참 편하고 좋다. 시누이는 자기 부모님 잘 모셔달라는 뇌물성 선물이겠지만 고맙게 받는다. 문제는 농사철이 아니라 나는 줄 게 없다. 첫물 표고버섯 딴 것과 쑥떡 한 봉지를 챙겼다. 시누이에게 받은 것에 비해 너무 적은 것 같다. 뭔가 더 줄게 없을까. 고사리 철이지만 임대를 줬으니 아직 우리 먹을 고사리도 없다. ‘고사리는 나중에 보내주지 뭐.’ 혼자 북 치고 장구 쳤다. 시댁에 갔다가 수영장에 다녀왔다. 


 시어른 입원한 병동에 전화를 했다. 간병인에게 이불 하나 더 챙겨드리라고 했다. 노인이 힘들게 하겠지만 연세가 많아 그러니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다. 간호사실에도 전화를 했다. 집이 멀어 자주 병문안을 못 가니 부탁한다고 했다. 간병인도 간호사도 ‘할아버지가 참 대단하세요.’하면서 웃는다. 대단한 어른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시드는 꽃이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꽃 대궁은 말라가고 온전한 정신보다 아집이 더 강하다. 


 숲은 나날이 푸름으로 속을 채우는데 나는 자꾸 흐림으로 속을 채운다. 말갛게 씻어 널어놓은 빨래처럼 뽀송뽀송해지고 싶다. 이럴 때마다 시크릿을 주문처럼 외운다. 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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